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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도 “젊은 사원이 회사에 맞추라고? 구찌에선 선배가 신입에게 배운답니다”

중앙일보 2019.10.04 05:00 경제 3면 지면보기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퍼시스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퍼시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퍼시스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퍼시스]

“함께 연구했던 연구원 중에도 X세대 말기에 태어난 팀원이 있었는데, 연구하면서 반성 많이 했다던데요.”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인터뷰
‘내일 위해 오늘 참자’ 이젠 안 통해
힘 가진 기성세대가 문화 바꿔야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지난달 2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워킹-라이프(Working-life·일과 삶)스타일 트렌드’ 연구 결과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날 서울 송파구 퍼시스 본사에서 열린 ‘퍼시스 사무환경 세미나 2019’에서 6개월여 동안 연구한 젊은 직장인의 직장 생활 트렌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김 교수는 2007년부터 한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한 『트렌드 코리아』를 발표해온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연구진과 10명과 함께 젊은 직장인의 직장생활 스타일을 8가지 키워드로 분석해 발표했다. ‘WORK LIFE(일과 삶)’의 알파벳 8글자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부여해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이 회사 안팎의 삶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설명했다. 사무환경 전문 기업 퍼시스는 김 교수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젊은 직장인의 업무 몰입도를 높일 가구·인테리어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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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얼 세대는 보통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2019년 현재 40세가 되지 않은 성인이 이에 해당한다. 사회 변화의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빠른 한국의 경우, 갓 성인이 된 세대와 마흔 살에 가까운 세대 사이에도 세대 차이가 크다. 김 교수는 “밀레니얼 중에서도 세대를 세밀하게 나눌 수 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기성세대인 베이비붐 세대(6·25전쟁 직후 약 10년 사이 출생)·X세대(1970년대생)와는 다른 1980년부터 1994년 출생한 사람까지를 ‘밀레니얼’로 정의하고 연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퍼시스]

[사진 퍼시스]

젊은 세대의 직장인은 왜 연구하게 됐나.
“몇 해 전부터 1990년대생도 본격적으로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고, 결혼하며,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행동은 기성세대도 똑같이 했다. 그런데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무엇인가가 달랐다. 기성세대는 가정 안에서부터 ‘애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가정에서는 담론화가 되지 않았다면, 이 생각이 기업으로 나오면서 담론화가 됐다.”
 
10년 이상 『트렌드 코리아』를 통해 한국 사회의 최신 경향을 분석했다. 그동안 이런 세대변화를 느꼈나.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문을 연 뒤로, 사람들이 연구팀에게 하는 질문은 매년 달라져 왔다. 그런데 최근 2, 3년 사이에 특히 집중적으로 쏟아진 질문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새로운 세대의 특징이 무엇인가’다. 그동안 일상생활에서의 트렌드 연구는 많이 했는데, 직장 안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처음 연구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그래서 지난 6개월 동안 젊은 직장인의 새로운 가치관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했다.”
 
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젊은 세대는 386세대(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당시 30대) 등 기성세대보다 목소리가 작다. 직장에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어떻게 다른가.
“우선 경제적으로 다르다. 과거 한국은 가난했지만, 성장률이 높던 시대다. 기업의 조직도 빠르게 컸다. 해외 등 지사도 많이 생기고, 새로운 사업 확장도 빨리했다. 사원의 승진도 빨랐고, 임금도 빨리 올랐다. 뭐든지 팽창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 시대 사람도 팽창 지향적 사고가 굉장히 강하다. ‘오늘 참으면 내일 더 나은 게 있다. 오늘만 이겨내자’는 식이다.”
 
젊은 세대가 쉽게 갖기 어려운 사고방식인 것 같다.
“1990년대 이후 소득은 일정 수준까지 올랐지만, 성장하는 속도는 굉장히 늦어졌다. 최근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데, 디플레이션처럼 올해보다 내년이 물가가 낮다면 임금도 오르지 않고, 소비도 줄일 것이다. 회사도 빠르게 성장하지 않으니 승진도 안 된다. 그러니 ‘야망을 갖고 내일을 바라보면서 현재를 희생하라’는 식의 얘기는 젊은 세대에게 전혀 와 닿지 않는다.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어서다.”
 
