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도 환자인데, 다른 환자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이곳

중앙일보 2019.10.07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30)

응급실에는 죽을 것 같은 환자가 있다. 또한 죽어버린 환자도 있고 죽어가는 환자도 있다. 당연히 죽음에서 살아난 환자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모든 죽음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환자도 있다. 어쩌면 다음 순서는 자기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득 찬 채.
 
경증 환자 구역에서 심정지가 발생했다. 드물지만 가끔 겪는 일. 애당초 응급실을 찾은 환자다. 경증 구역에 있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특히 고령의 환자는 늘어날 대로 늘어난 고무줄과 같다. 임계치를 넘는 순간 급작스럽게 나빠진다. 이 환자도 마찬가지. 간호사의 외마디 비명에 뛰어가 보니 이미 환자는 숨이 넘어가 있었다.
 
응급실에서 심정지 환자가 나오면 사방에서 오더가 쏟아지고 사람과 기계가 뒤엉킨다. [연합뉴스]

응급실에서 심정지 환자가 나오면 사방에서 오더가 쏟아지고 사람과 기계가 뒤엉킨다. [연합뉴스]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급한 상황이다 보니 사방에서 오더가 쏟아져 내렸다. 중구난방이었다. 부산하기만 했지 효율적이지 못했다. 자칫 여럿의 동선이 얽혀 꼬일 수가 있다. 실타래는 엉키기 전에 풀어야 한다. 오더를 하나씩 정리했다.
 
이렇듯, 원래 경증구역은 소생술 난이도가 훨씬 높다. 대비가 덜 되어있기 때문이다. 약을 줄 링거 라인도 부족하고, 환자를 모니터링할 기계도 없다. 물론 수십 초 만에 모든 게 동시다발적으로 갖춰지지만, 그 말은 여러 시술이 한꺼번에 들어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람과 기계가 문자 그대로 쏟아져 들어간다.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할 정도다. 당연히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모든 환자가 심각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럴만했다. 이만큼 소란을 피우고 있으니. 마음 같아선 환자를 다른 공간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소생술 중이라 이동이 불가능했다.
 
전문 소생 구역이 아니다 보니 공간이 좁았다. 울면서 매달리는 보호자를 뜯어냈다. 처치에 방해되지 않게 잠시 물러나 있기를 요청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엉켜 걸리적거렸다. 의료진이 제 자리를 못 잡고 들떠있었다. 답답한 나머지 직접 소매를 걷었다. 추가 시술을 하러 좁은 틈을 파고들다 옆자리에 위치한 다른 환자의 보호자와 부딪혔다. 눈치 없게 내 동선을 방해한 남자에게 짜증이 났다.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맞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사진은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응급 환자가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맞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사진은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응급 환자가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쪽 환자 심장이 멎어서 처치 중인 거 안 보이시나요? 좁아서 부딪히니까 잠시 저쪽으로 나가 계세요."
급박한 상황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남자를 타박했다.
 
"방해 안 되게 할게요. 저희 아버지가 놀라셔서 그래요. 이대로 두고 나갈 수가 없어요."
 
그제야 옆자리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 한 분이 몸을 파르르 떨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들은 연신 아버지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하고 있었다. 몸을 틀어 웅크리며 내가 지나갈 자리를 내어주었다.
 
"괜찮아요. 아버지. 저쪽 보지 마세요."
 
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심장이 멎은 환자만 보느라 주변은 신경 쓰지 못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누군가가 죽음을 맞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응급실에 실려 온 자신의 처지 또한 다르지 않다고 느낄 테지. 다음번에 의사들이 몰려올 곳은 내 침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보호자들이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최루 영화도 이만큼 슬프지는 않다. [사진 pixabay]

보호자들이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최루 영화도 이만큼 슬프지는 않다. [사진 pixabay]

 
결국 환자는 살리지 못했다. 사망 선고를 하자마자, 침대를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옮기고 커튼을 쳤다. 다른 환자들에게 이 응급실에 죽음이 떠 있다는 것을 가리고 싶었다.
 
뒷정리를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 바닥에 흩뿌려진 핏자국부터 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집기들까지. 한바탕 폭풍우가 휩쓸고 간 터라 폐허가 따로 없었다. 주변 환자들은 잠을 청하고 있는 건지, 다들 눈을 감고 이쪽으로는 굳이 눈길을 주려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온 보호자들이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는 소리였다. 구슬픈 흐느낌이 처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울음소리는 전염력이 크다. 어떤 최루 영화도 이만큼 슬프지는 않다. 눈가에 힘이 들어간다.
 
아까 그 옆자리의 환자와 눈이 마주쳤다. 울음소리에 얕은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다.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들은 잠깐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뭐든 해야 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양 무심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조금 어떠세요? 이제 덜 아프시죠?"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