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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의 삽질일기] 강남역4거리에 나타난 냉장고 바지 아저씨

중앙선데이 2019.10.05 05:01
호박꽃잎은 대개 다섯 장이다. 밭둑에 핀 꽃 중에 여섯 장짜리가 있어 한참을 봤다. 잎과 순을 얻어 된장찌개에 넣고, 콩가루 묻혀 국을 끓였다. 두 대접을 비웠다.

호박꽃잎은 대개 다섯 장이다. 밭둑에 핀 꽃 중에 여섯 장짜리가 있어 한참을 봤다. 잎과 순을 얻어 된장찌개에 넣고, 콩가루 묻혀 국을 끓였다. 두 대접을 비웠다.

일주일에 한 번 밭에 간다. 대개 차를 가지고 간다. 연장 담은 배낭이 있고 작물도 거둬 와야 하기 때문이다. 밭에서 친구들 만날 때가 문제다. 수작이라도 하려면 꼼짝없이 대리기사를 불러야 하는데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그러니 약속 있는 날은 버스를 탄다.  

 
내 밭은 서울 강남에 있고 집은 강북이다. 강남에 집 얻어 살 때 지금 밭을 구했다. 그 땅값 비싼 동네에 웬 주말농장인가 궁금한 분들도 있겠다. 생각보다 많다. 대개 청계산·구룡산·대모산 주변이다. 서울 외곽은 녹지가 대부분 그린벨트로 묶여있다. 개발하지 못하니 예전부터 농사를 지어오던 땅을 주말농장으로 많이 분양한다. 서울시에서 지원도 해준다. 땅 주인들은 주말농장에서 쏠쏠한 수입을 올린다.  
 
강북으로 이사한 뒤에도 밭은 바꾸지 않았다. 무엇보다 쥔장을 오래 알고 지내니 편하다. 스스럼없이 이거저거 물어볼 수 있고 시시껄렁하지만, 농담 주고받는 재미도 크다. 농사 동무들과 노는 재미도 만만찮다. 밭을 새로 얻으면 적응에 시간 걸린다. 친구를 사귀기도 쉽지 않다. 밭이 멀어도 그냥 다니는 이유다. 그런데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밭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다.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그것도 직선이 아니고 빙 돌아가는 노선이다.  
 
지난여름이었다. 밭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날이라 집 앞에서 버스에 올랐다. 한참을 가다 보니 이상했다. 한남동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그 전에서 길을 바꿨다. 후다닥 일어나 번호를 확인하니 타려던 버스가 아니다. 내릴까 하다가 노선도를 봤다. 다행히 중간에서 갈아타도 됐다. 오랜만에 잠수교 좌우의 한강 변, 고속버스터미널, 서초동 법원단지를 느긋하게 구경하며 갔다. 운전대를 잡으면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패셔니스타들 사이를 뚫고 다닌 아저씨. 경범죄처벌법 3조 1항을 보니 이렇다. 흉기 은닉 휴대는 8만원, 자연 훼손 5만원, 불안감 조성 5만원. 악취 유발자 처벌조항은 없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패셔니스타들 사이를 뚫고 다닌 아저씨. 경범죄처벌법 3조 1항을 보니 이렇다. 흉기 은닉 휴대는 8만원, 자연 훼손 5만원, 불안감 조성 5만원. 악취 유발자 처벌조항은 없다.

카드를 찍고 강남역 네거리에 내리는 순간 아차 했다. 내 몰골 때문이었다. 뒤축에 구멍이 나 너덜너덜한 트레킹화, 얇디얇은 냉장고 바지, 솔기가 터지고 보푸라기가 인 등산용 티, 주말이라고 깎지 않아 텁수룩한 수염, 박박 민 반백의 머리…. 10m 이내로 접근하고 싶지 않은 아저씨, 그것도 여성들의 혐오 1순위 ‘개저씨’의 모습 아닌가. 
10년 동안 빨지 않아 꼬질꼬질한 데다가 여기저기 흙이 말라붙은 배낭도 신경 쓰였다. 그 안에는 호미·전지가위 같은 연장이며 노끈과 장갑, 각종 씨앗, 까만 비닐봉지 몇 개가 들어있었다. 낫을 빼놓았기에 망정이지 딱 현상금 붙은 지명수배자 행색이다. 아 뜨거워라 싶어 들고 있던 챙 넓은 밀짚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런데 이게 뭐냐. 모자는 손때 묻은 지 5년이 넘어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나고 너덜너덜했다. 한밤중에 가로등 아래 서 있는 기분이었다.  
 
