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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근의 한반도평화워치] 비핵화와 상응조치 망라한 ‘포괄적 로드맵’ 만들어야

중앙일보 2019.10.04 00:03 종합 27면 지면보기

3차 북·미 회담 필요성과 4대 북핵 쟁점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9월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돌연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해고하자,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급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보좌관의 해고 배경에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리비아 모델에 따라 모든 핵무기를 이전할 것을 요구한 것은 실수”이며 “외교 참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정권 교체, 체제 붕괴, 일괄 핵 포기 등을 추구하지 않으며, 새로운 북핵 해법을 찾겠다는 시그널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분명히 전달한 셈이다.
 

재선 위한 성과 절실한 트럼프
김정은도 트럼프만한 상대 없어
하노이 노 딜 참사 피하려면
실무회담서 합의문 조율해야

올해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려면 최소 2개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북·미 정상은 각각 연내 정상회담 개최가 자국뿐 아니라 각자에게도 이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둘째, 양국의 비핵화 셈법이 맞아야 한다. 두 정상 모두 하노이 정상회담과 같은 ‘노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연내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북·미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는 두 정상에게 이익이고, 비핵화 계산법의 접점을 찾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트럼프 기회 요인 아직 유효
 
2018년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을 가능케 했던 ‘트럼프 기회 요인’은 아직 유효하다. 사실 하노이 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는 연일 살얼음판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김정은의 친서 외교에 호응하고, 판문점 ‘번개 회동’으로 하노이 회담의 앙금을 털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틈틈이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라고 재확인함으로써 미국·한국·일본 내의 대북 강경론도 무마시켰다. 북한의 반복된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북·미 합의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며 유엔 안보리의 대북 추가 조치를 거부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가 명시적으로 모든 탄도미사일의 발사를 금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감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회담 계획에 대해서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 그에게 연내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동기가 있을까. 최근 들어 미국 경기의 하강 추세, 미·중 무역 경쟁의 피해 확산, 대통령 탄핵 추진 가능성, 소수 인종의 결집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갑자기 경고등이 커졌다. 게다가 트럼프에게 북한 핵실험 중단 말고는 내세울 외교적 성과가 없다. 그나마 북한이 지금처럼 내부 핵 활동과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면 민주당에 공격 거리가 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모든 카드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실질적인 비핵화 합의와 성과가 있어야 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의 명예와 재선을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노린다면 2020년 1월 말까지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어야 한다. 따라서 북·미 실무회담과 정상회담을 위한 시간이 별로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찾는 조건”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며 정상회담 시한을 제시했었다. 그는 경제발전을 이루고, 정상 국가의 지도자가 되고픈 꿈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핵무장으로 유엔 제재를 받고 미국과 적대 관계를 유지하는 한 이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그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자 기회이다. 북·미 대화와 북·일 대화를 이렇게 독려하는 한국 대통령을 찾기 어려울 것이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호감을 보이고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미국 대통령은 더더욱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재선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 대한 관심과 호의를 계속 보일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만약 미국에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신 행정부는 트럼프식 일방주의를 포기하고 다자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더욱 엄격히 집행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의 이런 정치적 고려를 감안한다면 핵 합의를 위한 연내 추가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핵물질 생산 중단과 북·미 수교 협상 교환
 
두 정상이 연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결정했다면, 그 다음 큰 고비는 하노이 ‘노딜’의 참사를 피할 수 있는 합의문 채택이다. 연내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면 10월 초까지 실무회담을 열어 합의문 협상을 시작해야 했는데 다행히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북·미가 오는 5일 실무협상을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무 핵 협상에서 예상되는 주요 쟁점과 이에 대한 해법을 아래에 제시한다.
 
첫째, 하노이에서 미국은 북한에 소위 ‘영변 플러스’의 초기 비핵화 조치, 비핵화 정의(최종 상태), 단계적 비핵화 로드맵 등 3개를 요구했는데,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필자는 이에 대한 북한의 대답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도 상호적으로 초기 상응 조치, 상응 조치의 정의, 상응 조치 로드맵 등을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이때 실무회담은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망라하는 ‘포괄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양국 간 깊은 불신을 고려할 때 상세한 로드맵은 불가능하며, 상호 등가적 조치를 포함한 개념적 로드맵이면 충분할 것이다.
 
둘째, 북핵 협상의 최대 쟁점이자 성과물은 ‘초기 비핵화 조치’가 될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포기’와 미국의 ‘영변 플러스’ 입장이 충돌했다. 필자는 ‘일체 핵분열 물질 생산 중단 및 생산시설 폐쇄’를 최소 핵심 목표로 제안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미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핵무기 생산 중단”을 선언했으므로 이 선언을 확인하는 작업이 핵 협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셋째, 핵 검증도 주요 쟁점이다. 흔히 북핵 검증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에 적용하는 전면적인 핵 사찰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이런 사찰을 반복하여 북한에 적용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필자는 비핵화와 북·미 관계 진전에 맞추어 검증을 단계적으로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 초기에는 신고 시설에 한해 관찰·입회·봉인 등 낮은 수준의 검증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향후 북한이 NPT에 재가입하면 전면적인 핵 사찰을 수용해야 한다.
 
넷째, 비핵화에 대한 상응 조치 문제가 있다. 하노이에서 북한은 미국에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는 대가로 민수경제부문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러자 북한은 오히려 상응 조치의 수준을 높여 안전 보장 제공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필자는 상응 조치로서 북·미 수교와 제재 해제를 병행하여 단계적으로 제공할 것을 제기한다. 북·미 수교는 미국의 최대 협상 카드이므로 3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물질 생산 전면 중단과 북·미 수교협상 개시를 교환할 것을 제안한다. 제재 완화도 여전히 주요 협상 카드다. 북한 체제의 최대 약점은 경제인 데다, 북한도 물질을 매우 중시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북핵 해결 위한 시간과 정책 옵션 줄어
 
북한은 미국의 정치·외교적 안전 보장 약속을 정책 변화와 정권 교체에 따라 쉽게 버리는 종잇장쯤으로 본다. 북한은 안전 보장 약속을 주한미군 철수, 미 의회의 법률적 보증, 경제 협력의 물질적 보증 조치 등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데, 그나마 세 번째 조치가 실현 가능할 것이다. 북한이 94년 제네바 북·미 합의에 따라 핵 활동을 동결했는데, 이는 미국의 관계 개선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사업을 물질적 보증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오늘 북핵 문제는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군사·외교 과제이자 부담이다. 더욱이 각종 분석 보고서는 지금도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이 증강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에게 북핵 해결을 위한 시간과 정책 옵션이 급속히 줄고 있다. 북한 체제 붕괴, 한국 자체 핵무장, 북핵과 동거, 미국 전략자산과 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도입 등 자주 거론되는 옵션은 모두 실현성이 낮거나 수용하기 어렵다. 아직 현실적인 옵션은 남북 관계 정상화, 북·미 수교, 북·일 수교,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달성하는 것이다. 과거 북한 핵 개발과 핵 협상 역사의 연장 선상에서 보면 머지않아 이 옵션마저 잃을까 우려된다. 따라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와 성공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 겸 소장 직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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