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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정치 실패 땐 복종의 항민 →원망의 원민 →나서는 호민 돼
김진국이 만난 사람

정치 실패 땐 복종의 항민 →원망의 원민 →나서는 호민 돼

중앙선데이 2019.10.05 00:20 655호 10면 지면보기
김진국 기자 사진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한광옥 전 김대중·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 

한광옥(77) 전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은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두 명의 대통령을, 비서실장으로서 모셨다. 김대중 대통령(1999년 11월~2001년 9월)과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2016년 11월~2017년 5월). 최측근이 맡는 자리를, 그것도 진보와 보수의 양극에 서 있는 두 대통령이다. 
 

DJ “가해자 용서할 때 국민통합”
동서화합 위해 박근혜 지지 결심
탄핵으로 물러날 쯤 비서실장에

당시 최순실 단호하게 잘라내면
박 대통령은 문제 될 게 없다 생각
재판하더라도 인신 구속은 풀어야

문 정부 진영정치로 내우외환 몰려
조국 임명 취소, 대국민 사과해야
참된 지도자에겐 바꾸는 용기 있어

더구나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심판으로 물러날 무렵 그 옆에 있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몇 차례 거절하다 지난달 24일 여의도의 한 지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3년 내가 사실상 정치적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온 겁니다. 내가 저 양반(박 전 대통령)을 짧은 기간 모셨지만, 내 뜻대로 안 된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난 아무 책임 없나. 그런 건 아니거든요. 단 몇 개월을 모셨어도 책임이 있는 거고…”
 
박 대통령 비서실장을 왜 맡았습니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이유부터 말해야겠죠. 김대중(DJ) 대통령 비서실장도 하고, 새천년민주당 대표도 한 사람이 어떻게 박 후보를 지지했느냐.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생각이 아주 달라요. DJ는 상암동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지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반대했지만, DJ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이해하고 용서할 때 국민통합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2004년 한나라당 대표가 된 박근혜 대표가 동교동을 찾아와 ‘기념관을 지어줘서 감사하다. 아버지 때 고통받은 것을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말했어요. 그때 DJ는 ‘박정희 대통령이 찾아와서 사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서 ‘내가 정치를 하면서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것이 동서화합인데, 동서화합을 이룰 적임자가 당신이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2012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출마했는데, 동서화합, 국민통합을 위해 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통민주당 만들고, 자유한국당으로 간 건 친노 세력들에게 쫓겨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박 대통령을 도우려고 새누리당에 잠시 있었지만, 지금 한국당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당을 나갔어요. 자기들끼리 다 하고…아니 경선도 안 시켜줘.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거기서 뭘 하겠어요.”
한광옥 전 국민대통합위원장은 5년 단임제 대통령들의 비극을 경험해 ’박근혜 대통령도 불행한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그게 국가를 위하는 길이고,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한광옥 전 국민대통합위원장은 5년 단임제 대통령들의 비극을 경험해 ’박근혜 대통령도 불행한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그게 국가를 위하는 길이고,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비서실장은 어떻게 맡았죠.
 
“마지막에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건으로 아주 위험하게 되었단 말이야. 5년 단임제에서 거의 모든 대통령이 말년에 당을 탈당하더니 불행하게 됐어요. 김대중 대통령도 탈당했어요. 내가 당 대표할 때인데, 비서실장 하던 사람이 탈당계를 받는 마음이 어떻겠어요. 김영삼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전부 다 말년에 그렇게 되더라고. 이런 기막힌 경험이 있기 때문에 박 대통령도 불행한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 내 나름대로 이게 탄핵을 할 만한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인 음모가 있는가. 대통령직을 내놓는다면 평화적이고 질서 있게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 대통령 불행은 막아야지. 그게 국가를 위하는 길이고,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최순실 문제는 얼마나 알고 있었습니까.
 
“구체적인 건 모르고, 하여간 최순실을 단호하게 잘라내면 박 대통령은 관계가 없는 거니까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죠. 최순실 문제는 사실은 딸 정유라가 한 말이 젊은 학생들을 자극해 촛불시위도 나고, 문제가 되더라고. 대통령과 최순실 관계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봐요.”
 