청춘 1 번지답게 거리에는 발랄한 청춘들이 물결쳤다. 주말이라 그런지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화사하고 세련된 옷차림의 젊은이들이 쉴 새 없이 깔깔대며 밀려가고 밀려왔다. 절반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걸었다. 하늘은 맑은데 미세먼지방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10명 중의 한둘은 외국인이었다. 대각선으로 길 건너 우뚝한 삼성전자 빌딩을 보니 여기서 어딘지 실감이 났다.    
헤져 너덜거리는 밀짚모자 뒤로 보이는 빌딩이 삼성 서초 사옥. 자본이 몰리고 유행을 만들어내는 강남역 사거리에도 다이소가 있어 신기했다.

헤져 너덜거리는 밀짚모자 뒤로 보이는 빌딩이 삼성 서초 사옥. 자본이 몰리고 유행을 만들어내는 강남역 사거리에도 다이소가 있어 신기했다.

민폐를 끼치면 안 돼, 아저씨의 자존심을 최소한은 지켜야지, 생각하며 갈아탈 정류장 쪽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모자를 더 깊이 눌러썼지만 자꾸 신경이 쓰였다. 건널목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나가며 다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신호등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거 뭐지.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            
밭 입구에 내려 다시 아재 모드로 전환했다. 밭으로 들어가는 길은 가끔 동네 사람들만 오갈 뿐이다. 모자와 변장용 선글라스도 벗어들고, 갈지자로 휘적휘적 걸으니 만사가 편했다. 풀 베고, 오이 따고, 밀린 일 하다 보니 동무들이 하나둘 모였다. 치킨·족발·부침개·매실주…. 챙겨온 음식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먹을 게 너무 많아 보쌈은 가져온 친구 가방에 다시 넣었다. 옆 밭 아저씨가 먹어보라며 잘 익은 방울토마토를 한 주먹 내놓았다. 목 좀 축이라고 잡으니 차 있다고 휭 가버렸다.    
일 마치고 농사동무들과 상 차려놓고 폭풍 수다. 아재들 입담도 아줌마 못잖다. 오이는 같은 줄기에 달렸는데 모양이 제각각이다. 사람도 그렇구나.

일 마치고 농사동무들과 상 차려놓고 폭풍 수다. 아재들 입담도 아줌마 못잖다. 오이는 같은 줄기에 달렸는데 모양이 제각각이다. 사람도 그렇구나.

집에 올 때는 강남역을 피해 한적한 정류장에서 갈아탔다. 곳곳에 빈자리가 있었지만 승객들 없는 구석에서 내내 서서 왔다. 평소에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앉지 않는다. 힘들어도 서서 간다. 
 
돌아오는 길의 내 몰골을 복기해 본다, 얼굴에는 개기름 번들, 겨드랑이에서는 식초 냄새 지독, 입 열면 알코올향 폴폴, 게다가 눈까지 살짝 풀려…. 예수님이 손을 내젓고 부처님이라도 고개를 흔들 꼴 아닌가. 자리에 앉아 졸다가 굴러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환장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반포대교 아래 잠수교를 버스 타고 건너다가 본 풍경. 저 끝에 한남대교, 압구정, 뚝섬, 아차산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반포대교 아래 잠수교를 버스 타고 건너다가 본 풍경. 저 끝에 한남대교, 압구정, 뚝섬, 아차산이 있다.

