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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 좋은 식당 주인인데"…휴일에 문 연 60대 산사태 참변

중앙일보 2019.10.03 15:20
“휴일이었지만 인근 공장 근로자들한테 밥해준다고 식당 문을 여셨어요.”
3일 태풍 ‘미탁’으로 산사태가 발생한 부산 사하구 구평동 현장을 찾은 주민들은 식당 주인 배모(65)씨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소방본부와 부산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5분쯤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의 한 야산에서 토사가 무너져 내리면서 인근 주택과 식당을 덮쳤다. 이 사고로 배씨와 권모씨(75) 일가족 3명이 매몰됐다. 이 가운데 배씨와 일가족 가장인 권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나머지 가족 2명은 이날 밤 9시30분 현재 실종 상태다.

부산 구평동서 토사 흘러내려 주택·식당 덮쳐
주택에 있던 일가족 , 식당주인 등 4명 매몰돼
소방·경찰, 구조·수색나서…2명 숨진 채 발견

태풍 미탁이 한반도를 관통한 3일 오전 부산 사하구 한 공장 뒤편 야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사고 현장. 토사가 인근 주택과 식당, 공장 건물을 덮쳐 일가족 3명과 식당 주인이 매몰됐다. 수색대는 이중 숨진 2명을 발견하고 나머지 2명을 찾고 있다.[연합뉴스]

태풍 미탁이 한반도를 관통한 3일 오전 부산 사하구 한 공장 뒤편 야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사고 현장. 토사가 인근 주택과 식당, 공장 건물을 덮쳐 일가족 3명과 식당 주인이 매몰됐다. 수색대는 이중 숨진 2명을 발견하고 나머지 2명을 찾고 있다.[연합뉴스]

 
사고 현장은 참혹했다. 주택은 지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파묻혔고 식당은 가건물로 된 천막 1개 동이 매몰됐다. 토사는 산 정상 부근에서 피해를 본 주택ㆍ식당까지 400m 가량 흘러내려 왔다. 
 
배씨는 사고가 난 야산 아래에서 인근 공장 근로자를 위한 가설 건물 식당을 운영해 왔다. 개천절인 이날은 휴일이라 당초 식당 문을 열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특근해야 하는 공장 근로자들이 식당을 열어달라고 요청해 이날 일을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주민 강모(69)씨는 “이 식당에서 밥을 먹어 배씨를 수년간 봐왔다”며 “매일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인심이 좋아 근로자들도 그를 어머니처럼 따랐다”고 말했다.
 
배씨와 함께 매몰된 일가족은 이 마을 토박이다. 권씨와 아내 성모(70)씨 부부가 수십년간 아들 3명을 기르며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첫째와 둘째 아들은 출가했고,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막내아들(44)과 함께 살았다. 주민들은 이들 가족이 텃밭 농사를 짓고 있었고 이웃과 정도 두터웠다고 전했다. 
 
수색·구조작업에 나선 소방당국은 사고 발생 7시간 만인 오후 4시쯤 매몰된 식당 주인 배씨를 먼저 발견했다. 배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사인은 ‘압착성 질식사’였다. 오후 5시 20분쯤에는 일가족 가장인 권씨가 추가로 발견됐다. 권씨 역시 숨진 상태였다. 소방당국은 사고 당시 주택에 권씨 가족 3명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사고 현장에서 이들의 휴대전화 위치를 조사한 결과 ‘위치정보’가 매몰된 장소로 나왔다. 이들과의 통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군부대는 600여 명을 동원해 매몰자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구조에는 포크레인 등 중장비 20여 대와 인명 구조견도 투입됐다. 해가 지자 경찰과 소방당국은 나머지 실종자 2명을 구조하기 위해 야간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태풍 미탁이 한반도를 관통한 3일 오전 부산 사하구 한 야산에서 산사태가 발생, 토사가 일대를 뒤덮었다. 부산소방본부와 경찰 등은 건물에 매몰된 일가족 3명과 식당주인을 수색해 2명을 발견했다. [연합뉴스]

태풍 미탁이 한반도를 관통한 3일 오전 부산 사하구 한 야산에서 산사태가 발생, 토사가 일대를 뒤덮었다. 부산소방본부와 경찰 등은 건물에 매몰된 일가족 3명과 식당주인을 수색해 2명을 발견했다. [연합뉴스]

 
산사태가 발생한 구평동 야산은 정상에 예비군훈련장이 조성됐고 석탄재가 대거 매립된 지형으로 알려졌다. 사고 현장에서는 훈련장에서 흘러 내려온 검은 토사가 뒤덮였다. 훈련장 비탈은 경사가 가파른 편이지만 축대 등 산사태 방지시설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평동 주민들은 “산 정상부근에 예비군훈련장을 만들면서 석탄재로 지반을 매립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평소에도 산사태 우려가 높아 장마나 태풍 때마다 불안했다”고 말했다.
 
태풍 미탁 여파로 부산에는 지난 2일부터 96.6㎜(공식관측소 대청동 기준)의 비가 내렸다. 낙동강홍수통제소는 상류에서 방류를 시작하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만조시간이 겹치면서 이날 오전 8시 20분을 기해 구포대교 일대에 홍수주의보를 내렸다. 부산권 낙동강에 홍수주의보가 발령된 것은 7년 만이다.
 
비슷한 시간인 이날 오전 9시6분쯤 경북 울진군 울진읍의 한 단층주택에서도 주택이 붕괴하면서 강모(67)씨와 김모(62·여)씨 부부가 매몰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가 수색을 거쳐 이들을 구조했지만, 목숨을 구하지는 못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주택 뒤편 경사면의 흙이 무너지면서 주택이 붕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울진 지역에는 지난 1일부터 이날 오전 10시까지 555㎜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태풍 미탁으로 인해 낙동강 상류에 많은 비를 뿌려 낙동강 하류에 7년 만에 홍수주의보가 내려진 3일 오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낙동강 주변 강변 도로가 불어난 물에 침수돼 있다. 송봉근 기자

태풍 미탁으로 인해 낙동강 상류에 많은 비를 뿌려 낙동강 하류에 7년 만에 홍수주의보가 내려진 3일 오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낙동강 주변 강변 도로가 불어난 물에 침수돼 있다. 송봉근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는 부산 주택·상가와 울진 매몰 사고 소식을 접한 뒤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신속하게 구조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추가적인 토사 유출과 매몰사고 방지를 위한 안전조치를 취하고 사고 현장 통제 등으로 더는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신진호 기자, 부산·울진=이은지·백경서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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