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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의 문제” 라더니 “비공개 소환” 文 압박에 檢 원칙 바꿨나

중앙일보 2019.10.03 17:03
정경심 교수가 비공개 소환된 3일 서울지검 출입구 앞에 포토라인이 붙어 있다. 최승식 기자

정경심 교수가 비공개 소환된 3일 서울지검 출입구 앞에 포토라인이 붙어 있다. 최승식 기자

 
공휴일인 개천절 오전 8시 55분쯤 조국(54) 법무부 장관 아내 정경심(57) 동양대 교수가 서울중앙지검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조사실로 향했다. 1층에 대기해있는 10여 대의 카메라와 20여 명의 취재진을 피해 '비공개 소환' 방식으로 조사를 받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는 현직 장관 부인을 ‘황제 소환’ 됐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공개소환을 하겠다던 검찰이 상대적으로 세간의 관심과 취재 열기가 덜한 공휴일에 비공개 방식으로 핵심 피의자를 부른 것이 명백한 특혜란 취지에서다. 과거 다른 피의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정경심 1층 소환…‘원칙의 문제’라던 검찰

 

당초 검찰은 1층 청사 소환, 즉 '사실상' 공개소환 입장을 견지했다. 지난달 25일 검찰 관계자는 “(정 교수 1층 청사 소환은) 원칙의 문제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소환일정 등은 정해진 바가 없다. 다만 청사 1층 출입문을 통한다는 원칙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기류는 일주일 새 확 달라졌다. 검찰은 지난 1일부터 비공개 소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주부터 정 교수의 건강상태에 대한 염려가 제기됐고, 또 국민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통상의 소환 방식으로 출석하다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그런 불상사로 인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사에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스스로 밝힌 원칙을 바뀐 셈이다.
 

文 "절제하라" 주문에 말 바꿨나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 안팎에선 최근 검찰을 향해 '인권'을 주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직접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 이튿날인 28일에는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렸다. 
 

피해가기 어려운 형평성 논란  

 
결국 이날 검찰은 정 교수에 대해 '1층' 대신 '비공개' 소환을 결정했고, 형평성을 무시한 채 현직 장관 부인만 ‘특혜 소환’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언론 관심을 피하기 쉬운 공휴일에, 더군다나 취재진의 질문을 피해 지하주차장으로 비공개 소환했다는 것이 명백한 특혜라는 취지에서다.
 

2016년 10월 검찰은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을 비공개로 소환하려 했다가 ‘황제 소환’이라는 비판을 받고 철회했다. 우 전 수석은 대신 출석일을 검찰과 상의한 끝에 언론의 관심 등이 다소 적은 일요일 오전을 택해 공개소환 됐다.  
 
'국정농단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가 서울중앙지검에 모자와 안경을 쓰고 도착했다(맨 오른쪽). 최 씨는 시위하는 시민과 기자단을 거치는 중에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 이후 검찰 청사 안에 들어선 최 씨에게선 안경과 모자도 보이지 않았다. [연합뉴스]

'국정농단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가 서울중앙지검에 모자와 안경을 쓰고 도착했다(맨 오른쪽). 최 씨는 시위하는 시민과 기자단을 거치는 중에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 이후 검찰 청사 안에 들어선 최 씨에게선 안경과 모자도 보이지 않았다. [연합뉴스]

 
‘국정농단’ 관련 피의자들은 대개 소환이 공개됐다. 당시 최순실(63·최서원으로 개명)씨는 취재진에 밀려 균형을 잃고 주저앉아 신발과 안경이 벗겨졌다. 심정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울음을 터뜨렸다.  
  
입시 비리로 조사를 받은 최씨의 딸 정유라(23)씨도 공개 소환됐다. 그러나 같은 입시 비리 의혹을 받는 조 장관 딸(28)과 아들(23)은 모두 비공개 조사가 이뤄졌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자녀 비공개 소환방식에 대한 일부 비판 혹은 비난 여론까지도 알고 있다”면서 “그런 것까지 고려해 고민해서 비공개 소환 방식을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포승에 묶인 장면이 그대로 노출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법조계 “검찰 ‘산 권력’에 대해서만 특혜 주나”

조국 법무부 장관이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이 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특혜는 검찰의 고질적인 병폐라는 비판도 나온다. 1999년 옷로비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은 김태정 당시 법무장관의 부인 연정희씨를 서울중앙지검이 아닌 대검찰청 조사실에서 조사해 논란을 빚었다. 심지어 조사한 뒤에는 대역을 먼저 내보내는 수법으로 취재진을 따돌리기도 했다. 당시 김 장관은 옷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취임 15일 만에 물러났다.
 

검찰 안팎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른바 적폐 수사 관련인을 변호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비공개 소환이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며 “국정농단·사법농단 수사 등 죽은 권력은 공개 소환하던 검찰이 산 권력을 수사할 때만 비공개 소환을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여권 등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차장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검찰이 스스로 자신의 말을 뒤집은 것인데 이는 검찰 입장에서도 상당한 부담이고 쉽지 않은 선택"이라며 "대통령 발언의 영향이 컸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수민·정진호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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