 
아재도 아재를 경계한다. 요리사 박찬일 아재는 SNS에 이렇게 썼다. 
전철 옆자리 아재에게서 송로, 갓 베어낸 새벽풀, 농장의 두엄, 티벳산 마른 능이, 덜마른 곶감, 늙은고양이 오줌, 진로 빨간 뚜껑 향기가 난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목욕을 하고 이발을 한다. 고양이는 끊임없이 제 몸을 핥고 닦아 털이 항상 반짝반짝 빛난다. 아저씨가 개나 고양이에게 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 땅의 아저씨들아. 담배 끊고 술도 끊자. 아침저녁 샤워하고, 향수도 살짝 치고. 
하여튼 몸 간수를 잘하여 기피목록 벗어나고 명랑사회 이룩하자.    
 

오늘의 교훈: 아저씨는 아무도 안 쳐다본다. 자나 깨나 냄새 조심


(뇌에 윤활유가 부족한지 알고 있던 꽃 이름도 자주 깜빡깜빡한다. 막힐 때는 ‘야생화 자판기’ 조영학 번역가에게 물어본다. 아래 나오는 꽃들도 한 수 지도받았다.) 

농장 들어가는 길가에 핀 둥근잎나팔꽃과 둥근잎유홍초.

농장 들어가는 길가에 핀 둥근잎나팔꽃과 둥근잎유홍초.

기생여뀌와 미국쑥부쟁이. 하도 밟고 다녀 반질반질해진 밭둑에 납작하게 깔려 피었다. 낫으로 쳐내고 쳐내도 밟고 밟아도 끝내 일어섰다. 허리가 잘린 미국쑥부쟁이는 옆으로 가지를 새로 내 꽃을 피웠다. 환경이 척박하니 꽃도 작다. 쑥부쟁이 종류는 꽤 많다. 미국쑥부쟁이 꽃은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하거나 그보다 작다. 구절초는 그보다 서너 배 크다.

기생여뀌와 미국쑥부쟁이. 하도 밟고 다녀 반질반질해진 밭둑에 납작하게 깔려 피었다. 낫으로 쳐내고 쳐내도 밟고 밟아도 끝내 일어섰다. 허리가 잘린 미국쑥부쟁이는 옆으로 가지를 새로 내 꽃을 피웠다. 환경이 척박하니 꽃도 작다. 쑥부쟁이 종류는 꽤 많다. 미국쑥부쟁이 꽃은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하거나 그보다 작다. 구절초는 그보다 서너 배 크다.

 
와글와글 올라오는 아욱. 큰 줄기를 솎아내면 그늘 아래 있던 작은 줄기가 뒤이어 자란다. 된장 풀어 국 끓이니 살살 녹는다. 왼쪽 아래 여뀌가 바글바글.

와글와글 올라오는 아욱. 큰 줄기를 솎아내면 그늘 아래 있던 작은 줄기가 뒤이어 자란다. 된장 풀어 국 끓이니 살살 녹는다. 왼쪽 아래 여뀌가 바글바글.

고라니 등쌀이 점점 심해진다. 밭 쥔장이 야광봉을 구해왔다. 놈들이 밤에 무서워하라고 밭 가장자리에 꽂아놓았는데, 우습게 볼 거다에 1표.

고라니 등쌀이 점점 심해진다. 밭 쥔장이 야광봉을 구해왔다. 놈들이 밤에 무서워하라고 밭 가장자리에 꽂아놓았는데, 우습게 볼 거다에 1표.

배추와 무는 무섭게 자란다. 찬바람 불기 전에 속을 채우려는 속셈이다. 작년과 달리 모종을 심기 전에 밑거름을 한 덕도 크다.

배추와 무는 무섭게 자란다. 찬바람 불기 전에 속을 채우려는 속셈이다. 작년과 달리 모종을 심기 전에 밑거름을 한 덕도 크다.

장마 지나고 씨 뿌린 상추가 다시 꽃이 핀다. 봄은 걸어서 오는데 가을은 뛰어서 간다.

장마 지나고 씨 뿌린 상추가 다시 꽃이 핀다. 봄은 걸어서 오는데 가을은 뛰어서 간다.

