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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옥살이 8차 화성 범인, 줄곧 "고문 당해 허위 자백" 주장

중앙일보 2019.10.07 15:28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8차 사건의 범인으로 확정판결을 받고 옥살이를 한 윤모(당시 22세)씨가 항소심 재판부터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진술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씨는 이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선고받아 20여년을 복역하다 현재는 가석방으로 풀려난 상태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가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 주장하면서 윤씨는 당시 수사기관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7일 법원에 따르면 윤씨는 1989년 10월 수원지법에서 살인과 강간치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윤씨는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8차 범인으로 재판을 받아왔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에 살던 A양(당시 13세)이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다른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달리 피해자의 옷가지로 결박하거나 재갈을 물리지 않았고 야외가 아닌 집 안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그러나 피해자가 성범죄를 당했고 목이 졸려 죽었다는 공통점 등으로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불렸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서 수거한 음모 8개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보내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으로 정밀감식해 혈액형은 B형이고 중금속인 티타늄(13.7ppm)이 다량 검출됐다는 결과를 받았다. 이후 수사를 벌여 윤씨를 검거해 자백을 받았다. 1심 재판부도 경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가혹 행위" 주장에 2·3심 재판부 "신빙성 없다" 

윤씨는 즉각 항소했다. 이듬해 2월 열린 2심 재판에서 그는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로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경찰에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허위 진술했는데 원심에서 신빙성이 없는 피고인의 자백을 기초로 다른 증거도 없이 유죄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반면 당시 윤씨의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이 초범이고 갓 성년이 됐으며 소아마비로 신체가 불구라 열등감을 이기지 못했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게 된 점에 비추어 형량이 무겁다"고 주장했다.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2심 재판부는 윤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윤씨가 경찰 조사와 원심법정에서 일관적으로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고 범행 현장 침입 방법과 경로, 범행 후 피해자 상태 등을 소상하게 진술해 신빙성을 의심할만한 부분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볼만한 아무런 자료도 없다. 원심이 적법하게 조사하여 채택한 여러 증거, 특히 피고인의 자백과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피고인의 음모에 대한 감정의뢰서 및 소견서 등으로 볼 때 범죄사실이 인정된다"며 윤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같은 해 5월 열린 3심 재판에서도 윤씨는 "고문 등 강요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자백이 고문 등 강요로 작성된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없고 근거 자료도 없다"며 "원심판결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2·3심 재판부가 윤씨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윤씨는 무기수로 복역하다 감형받아 2009년 석방됐다. 
 

윤씨, "살인한 적 없다. 억울하다" 주장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가 있었던 화성 태안지서. [중앙포토]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가 있었던 화성 태안지서. [중앙포토]

그러나 윤씨는 줄곧  "억울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03년 시사저널과 가진 옥중 인터뷰에서도 그는 "8차 사건이라는 것도 내가 한 일이 아니다"며 살인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도 그는 "맞았다"며 수사기관에서 가혹 행위를 당한 사실을 밝히기도 하고 "국선 변호사를 써 재판에서 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춘재가 8차 범행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해 경찰들이 가석방한 윤씨를 찾았을 때도 윤씨는 같은 주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윤씨를 조사했던 경찰관들은 "8차 사건 현장에서 나온 용의자의 혈액형은 B형으로 이춘재(O형)와 다르고 현장에서 윤씨의 지문도 나왔다. 윤씨가 소아마비를 앓고 있긴 하지만 팔 힘이 쎄 담을 넘을 수 있는 점도 확인했다"며 수사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진술하면서 이 사건의 진실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춘재가 사건에 혼선을 주기 위해 허위 자백을 했을 수도 있어서다. 경찰은 과거 사건 기록 등을 살펴보며 이춘재가 한 자백의 신빙성을 따져보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윤씨 "재심 등 요청할 것" 

그러나 이춘재의 자백이 사실로 확인되면 경찰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부실수사로 애꿎은 시민에게 누명을 씌워 20년간 옥살이를 하도록 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윤씨는 당장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재심 청구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 등으로 재심 전문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는 "이춘재가 자백했고 기존 수사기록에서 이 자백을 뒷받침할 내용이 있다면 당연히 윤씨가 재심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윤씨가 일관적으로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는 것도 재심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윤씨의 재심 변호를 맡을 수 있다는 의사도 밝혔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도 "이춘재가 자신이 8차 사건을 했다고 진술했고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이 폭행 등 강압수사가 있었다고 말한 점을 고려해보면 증거의 신규성, 명백성을 다퉈볼 여지가 있다"라면서 "이춘재가 자신이 저질렀다고 하는 8차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진술에 부합하는 증거가 나온다면 재심 개시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당시 8차 사건에 대한 증거물이나 관련 수사 기록이 남아 있는지 등이다. 중요사건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상 보존 기간이 지나면 폐기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8차 사건 기록과 당시 증거물품 등이 아직 남아있는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이춘재가 자백한 사건들을 모두 저질렀는지 등을 철저하게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최모란·심석용·최종권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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