탄핵할 사안이 아니라는 겁니까.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화 단절, 인사문제 등 여러 가지를 제기하지만, 최순실 사건 하나만 가지고 탄핵까지 가는 건 나로선 이해가 안 가더라고. 또 어떤 의혹만 가지고 탄핵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지. 상식으로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하고 멀어서 ‘질서 있는 퇴진’을 할 타이밍을 놓친 것 아닌가요.
 
“일부 실정에 대해서는 뭐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만. 탄핵 자체에 대해서 본인이 억울하게 생각하실 거거든. 그 재판에서도 과연 구속까지 갈 수 있는 건이냐 하는 데에 본인은 억울해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 최순실이 한 것을 이 양반에게 의논한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사건에서 법적인 심판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민적인 심판인 거에요. 그다음에 역사적인 심판이 또 있다고. 그래야 최종적으로 정리되는 것이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2012년 10월 수유리 4.19 묘지를 참배할 때 캠프에 합류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수석부위원장이 수행하고 있다.[중앙포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2012년 10월 수유리 4.19 묘지를 참배할 때 캠프에 합류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수석부위원장이 수행하고 있다.[중앙포토]

 
그는 2016년 12월 5일 국회 특위에서 ‘4월 퇴진, 6월 대선’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최순실 씨 정리와 질서 있는 퇴진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평우 변호사가 문제야. 그 사람이 (박 대통령을) 만나면 자꾸 부추겨서….”
 
재판에는 가보셨나요. 면회는….
 
“면회는 안 되고, 재판정에 몇 번 나갔죠.”
 
재판 진행은 어떻게 보십니까.
 
“유영하 변호인이 유일하게 접촉을 하고 있는데, 내가 전망을 하긴 어렵고…. 꼭 맞춰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전두환·노태우 대통령보다 박 대통령이 훨씬 오래 있었잖아요. 900일 만에 수술하러 나오셨으니까. 여성인 데다 몸도 약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구속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재판하더라도 인신 구속은 풀어야 할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1985년 민추협의 한광옥 대변인(가운데)과 김영삼(왼쪽)·김대중(오른쪽) 공동의장. [사진 한광옥]

1985년 민추협의 한광옥 대변인(가운데)과 김영삼(왼쪽)·김대중(오른쪽) 공동의장. [사진 한광옥]

그는 사실 박근혜보다 김대중의 사람이다.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실무작업도 그가 했다.
 
“김용환 선배(전 재무부 장관)하고 약 1년 6~7개월 동안 실무작업을 했어요. 남들은 쉽게 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치공학적으로 참 어려운 일이에요.”
 
DJP 연합은 누구 발상입니까?
 
“여러 사람이 이야기했는데…, 문제는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잘 되겠느냐는 말을 할 때, DJ가 결심한 거지.”
 
DJ와 JP 어느 쪽이 먼저 제의한 겁니까.
 
“우리 쪽에서 했다고 봐야죠. 아무리 작은 당이라도 대통령 후보가 없으면 국회의원 선거를 못 해요. 충청권에서 그것을 설득시키는데, 내각제를 하기로 했지만….”
 
그를 박근혜 캠프로 오라고 설득한 것도 김 전 장관이다. 그는 김대중 당선자 시절 노사정위원회를 만들고,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측에서 ‘뭘 보고 돈을 꿔주느냐. 노사가 화해하면 그걸 신용담보로 돈을 꿔 줄 수 있다.’ 이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이걸 맡기니 내가 만들었죠. 그때 사무실 앞 포장마차에서 내가 마신 소주만 두 박스가 넘을 거야. 밤새 대화를 해야 하니까. 이야기가 다 됐는데, 합의 발표 30분 전에 민노총이 못하겠다고 자빠지는 거야. ‘국가 부도가 나면 문 닫아. 네 자리도 없어져. 국가를 위해 충성 좀 해라.’ 이렇게 호소해서 결국 설득했어요. 노사정 대타협이 된 것은 그때 한 번뿐이에요.”
 