무 배추와 달리 쌈채소들은 자라는 속도가 떨어지며 잎이 점점 두꺼워진다. 씹는 맛은 그만큼 좋아지고.

무 배추와 달리 쌈채소들은 자라는 속도가 떨어지며 잎이 점점 두꺼워진다. 씹는 맛은 그만큼 좋아지고.

얼갈이배추 사이에서 제법 모양을 갖춘 쪽파. 좀 더 키워 강회를 만들까, 더 놔뒀다가 김장 때 쓸까.

얼갈이배추 사이에서 제법 모양을 갖춘 쪽파. 좀 더 키워 강회를 만들까, 더 놔뒀다가 김장 때 쓸까.

트레비소. 색깔에 취해 한참을 들여다봤다. 미모에 홀려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 내 임무가 있고 네 의무가 있지. 정신을 차린 뒤 사정없이 뜯어서 아작아작.

트레비소. 색깔에 취해 한참을 들여다봤다. 미모에 홀려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 내 임무가 있고 네 의무가 있지. 정신을 차린 뒤 사정없이 뜯어서 아작아작.

옆집의 아담한 상추밭. 씨를 뿌려 잘 키웠다.

옆집의 아담한 상추밭. 씨를 뿌려 잘 키웠다.

옆집의 옆집 쌈채소. 모종을 심었다. 주인 심성도 오와 열이 반듯할 테다.

옆집의 옆집 쌈채소. 모종을 심었다. 주인 심성도 오와 열이 반듯할 테다.

고라니가 훑고 간 김장무 자리에 20일무 씨앗을 넣었더니 먹을 만큼 자랐다. 간식으로 두 뿌리를 씹어먹었더니 잠시 뒤에 무 트림이 끄억.

고라니가 훑고 간 김장무 자리에 20일무 씨앗을 넣었더니 먹을 만큼 자랐다. 간식으로 두 뿌리를 씹어먹었더니 잠시 뒤에 무 트림이 끄억.

쥔장네 부추밭. 세 구역으로 나눠 간벌을 하더니 이번에는 단체 삭발을 했다. 젊은이들은 삭발을 해도 싱싱하다. 나이 들어 그러면 보기에 좀 그렇다.

쥔장네 부추밭. 세 구역으로 나눠 간벌을 하더니 이번에는 단체 삭발을 했다. 젊은이들은 삭발을 해도 싱싱하다. 나이 들어 그러면 보기에 좀 그렇다.

배추 사이에서 고개 내민 토마토. 여름에 떨어진 씨앗이 싹이 텄을 텐데, 얘야 지금은 네 시간이 아니란다.

배추 사이에서 고개 내민 토마토. 여름에 떨어진 씨앗이 싹이 텄을 텐데, 얘야 지금은 네 시간이 아니란다.

고수도 여기저기에 다시 뿌리를 내렸다. 잎 하나 꺾어 손가락으로 비벼 보니 코가 뻥 뚫리며 정신이 번쩍 든다. 상추쌈에 한잎 얹으면 미슐랭가이드 스타 레스토랑 샐러드 부럽잖다.

고수도 여기저기에 다시 뿌리를 내렸다. 잎 하나 꺾어 손가락으로 비벼 보니 코가 뻥 뚫리며 정신이 번쩍 든다. 상추쌈에 한잎 얹으면 미슐랭가이드 스타 레스토랑 샐러드 부럽잖다.

아침 일찍 와야 볼 수 있는 이슬. 여름에는 햇살 나면 후르르 날아가는데 가을에는 해 뜨고도 한참 남아있다.

아침 일찍 와야 볼 수 있는 이슬. 여름에는 햇살 나면 후르르 날아가는데 가을에는 해 뜨고도 한참 남아있다.

지렁이 땅강아지가 헤집고 다닌 흙은 부드럽다. 물 조금 넣고 지은 쌀밥처럼 고슬고슬 포슬포슬.

지렁이 땅강아지가 헤집고 다닌 흙은 부드럽다. 물 조금 넣고 지은 쌀밥처럼 고슬고슬 포슬포슬.

