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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8차 진범 논란···당시 형사 "이춘재 거짓말, 혈액형 달라"

중앙일보 2019.10.06 15:27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가 “8차 화성 살인 사건도 내가 했다”고 자백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8차 화성 살인 사건은 범인이 검거됐기 때문이다. 8차 사건 범인은 20여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현재 가석방된 상태다.
그러나 당시 8차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은 “8차 사건은 이춘재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춘재는 지난달 24~27일 부산교도소에서 이뤄진 4~7차 대면조사에서 화성 살인 사건 10건을 비롯해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범인이 붙잡힌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8차 화성 살인 사건은 1988년 9월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의 한 가정에서 여중생 A양(당시 13세)이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 7월 이 사건의 용의자로 화성에 살던 윤모(당시 22세·당시 태안읍 거주)씨를 붙잡아 구속했다.
 

8차 화성 살인 범인 윤씨는 누구?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경찰이 윤씨를 8차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본 이유는 ‘혈액형’과 ‘체모’였다. 윤씨가 살인 등 혐의로 구속된 사실을 보도한 1989년 7월 29일 자 중앙일보 ‘화성 살인 미궁 벗어나려나’ 기사에 따르면 당시 A양 살해 현장에선 남자 음모 8개가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는 이 음모를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에 의한 정밀감식을 했고 혈액형이 B형이고 일반인에게는 PPM 단위로 측정이 불가능한 중금속인 티타늄(13.7 PPM)이 다량 검출됐다는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B형 남성 460명의 음모를 취합해 감정을 의뢰했고 윤씨의 음모가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중앙일보는 ‘경찰은 윤씨의 자백 이외 ▲음모에 대한 형태학 감정서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에 의한 감정서 ▲거짓말탐지기 시험결과 양성반응 등을 범행 증거 자료로 삼았다’고 적었다. 또 ‘윤씨가 소아마비로 여성을 사귈 수 없는 점을 비관, 여성에 대한 심한 증오감을 가졌었다는 점까지 정황 증거로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중앙일보는 ‘(경찰은 윤씨 범행에 대한) 결정적인 물증이 없어 고민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수원지법은 1989년 10월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판결문은 “피고인(윤씨가)이 신체적 불구로 인한 열등의식에 참기 힘든 우울한 심정으로 배회하던 중 A양의 집 뒷담을 넘어 침입해 피해자를 살해한 뒤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조서와 부합하는 진술(자백)을 했고 국과수 감정 결과도 (피고인과)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감형돼 2009년쯤 가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형사들 “8차 범인은 윤씨, 이춘재가 거짓말하는 것”

화성군 태안읍에 차려진 과거 화성 연쇄 살인사건 수사본부 [중앙포토]

화성군 태안읍에 차려진 과거 화성 연쇄 살인사건 수사본부 [중앙포토]

 
윤씨를 조사하고 검거했던 형사들도 “이춘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8차 사건은 범행 수법 등이 화성 살인사건과 달라 처음부터 별개로 봤던 사건인데 ‘화성에서 발생한 10대 사건’이라는 이유로 8차 사건으로 분류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8차 사건 피해자는 논이나 야산 등에 유기된 화성 살인 사건과 달리 집 안에서 살해됐다. 앞선 살인사건과는 달리 용의자가 옷가지로 피해자를 결박하는 등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A양의 목엔 누군가 조른 듯한 흔적이 선명했고 흉기를 사용한 흔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퇴직 경찰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8차 사건의 현장 증거물인 정액과 음모 등을 분석한 결과 용의자는 B형이었다. 피해자가 숨진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 증거물이 오염되지도 않았었다.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저질렀다면 왜 현장에서 나온 혈액형은 이춘재의 혈액형인 O형이 아닌 B형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당시 범행 현장에서 윤씨의 지문도 나왔다. 또 윤씨가 소아마비로 다리는 불편하지만 팔 힘이 쎄 충분히 담을 넘을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당시 윤씨가 ‘A양의 언니 방을 들어가려고 했는데 방을 잘 못 들어갔다’는 진술도 했고 범행 현장인 A양의 방도 정확하게 지목했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도 “8차 사건은 기존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수법도 달랐고 당시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이라는 나름의 과학 수사를 통해 범인을 밝혀냈던 사건”이라며 “이춘재가 허위 진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춘재가 자백한 15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춘재가 자백한 15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8차 범인 윤씨, 옥중 인터뷰서 “억울하다” 

8차 사건의 범인 윤씨는 2003년 시사저널과 옥중 인터뷰를 했다. 그는 당시 “8차 사건이라는 것도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살인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최근 윤씨를 찾아가 조사했는데 비슷한 진술을 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춘재가 한 진술에 신빙성을 조사하고 있다. 이춘재가 경찰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 범행을 실토하는 척 허위 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서다. 현재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사건은 4차, 5차, 7차, 9차 등 4건뿐이다.
 
경찰은 이춘재가 저질렀다고 주장한 다른 4건의 살인 사건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춘재가 군에서 전역한 1986년 1월부터 처제를 살해해 수감된 1994년 1월까지 사건이다. 1987년 12월과 1988년 1월엔 수원에서 여고생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화성과 인접해 있고 첫 번째로 살해된 여고생은 화성 사건처럼 옷가지로 결박돼 있었다. 
 
이춘재는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며 결혼 등을 위해 1991년부터 충북 청주도 오갔다. 1991년 1월엔 청주시 가경동에서 공장 직원인 17살 소녀가, 1992년 6월엔 복대동에서 20대 가정주부가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17세 소녀의 경우 옷가지로 결박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의 진술이 믿을 만한 진술인 것인지 확인하고 있다”며 “당시 관련자들도 접촉해 진술을 듣고 있고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다른 사건들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모란·심석용·최종권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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