젊은 직장인과 기성세대 직장인은 수직적인 보고체계나 휴가의 사용 등 기업 내 문화를 두고도 세대 차이를 보이는데.
“두 세대가 접한 기술의 차이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됐고, 대학교에 들어갈 때쯤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왔다. 트렌드 연구에서는 소통방식이 중요한 요소다. 예전 방식의 아날로그적 소통을 선호하는 세대와 디지털 매체를 통한 소통을 선호하는 세대의 가치관은 다르다.”
 
젊은 세대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예전에 강의를 요청해오던 곳은 주로 기업의 마케팅이나 신상품 기획 부서였다.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게 기업의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인사 경영을 전문으로 하는 교수가 많지만, 사내에서는 젊은 직장인에 대한 조직과 인사가 중요해지고 있다.”
 
기업이 자칫 젊은 세대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아닌가.
“기업의 임원들이 이런 질문을 했다. ‘회사에 왔으면 회사에 맞춰야지 왜 우리가 젊은 직원에게 맞춰야 하냐’고. 그럼 이렇게 답을 한다. ‘그건 당연한 겁니다.’ 신입사원은 회사에 자신을 어느 정도 맞출 수밖에 없다. 회사의 문화를 바꿀 권한 가진 것은 기성세대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새로운 생각을 문제라고 인식하고 왜 기성의 문화에 맞추지 못하는지 의문을 갖는 순간 조직문화는 흔들린다. 당장 문제는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인재는 떠나게 돼 있고, 조직의 성과는 계속 떨어질 것이다.”
 
기업 안에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서로 맞춰나갈 구체적 방법이 있나.
“아모레퍼시픽이나 구찌 등의 트렌드에 민감한 회사는 ‘역(逆) 멘토링’을 한다. ‘사수’에게 업무를 배우듯 신입사원한테 기존 사원들이 배우는 것이다. ‘요즘 애들은 그렇게 안 해요.’ 얘기를 듣는 게 중요하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퍼시스 본사에서 열린 ‘퍼시스 사무환경 세미나 2019’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워킹-라이프 스타일 트렌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 퍼시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퍼시스 본사에서 열린 ‘퍼시스 사무환경 세미나 2019’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워킹-라이프 스타일 트렌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 퍼시스]

‘WORK LIFE’ 8글자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한 키워드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 특히 젊은 직장인을 잘 설명하는 말이 있다면?
“W에 해당하는(Welcome to ‘Me-World’·‘내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중(中)모드와  I에 해당하는(I’m the PD of my own·나는 내 인생의 프로듀서) 프로듀스 A to Z다. 젊은 직장인에게 회사에서의 빠른 승진은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얼마나 회사에서 크게 성장하는지가 중요하다. 큰 회사,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도 좋은 회사지만 ‘재밌는 회사’여야 한다. 일이 재밌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기르는 재미가 있는 회사여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의 성장도 중요한데.
“과거 기업은 ‘우리는 가족’이라며 직원들의 희생을 요구했다. 가족은 무한책임·무한희생하는 존재다. 회사가 사원의 직장생활을 안고 갈 테니, 회사를 위한 희생 차원에서 늦게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휴가를 반납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회사가 왜 가족이야’라는 생각이 많다. 기업과 직원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쿨한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회사는 업무의 범위 안에서 성장할 기회를 주고, 사원은 회사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라는 것이다.  
 
기업과 직장인이 교환 관계가 돼 가고 있다는 말인데, 오랜 세월 가져온 ‘가족같은 관계’를 어떻게 ‘쿨한 관계’로 바꿀까.
“성과 평가가 중요하다. 전에는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요인으로 ‘승진’ 아니면 ‘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많은 기업이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성과 평가는 하되, 성과 평가를 하는 기준과 사용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어떤 회사가 성과 평가에서 어떻게 ‘성장의 재미’를 반영할지, 어떻게 ‘재밌는 성장’을 보상할지에 대한 설계를 잘 해내느냐가 핵심이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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