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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화평·화관법이 시행되면 신규 물질 등록에 수천만 원이 들어갑니다. 회사에서 쓰는 화학물질이 50종이 넘는데 이걸 다 등록하려면 최소 수 억원은 들어가는데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이걸 어떻게 감당하나요. 규제 때문에 해외 나가야겠다는 기업도 많습니다.”
 
지난달 25일 만난 염색 중소 A기업 대표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이상구 한국염료안료공업협동조합 이사는 “염료처럼 소량 다품종을 생산하는 업종은 매출보다 화학물질 등록비가 더 큰 기업도 있다”며 “이렇게 되면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환경규제 장벽이 높아지면서 규제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3일 발표한‘기업 현장방문을 통한 환경규제 합리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가 새로 도입한 환경규제는 509건으로 조사됐다. 단순 계산으로도 매년 46건의 환경규제가 추가된 것이다. 무역협회는 “기존 규제도 매년 30~80건씩 규제 내용 측면에서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규제가 매년 증가하면서 기업 10곳 중 7곳은 규제내용 파악조차 힘겨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역협회가 지난 8월 실시한 설문 조사에선 응답 기업 100곳 중 68개 기업이 규제 내용 파악이 어렵다고 답했다. 비용 부담(65곳), 내부 전문인력 부족(56곳) 순이었다. 매년 신설 및 강화되는 환경규제가 경영에 큰 부담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무역협회는 해석했다.
 
기업이 환경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도 부족했다. 이번 조사에선 규제의 구체적인 기준을 담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공포 이후 시행까지 평균 소요기간도 각각 5일과 10일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협회는 “기업이 규제 이행에 필요한 시험 및 인증, 설비 투자, 신규 인력 배치 등 대책을 마련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규제 이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분석했다.
 
 
늘어나는 규제에도 기업이 대응할 시간이 없다 보니 가장 강력한 처벌인 허가취소와 폐쇄 명령은 늘고 있다. 지난해 환경규제 위반에 따른 허가취소(478건)와 폐쇄 명령(609건)은 2014년과 비교해 각각 4.7배, 1.2배씩 늘었다. 인프라도 제대로 못 갖춘 상황에서 규제가 먼저 시행되다 보니 국내 사업장에 대한 지도·단속 강화로 다수의 업체가 허가취소나 폐쇄 명령 조치를 받은 것이라고 무역협회는 설명했다.
 
무역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환경규제 강화가 환경기술개발 등 관련 산업 활성화로 연결되지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환경규제가 강화되면 기업은 규제 대응 비용을 지출해 관련 산업 매출도 증가한다. 또 오염물질 저감 등 규제대응 기술이 개발·보급되는 선순환 시장이 형성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대기관리산업 환경부문 기업 매출액은 2013년에 6조원에서 2017년에 5조5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장현숙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신설·강화된 규제와 관련해 기업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며 “환경과 기술 개발을 동시에 고려한 법규의 제정과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등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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