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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전파자 멧돼지 1마리에 ‘먹이 백신’줬더니 면역 전파

중앙선데이 2019.10.05 00:21 655호 6면 지면보기

돼지열병 백신 연구 어디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ASF)이 중세 흑사병처럼 돼지를 절멸시키고 있다. 휴전선 부근에서 시작된 돼지열병으로 양돈 기반이 무너질 위기다. 막아낼 수 있을까. 인간에게 정말 해는 없는 걸까.
 

‘약한 ASF’가 날숨·피부 통해 나와
다른 멧돼지에 전달돼서 면역 생성
돼지콜레라 때도 백신 먹이 성공

구제역 유전자 14개, ASF는 180개
면역 생성 유전자 확인하기 어려워

ASF 고향은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부지역이다. 1700년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진드기에 있던 바이러스가 야생 멧돼지를 감염, 이후 돼지로 옮겨 왔다. 돼지는 인류역사와 함께한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에도 돼지그림이 있다. 기원전 1만 년 이전에 사육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지역 돼지들에겐 이미 ASF가 풍토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돼지들은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15세기 중국, 18세기 유럽으로 수입됐다. ASF도 덩달아 옮겨왔다.
 
1990년대까지 ASF는 유럽에서 드문드문 발병했다. 풍토병 수준이었다. 발병 범위도 일부 지역에 한정됐다. 이놈들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캅카스의 조지아에서 시작한 ASF는 2014년 전 유럽을 강타했다. 3개 대륙 55개국에 퍼져 나갔다.
 
ASF 고향은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같은 종류 ASF가 2018년 중국으로 넘어왔다. 중국은 세계 돼지 50%를 먹고 생산한다. 중국 랴오닝성에서 시작된 ASF로 중국 돼지생산량이 30% 줄었다. 돼지고기 값은 70% 올랐다. 전 세계 양돈업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5월 ASF가 중국을 휩쓸고 있을 때 한국과학기술회관 ASF 세미나에 참가했다. 40명도 안 왔다. 그나마 관련 공무원은 없었다. ‘강 건너 불 구경’이었다. 세미나 분위기는 답답했다. 백신마저 없다는 점이 불안했다. 그저 이놈들이 한국에 넘어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분위기였다. 그토록 위험한 ASF라면 왜 백신을 만들지 못할까.
 
면역전파

면역전파

ASF는 두 가지로 전파된다. 첫째는 생물, 즉 멧돼지와 진드기다. 둘째는 사람들이다. 감염돼지 고기나 돼지소시지, 농장을 다녀간 사람의 신발, 차량 등으로 옮긴다. 이런 전파 경로는 감염고기 유통을 금지하고, 공항에서 돼지고기 제품을 잡아내면 된다. 실제 캐나다에서는 수십 마리 탐색견들이 공항 수하물에 들어 있는 돼지고기 제품을 찾아내고 있다.
 
문제는 첫 번째다. 진드기는 그렇다 치자. 멧돼지가 문제다. 이놈들은 독한 ASF에 걸리면 죽기도 한다. 하지만 감염상태로도 돌아다닌다. 강력한 바이러스 전파자다. 동물 안전을 다루는 국제수역사무국(IOE)도 멧돼지에 주목한다. 2014년 ASF가 유럽을 휩쓸 때를 보자. 멧돼지 숫자가 많은 지역과 멧돼지 접촉 가능 양돈축사가 많은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ASF가 많이 발생했다. 멧돼지가 주요 전파요인이란 반증이다.
 
하지만 돌아다니는 동물이 중간숙주라면 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 조류독감(AI)바이러스도 마찬가지로 대비가 어렵다. 수퍼 전파자가 하늘을 나는 철새다. 유일한 방책은 이놈들이 내려앉는 철새도래지와 근처 양계농장을 최대한 차단하는 방법이다. ASF는 멧돼지 접근을 막아야 한다. 국내 양돈농장들이 철망을 둘러싸는 이유다.
 
하지만 열 명 순경이 한 도둑 못 잡는다고 했다. 더구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차단하기란 쉽지 않다. 감염이 확인되면 주위 농가 돼지를 모두 살처분해야 하는 이유다. 살처분과 격리, 멧돼지 접촉 방지 그리고 감염돼지 사료사용 금지 등이 유일한 대비책이다. 이 방법이 먹히지 않고 확산되면 마지막으로 백신주사를 놓는다. 최후 방비책인 셈이다.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약화시켜 주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사하면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이놈들이 완전히 없어지는 걸 확인해야 안심한다. 왜 ASF는 아직 백신이 없을까.
 
ASF가 어떻게 돼지를 감염시키는지는 분명치 않다. ASF에는 180개 이상 유전자가 있다. 구제역은 14개 유전자를 보유한다. ASF의 경우 면역을 생성시키는 유전자를 제대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더 어려운 문제가 있다. ‘독한’ ASF는 돼지 면역세포, 특히 식균세포를 무력화시킨다. 에이즈바이러스처럼 면역세포 자체를 공격하니 면역이 생기기 어렵다.
 
한국 ‘강 건너 불 구경’ 하다 감염
 
실제로 2012~2018년 각국 실험실에서 만든 백신 12개 중에는 전혀 효과가 없이 오히려 ASF가 자라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 영국과학자들은 ASF 유전자 중에서 효과를 보이는 부분만을 찾아내 백신으로 만들어 주사했다. 이 주사로 ASF 감염을 예방할 수 있었다. 이 실험실 결과가 현장 양돈사육장에서도 재현된다면 ASF 백신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백신은 최후 단계 방어책이다.
 
지난 5월 이탈리아 연구진은 ‘약한 ASF’에 걸린 멧돼지에서 ASF를 분리했다. 이 ASF들을 실험실에서 수를 불렸다. 약한 바이러스이니 주사하면 면역이 생길 수 있다. 연구진은 주사가 아니라 멧돼지들 ‘먹이’에 섞여 먹였다. 그러자 92% 멧돼지들이 면역이 생겼다.
 
이놈들에게 ‘독한’ ASF를 일부러 주입해 보아도 멀쩡했다. 더 놀라운 게 있다. 면역이 생긴 멧돼지로부터 다른 멧돼지들에게 면역이 전파됐다. 즉 한 놈만 백신먹이를 먹어도 그룹전체가 면역이 생겼다. 과학자들은 ‘약한 ASF’가 멧돼지 내에서 수를 불려 날숨·피부로 먼지처럼 나와 다른 멧돼지에 들어가서 면역을 만든다고 판단한다. 사실 이 방법은 ASF와 가장 유사한 돼지콜레라 바이러스 감염(1992년) 때에도 성공적으로 쓰였다. 돼지콜레라는 백신도 완벽하게 만들었다. 1992년 이후 돼지콜레라는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니다. 돼지콜레라와 가장 비슷한 ASF에도 이 방식이 성공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다. 희망을 가지자.
 
아프리카 깊은 숲속에 있어야 할 야생동물 바이러스가 가축을 위협한다. 바이러스는 인류최후의 적이다. 그들과의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서울대 졸업. 미국 조지아공대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창의재단 바이오 문화사업단장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를 통해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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