그래서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건가요.
 
“구로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지 6개월밖에 안 됐을 때예요. 그런데 옷 로비 사건으로 대통령이 몹시 어렵게 됐다고 실장을 맡아달라는 거야. 대통령 말을 거역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갔습니다. 정치인이 국회의원 배지 떼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진영정치를 하는 바람에 내우외환의 위기라고 걱정했다. 허균의 ‘호민론’을 이야기했다.
 
“백성에는 항민(恒民)·원민(怨民)·호민(豪民)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잘하나 못하나 그냥 복종하는 게 항민이고, 탓하고, 원망만 하는 원민이 있어요. 호민은 이거 안 되겠다, 뒤집어야겠다, 바꿔야겠다고 하는 거죠. 지금처럼 정치를 잘못하면 항민이 원민이 되고, 원민이 호민이 되는 겁니다. 지금 그런 지경에 와 있어요. 대통령이 조국 임명을 취소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고, 여야 영수급이 만나 위기를 넘겨야 합니다. 우리 국민은 착한 국민이라, 그렇게 하면 또 이해하려고 할 겁니다. 참된 지도자는 잘못을 시인하고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한광옥 전 국민통합위원장은 24일 ’최순실 사건 하나만 가지고 탄핵까지 가는 건 나로선 이해가 안 간다“면서 ’정치적인 사건은 법적인 심판 외에도 국민적인 심판, 역사적인 심판까지 받아야 최종 정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한광옥 전 국민통합위원장은 24일 ’최순실 사건 하나만 가지고 탄핵까지 가는 건 나로선 이해가 안 간다“면서 ’정치적인 사건은 법적인 심판 외에도 국민적인 심판, 역사적인 심판까지 받아야 최종 정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그는 ‘상선약수’(上善若水)와 ‘해불양수’(海不讓水)란 말을 좋아한다. 물처럼 돌아가고, 모든 걸 포용하되 짠맛이란 본질은 잃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YS는 따뜻하고 결단력 있고, DJ는 정책적 논리적이고
한광옥 전 비서실장은 서울대생이던 63년 박정희 대통령의 군정 연장 반대 운동을 하다 투옥됐다. 신도환 신민당 대표 보좌관을 하다 81년 11대 총선 때 서울 관악구에서 민한당 공천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82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대중(DJ) 석방, 광주 진상조사,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해 파문을 일으켰다.
“정보 사찰이 엄혹하던 시절이라 아무도 ‘광주’, ‘김대중’을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DJ가 감옥에서 듣고, 고맙게 생각한 겁니다.”
그는 12대 총선에서 신한당 바람에 밀려 낙선했다. 84년 DJ가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 인사를 가자 DJ는 그를 골방으로 불러 ‘동지’라며 감사 표시를 했다. 얼마 뒤 민추협 대변인을 맡겼다.
민추협 대변인 때 DJ, 김영삼(YS) 두 공동의장을 모셨다.
“YS는 따뜻하고, 포용력이 있어요. 결단력이 있어서 아주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능력이 있어요. DJ는 굉장히 정책적이고, 논리적이고… 박정희 도서관을 만드는 것처럼 만델라 같은 포용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요.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점이라면 국가관이 투철한 겁니다. 마지막 결정을 할 때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국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생각해요.”
-박근혜 대통령 리더십은….
“짧은 시간에 평가하기는 그렇지만 그분은 부정이라든가 비리라던가 그런 거 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고집이 있는 거 같고….”
한 전 실장은 부인과 둘이 산다. 아들은 미국, 딸은 뉴질랜드에 있다. 부인은 10년째 폐암 투병(서울대병원)을 하고 있다. 그는 “그 사람 고생 많이 시켜서 내가 수간호사 생활을 한다”고 했다. 못 걷는 부인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휠체어를 밀며 전국으로 이름난 한의사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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