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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모방범행 결론 8차 화성살인도 "내가 했다"…신빙성 논란

중앙일보 2019.10.04 17:42
화성 연쇄살인 범행을 자백한 이춘재(56)가 모방범죄로 결론이 난 8차 화성 살인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8차 사건의 경우 당시 진범이 검거돼 확정판결까지 받은 상태라 진술을 둘러싼 신빙성 논란이 일고 있다.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팀은 "부산교도소에서 이뤄진 대면조사에서 용의자(이춘재)가 10건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두 저질렀다"는 진술을 했다고 4일 밝혔다. 
모방범죄로 결론이 난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까지 자신이 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춘재는 10차례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다른 4건까지 모두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용의자가 10차례 화성 연쇄살인 모두와 화성 일대와 충북 청주 등에서 4건 등 모두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진위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8차 사건 범인, 자백해 형 살다 가석방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8년 9월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의 한 가정에서 중학생 A양(당시 13세)이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 7월 이 사건의 용의자로 화성에 살던 B씨(당시 22세)를 붙잡아 구속했다. 
 
B씨가 구속된 사실을 알린 1989년 7월 27일 중앙일보엔 "경찰은 B씨가 사건 현장 지리에 밝고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혈액형이 일치하고 사귀던 여성이 떠나 여성에 대해 원한을 갖고 있어 범인으로 본다"고 보도됐다. A양 피살 사건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음모를 찾아내 방사성 동위 원소 감별법으로 정말 감식을 했는데 B형으로 음모에 다량의 티타늄이 함유된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후 티타늄을 사용하는 생산업체 종업원을 조사한 결과 B씨의 음모가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B씨는 이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하다가 감형을 받아 2009년 가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2003년 시사저널과 옥중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 "나는 8차 사건 범인이 아니다. 돈도 없고 연줄도 없어서 국선 변호인을 쓸 수밖에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이춘재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8차 사건 수사도 부실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8차 사건 범인 특정, 과학수사 적용돼 

하지만 당시 B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법원의 1심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을 일관되게 자백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작성한 체모 감정의뢰 보고서에 '모발에서 발견된 방사성 동위 원소의 함량이 12개 중 10개가 편차 40% 이내에서 범인과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에 따라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히고 있다. 과학 수사가 적용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야산이나 논 등에서 발견된 다른 피해자들과 달리 8차 사건 피해자는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의 옷가지 등을 범행에 사용한 흔적 등도 없어 당시에도 모방범죄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 수사본부 [중앙포토]

화성 연쇄 살인사건 수사본부 [중앙포토]

 
이춘재가 모방범죄로 규정된 이 사건마저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면서 경찰은 자백의 신빙성을 검증하고 있다. 아무리 공소시효가 끝나 추가 처벌을 받을 수 없다고 해도 범인이 잡힌 사건까지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할 이유가 없어서다.
 

프로파일러와의 심리 싸움?

일각에선 이춘재가 자신을 용의자로 특정한 경찰에 실상을 알 수 없는 정보를 건네 혼란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프로파일러들에게 범행을 실토하는 척 거짓 정보를 밝히는 식으로 심리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앙일보와 통화한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을 냈었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이춘재의 DNA가 나온 4·5·7·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달리 DNA 증거가 없는 나머지 10건의 살인 사건의 실마리는 여전히 이춘재의 입에 달려 있다"며 "이춘재가 범행을 더 과장할 수도 있고 나중에 경찰을 농락하기 위해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경찰행정학과)와 임준태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과)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의식해 자백했을 수 있다"며 "의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래된 사건인 만큼 이춘재가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춘재는 일부 사건은 장소를 그림으로 그려가며 설명하고 있지만, 구체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도 "애초부터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9건을 화성사건으로 보고 수사해 왔다"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이춘재의 진술 신빙성을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춘재가 자백한 15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춘재가 자백한 15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자백 조건 무언가?"…경찰청 국감에서도 화제

이춘재의 진술 신빙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4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이춘재의 자백을 끌어내기 위한 경찰의 수사 방식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 질의 때 "이춘재가 자백하기 전에 경찰에 제시한 조건이 무엇이었냐"라고 물었다. 가족과의 만남이나 먹고 싶은 음식을 요구했다거나, 자신의 현재 모습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등 자백의 대가로 요구한 것이 있느냐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춘재의) 말문을 열게 하기 위해 많은 방법을 프로파일러가 활용했다"며 "구체적인 사안은 수사에 관한 것이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 외에도 이춘재가 본인이 저지른 범죄라고 밝힌 추가 범행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했다고 밝혔다. 
 
김영호 의원은 "혹시라도 이춘재가 자백한 사건 중 경찰이 억울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간 사건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 청장은 "그런 부분들도 하나하나 대조를 해 나가는 중"이라며 "만약 그런 사건이 있게 되면 국민께 알리고 바로 잡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춘재 현재 모습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도 민 청장은 "법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밝혀낸 이후 (공개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원=최모란·최종권 기자, 이후연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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