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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83세 노인 위기가구로 8회 발굴하는 이상한 복지

중앙일보 2019.10.03 15:47
아사한 탈북모자를 형상화한 그림.[중앙포토]

아사한 탈북모자를 형상화한 그림.[중앙포토]

전남에 사는 채모(83)씨는 정부의 위기가구 리스트에 가장 많이 올랐다. 2016년 4월 이후 8차례 위기가구로 선정됐다. 3년 사이에 이렇게 연속적으로 위기가구에 들어간 게 정상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사회보장정보원 자료를 분석해 위기가구 발굴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한 자료를 3일 공개했다. 김 의원은 "위기가구를 발굴해서 지원한다면서 60%를 민간자원을 활용하다 보니 '언 발에오줌 누기식'이 돼 빈곤층이 복지 사각지대에 다시 내몰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 탈북모자 아사 분석
위기가구 찾아도 쌀값 할인 등 민간지원 집중
근본 해결 못하니 위기 벗어나지 못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앞당겨야"

채씨는 2016년 4월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했다. 5명의 자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위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자 혜택이 끊겼다. 수급 중지가 되면 사회보장정보원의 위기가구 발굴시스템에서 체크된다. 단전·단수·건보료 체납 등 29가지 위기 징후를 종합해 두 달마다 5만~7만명의 위기가구를 찾아서 지자체에 통보한다. 지차제가 방문 조사 해서 적합한 복지를 지원한다. 
 
채씨는 처음에 위기가구 리스트에 오르면서 지자체의 노인돌봄서비스를 받았다. 65세 이상 노인 중 장기요양보험 대상자에 들지 못하는 '등외 A,B' 판정자에게 가사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월 27시간이나 36시간을 지원하며 본인이 1만8000~2만4000원을 부담한다.
 
채씨는 석 달 후 또 위기가구 리스트에 올랐다. 기초수급자가 재선정되지 않았고, 월 4만여원의 월세를 내고 살았는데, 이런 점이 위기가구 발굴시스템에서 포착됐다. 이듬해 2, 4, 7월, 지난해 3,9월, 올해 3월에도 그랬다. 김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일곱 번은 지자체 처리 여부난에 '조치 완료'로 돼 있다. 그런데 그게 별 게 아니다. 2016년 6월~9월 쌀 50% 할인, 노인돌봄서비스, 통합문화이용권 등이다. 대부분 지역의 민간단체에 연결해 이 같이 지원했다.
아사한 탈북모자의 아이가 그린 그림.[중앙포토]

아사한 탈북모자의 아이가 그린 그림.[중앙포토]

 

AI 발굴 그럴 듯하지만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은 두 달마다 돌린다. 29가지 요건을 넣어 인공지능(AI)이 반복 학습(머신 러닝)을 하면서 위기가구를 골라낸다. 2017년 1월~올 5월 발굴시스템이 62만9329가구를 발굴했다. 이 중 25%가 2회 이상 중복으로 발굴됐다. 채씨처럼 8회 중복 발굴 6가구이다. 5회 이상이 4727가구에 달한다.
 
위기가구를 발굴해서 제대로 지원하면 이후에 리스트에 들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올해 지원의 60%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푸드뱅크·희망풍차(대한적십자사)·결연후원금 등의 민간 자원을 활용한 '얕은 지원'이다 보니 위기가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민간 서비스 지원의 비율은 2016년 31%에서 매년 증가해 올해 60%로 늘었다. 기초생활보장·차상위계층 지원 등의 공적 부조 비율은 14%에 불과하다. 김 의원 측은 "발굴한 위기가구가 적절한 도움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다 보니 다시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상희 의원은 "아무리 위기가구 발굴을 강화한다 해도 기초수급 자격이 제한받거나 지원 제도가 충분하지 못하면 위기가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며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실천에 옮겨 극빈층의 삶의 무게를 덜어야 한다"고 말했다.
 

빈곤층보다 보편적 복지에 집중

복지예산의 왜곡도 위기가구 반복의 원인이다. 최근 10년 동안 복지예산이 매년 10% 안팎으로 증가해 올해는 예산의 35%를 복지에 쓴다. 하지만 아동수당·기초연금·무상보육 등 소위 '보편적 복지'에 빨려 들어가면서빈곤층 복지에 돌아오는 몫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보편적 복지를 외치는 목소리는 여전히 커지만 빈곤층 집중 지원 주장은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  
 

건보료 17개월 체납 탈북모자 발굴 못하고 12개월 체납자는 찾아내

김 의원은 AI 발굴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굶주리다 숨진 것으로 알려진 탈북 모자 한모씨는 17개월 동안 23만60원(월 1만3550원)의 건강보험료를 체납했다. 이 정도면 위기가구로 선정돼야 한다. 반면 12개월 81만7760원을 체납한 이모씨는 지난 5월 고위험 가구로 분류됐다. 지자체가 사례관리 서비스로 연계했다. 이씨처럼 건보료 체납 사실만으로위기가구로 발굴된 사람이 1029가구이다. 한씨 모자는 여기에 들지 못했다. 김 의원은 "한씨의 건보료 연체 기간이 긴데도 발굴하지 못한 사실을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김 의원실은 "한씨 모자의 체납액이 적어서 위기가구 후보군에서 제외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AI가 발굴한 위기가구와 실제 상황이 다를 때도 적지 않다고 한다. 단전·단수·단가스 상황이라고 나온 집에 가보면 이미 이런 문제가 해결된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건보료를 체납해 위기가구 리스트에 오른 사람을 찾아가 보면 이미 복지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지자체가 다른 경로를 통해 위기 상황을 인지해 대응했기 때문이다. AI가 일종의 '뒷북 발굴'을 한다는 뜻이다.
 
김 의원은 "머신러닝 시스템이 새로운 위기가구 패턴을 읽기 힘든 것 같다. 현장 공무원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좀 더 정밀하게 위기가구 발굴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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