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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시름 감춘 웃음 뒤엔, 묵묵한 피붙이 사랑

중앙선데이 2019.10.05 00:21 655호 15면 지면보기
세상의 풍파로부터 가족을 지켜주는 널찍한 등판을 가진 아버지. 그런 아버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앞에서 한 여성 관람객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세상의 풍파로부터 가족을 지켜주는 널찍한 등판을 가진 아버지. 그런 아버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앞에서 한 여성 관람객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현동 기자

2004년 영국문화원이 가장 아름다운 영단어 70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세계 102개 비영어권 국가의 시민 4만여 명에게 물은 결과였다. 1위는 놀랍지 않았다. 어느 나라 말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일 게 분명한 ‘어머니’였으니까. 이어진 단어들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열정’, ‘미소’, ‘사랑’…. 그런데 끄트머리에라도 걸쳤을 법한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딸국질’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70위 안에 없었다.
 

서울·부산 ‘진심, 아버지를 읽다’ 전시회
‘아버지 왔다’ 등 5개 테마관서
글·사진·소품 등 187점 선보여
가족사진·손편지 체험 공간도
서울전부터 4만 명 릴레이 관람

사실 그런 게 아버지다. 어머니의 사랑처럼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래서 평소엔 생각도 나지 않지만, 그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 작고 보잘것없는 사회적 지위를 가졌더라도, 가족을 위협하는 세상의 풍파는 거뜬히 막아낼 수 있는 널찍한 등판을 가진 사람. 그런 게 아버지인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따라 걸으며 그의 진심을 느끼고 헤아려볼 수 있는 전시회가 오랫동안 계속되며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주최하는 ‘진심, 아버지를 읽다’전 말이다.
 
올 2월 말 서울관악 하나님의 교회에서 처음 열린 이 전시회는 지금까지 4만 명 가까운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전시 전용공간이 아닌 교회의 특설 전시장에서 열리는 만큼 하루 300명 이상을 소화하기 어려운데, 두 배가 넘는 700명 이상의 관객들이 밀려드는 날이 많아 관계자들로 하여금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했다. 당초 5월로 끝날 예정이던 이 전시는 이어지는 관람객 행진에 올 연말까지로 연장됐다. 뿐만 아니라 부산까지 진출해 지난달 부산수영 하나님의 교회에서 두 번째 전시를 시작했다. 부산 전시회 역시 기본 뼈대는 서울전과 같다. 하지만 부산 시민들이 출품한 글과 사진, 소품들이 추가돼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들의 체취가 좀 더 진하게 느껴진다. 전시관은 187점의 작품들을 5개의 테마관에 나누어 걸었다. 문패 걸린 담장 옆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관객들은 추억으로 소환된다.  
 
‘아버지 왔다’라는 제목의 1관이다. 고단한 얼굴에도 미소를 함빡 머금은 채 통닭 한 마리를 들고 대문 앞에 서 계시던 아버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족들에게는 감춘 채 웃음만 보여주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는 본체만체, 봉지만 나꿔채 뛰어들어가던 자식들을 바라보며 흐믓한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아버지의 모습들이 담겼다.
 
2관의 주제는 ‘나는 됐다’다. 영화 ‘국제시장’의 아버지처럼, 전장과 같은 일터에서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채 가족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들의 고단한 나날들을 모았다. 한 기업 광고에서 앞으로 살 날이 1년만 남았다면 ‘꿈’과 ‘5억원’ 중 무엇을 선택하겠냐는 물음을 10대 자녀와 아버지들에게 물었다. 자녀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꿈을 선택한 반면, 아버지들은 모두 돈을 택했다. 속물이어서가 아니다. 1년 남은 삶에 뭔 돈이 필요할까. 그것은 자신이 떠나고 난 뒤 남겨질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해서였다. 그래선지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친정 아버지의 사랑뿐 아니라, 자기 자식의 아버지이기도 한 ‘남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중년 여성 관객들도 많다고 주최 측은 귀뜸했다.
 
3관은 ‘….’ 즉 ‘침묵’이다.
 
“아빠! 뭐 먹고싶은 거 없나?”
 
“없다.”
 
“필요한 거는?”
 
“없다.”
 
“아픈 데는?”
 
“없다.”
 
“알겠다. 또 전화할게.”
 
“근데… 언제 오노?”
 
(강부영 수필 일부)
 
표현은 서툴러도 아버지의 사랑은 깊이를 모르는 바다와 같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데,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들 찡해져오는 코 끝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주최 측이 전시관 곳곳에 휴지를 준비한 이유다.
 
4관 ‘아비란 그런 거지’에서 아버지는 이제 늙었다. 팔다리의 힘은 빠졌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딸과 손자의 아토피를 고쳐주려고 무공해 비누를 만들기 위해 임종 전까지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아버지의 연구 노트는 어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의 연구 기록 못지않아 감동을 준다. 마지막 5관 ‘잃은 자를 찾아왔노라’에서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부성애가 그려진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종교를 초월한다. ‘아버지전’에 여러 종교인들의 발걸음이 뜸하지 않은 걸 봐도 알 수 있다.
 
전시회장을 나오면 체험의 공간이다. 평소 기회가 없었던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특히 인기다. 주최 측은 포토존에서 쓰일 인화지를 1만 부 이상 준비해놓았다. 아버지한테 손편지를 쓸 수 있는 진심우체국도 있다. ‘어머니전’에는 우편엽서를 준비하는 주최측이 아버지전에서는 편지지와 편지봉투까지 준비한 게 재미있다. 사랑의 표현이 서툰 아버지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란 자식들도 쑥스러운 일임을 아는 까닭이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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