오른쪽 위가 들깨. 내 키보다 더 큰데 새로 달리는 잎은 이제 시원찮다.

오른쪽 위가 들깨. 내 키보다 더 큰데 새로 달리는 잎은 이제 시원찮다.

숨은그림찾기: 근대. 다른 풀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여럿이 어울리니 보기 좋다. 같이 크게 놔둘 생각이다.

숨은그림찾기: 근대. 다른 풀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여럿이 어울리니 보기 좋다. 같이 크게 놔둘 생각이다.

텃밭 예배당. 하느님 이름 팔아 배불리는 자들아 회개하라. 하늘에 영광을, 이 땅에 평화를.

텃밭 예배당. 하느님 이름 팔아 배불리는 자들아 회개하라. 하늘에 영광을, 이 땅에 평화를.

해먹에 누워 물드는 앞산 구경하고, 오가는 사람 감상하고, 팔자 늘어진 놈.

해먹에 누워 물드는 앞산 구경하고, 오가는 사람 감상하고, 팔자 늘어진 놈.

고추는 혼자 서기 힘들지만 상추는 혼자서도 이처럼 꼿꼿하다. 이파리 다 내주며 더 튼튼해진다.

고추는 혼자 서기 힘들지만 상추는 혼자서도 이처럼 꼿꼿하다. 이파리 다 내주며 더 튼튼해진다.

토종 허브인 방아. 정식 이름은 배초향. 그 앞에 착륙할 지점을 고르는 꽃등에.

토종 허브인 방아. 정식 이름은 배초향. 그 앞에 착륙할 지점을 고르는 꽃등에.

침이 꼴깍 넘어가게 잘 자란 옆집 대파. 여름에 서리당한 내 밭의 대파를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고 아깝다.

침이 꼴깍 넘어가게 잘 자란 옆집 대파. 여름에 서리당한 내 밭의 대파를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고 아깝다.

폭죽처럼 꽃을 터트리더니 콩알만한 열매를 다닥다닥 맺은 부추.

폭죽처럼 꽃을 터트리더니 콩알만한 열매를 다닥다닥 맺은 부추.

방가지똥. 잎을 꺾으면 하얀 액이 흐르는데 굳으며 똥색이 된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행색은 엉겅퀴 사촌인데 꽃은 민들레와 형제다.

방가지똥. 잎을 꺾으면 하얀 액이 흐르는데 굳으며 똥색이 된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행색은 엉겅퀴 사촌인데 꽃은 민들레와 형제다.

기온은 내려가는데 어쩌자고 오이꽃은 피고지고.

기온은 내려가는데 어쩌자고 오이꽃은 피고지고.

고추는 달랑 2그루 남았다. 그마저 벌레가 들어 시원찮다.

고추는 달랑 2그루 남았다. 그마저 벌레가 들어 시원찮다.

밭둑을 걷다가 내려다보니 부추·쑥·여뀌·민들레·질경이·환삼덩굴·참나물·바랭이...

밭둑을 걷다가 내려다보니 부추·쑥·여뀌·민들레·질경이·환삼덩굴·참나물·바랭이...

일 마치고 짐 싸다가 고개 드니 밭둑 너머에 미국쑥부쟁이가 왁자지껄.

일 마치고 짐 싸다가 고개 드니 밭둑 너머에 미국쑥부쟁이가 왁자지껄.

찰진 황금빛 늙은 오이. 나이 들수록 기품 흐르는 이가 있고, 나잇값도 못하는 추한 이들이 있다. 말을 아낄 것, 물러날 때를 알 것, 몸 써서 노동하는 이들을 존경할 것, 젊은이들을 존중할 것.

찰진 황금빛 늙은 오이. 나이 들수록 기품 흐르는 이가 있고, 나잇값도 못하는 추한 이들이 있다. 말을 아낄 것, 물러날 때를 알 것, 몸 써서 노동하는 이들을 존경할 것, 젊은이들을 존중할 것.

그림·글·사진=안충기 아트전문기자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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