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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반년간 미제살인 3건, 이춘재 처가가 있는 청주였다

중앙일보 2019.10.04 05:00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가 경찰에 자백한 범행은 살인 14건이다. 모방범죄로 확인된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제외한 9건의 살인 사건 말고도 5건의 살인 사건을 더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30여건의 성범죄(강간, 강간미수)도 했다고 털어놨다.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JTBC 9월30일 뉴스룸에서 보도한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경찰은 이춘재가 군에서 전역한 1986년 1월부터 처제를 살해해 수감된 1994년 1월까지 이 사건들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5건의 살인사건은 화성 일대에서 3건, 충북 청주에서 2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사건 발생 일시와 지역 등 자세한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과거 언론 보도 내용 등을 보면 이춘재의 범행으로 추정되는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수원 여고생 살인, 화성 초등생 실종도?

6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7개월이 지난 1988년 1월 수원시 화서역 인근의 한 논에서 숨진 지 한 달 정도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여고생의 시신이 발견됐다. 중앙일보는 1988년 1월 5일 자 기사로 “수원 변두리 논에서 대학입시를 치른 여고생이 폭행을 당한 뒤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손이 스타킹으로 묶인 채 목이 졸려 숨져있었다”라고 보도했다. 피해자가 착용했던 옷가지 등으로 결박하고 살해하는 수법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특징 중 하나다.
당시 경찰도 이 사건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연장선으로 보고 수원 경찰과 화성 경찰이 공조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당시 다른 용의자를 지목하고 이 용의자가 숨지는 일이 벌어지면서 흐지부지됐다.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가 운영되고 있다. 이날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56)를 총 9회에 걸쳐 접견조사해 현재까지 14건의 살인 및 30여건의 성범죄 자백을 받았다“고 밝혔다. [뉴스1]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가 운영되고 있다. 이날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56)를 총 9회에 걸쳐 접견조사해 현재까지 14건의 살인 및 30여건의 성범죄 자백을 받았다“고 밝혔다. [뉴스1]

 
1989년 7월 9일에는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에서 또 다른 여고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가슴과 등을 흉기로 찔렸고 알몸이었다. 7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10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사건을 보도한 1989년 7월 10일 자 중앙일보는 “시신이 발견된 지점이 3번째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화성군 정남면 관정리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이어서 관련 여부도 수사 중”이라고 썼다. 두 여고생 사건을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연관 지은 것이다.
 
과거 언론이 화성 연쇄 살인사건과 연관을 지었던 사건은 더 있다. 1990년 11월 17일 연합통신(현 연합뉴스)는 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희생자의 소식을 전하며 “지난해 7월 9차 희생자 이웃에 살던 국교생(초등학생) A양(당시 8세)이 실종됐으나 경찰이 이를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 수사를 끝냈다”고 보도했다.
 
당시 기사를 보면 A양은 1989년 7월 7일 낮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됐다. 6개월 뒤인 그해 12월 A양이 입고 나간 청바지와 책가방이 실종 현장 30여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경찰이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해 수사를 종결했다고 한다.
 
A양이 실종된 1989년 7월은 2차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다. 당시 기사에서 연합뉴스는 “지난 88년 한 해 동안 화성에서만 모두 50여건의 가출인 신고가 있었는데 절반가량이 15~30세 부녀자들이라 화성 부녀자 연쇄피살 사건(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주민들은 추측했다”고 덧붙였다.
 
10차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중앙포토]

10차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중앙포토]

 

이춘재 이사한 청주에서의 살인 사건

화성 토박이인 이춘재는 1991년 7월 한 건설업체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했다. 이후 아내의 고향인 청주를 자주 방문했고 1993년 4월 주소를 청주로 옮겼다. 이후 이춘재가 청주를 오갔던 1991년 1월 가경동의 한 공사장에서 1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은 속옷으로 양손이 뒤로 묶인 채 입이 틀어막혀 목이 졸려 숨졌다. 경찰이 당시 10대인 박모군을 검거했지만, 재판과정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 사건은 현재 미제로 분류돼 있다.
 
1992년 4월 23일 청주시 강내면 학천교 경부고속도로 학천교 확장 공사현장에서 2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알몸 상태로 양손이 스타킹으로 묶여 있었다. 당시 경찰은 이 여성이 숨진 지 3~4개월 된 것으로 보고 신원 파악에 나섰지만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같은 해 4월엔 청주시 봉명동에서 30대 술집 여종업원이, 6월엔 복대동에서 20대 가정주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건도 미제로 남았다. 1991년 청주시 남주동에서 발생한 부녀자 피살 사건도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있다.
 
이춘재가 처제를 살해하기 한달여 전인 1993년 11월 30일 청주시 내덕동 셋방에 30대로 추정되는 괴한이 침입해 잠을 자던 1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둔기로 때려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이듬해 1월 30대 피의자가 검거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가 1994년 처제 살인사건으로 경찰조사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가 1994년 처제 살인사건으로 경찰조사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본부는 지난달 말 청주 흥덕경찰서와 청원경찰서 문서고에서 10차 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1991년 4월과 이씨가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검거된 1994년 1월까지의 사건 기록을 확인했다. 충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과거 언론 보도 등을 보면 몇건의 유사 사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이춘재와의 연관성을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30여건의 성범죄도 모두 화성·수원·청주?

이춘재가 털어놓은 30여건의 성범죄로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전 화성지역에서 발생한 연쇄 강간 사건이 가장 먼저 언급된다. 이춘재가 군대에서 전역한 직후인 1986년 2월부터 9월까지 7개월 사이에 당시 화성 태안읍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7건의 성폭력 사건이다. 그해 11월에는 성폭력 미수 사건도 발생했다.
 
용의자는 화성 살인사건처럼 피해자들을 그들이 착용한 속옷이나 스타킹 등으로 결박했다. 피해자들이 진술한 용의자의 생김새도 170㎝ 내외의 키에 보통 체격 등 화성 살인사건 용의자와 같았다. 당시 화성지역에선 성범죄를 당한 여성이 신고 등을 꺼리는 점 등으로 미뤄 “성폭력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경찰은 화성과 인접한 수원, 오산, 평택 등과 이춘재가 살았던 청주지역 성폭행 사건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재는 1989년 9월 수원시 한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해 강도예비 등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1990년 4월 석방됐다. 이춘재는 경찰에 붙잡혔을 당시 “모르는 사람에게 구타를 당해 쫓아가던 중 피해자의 집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성범죄를 시도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최모란·최종권·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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