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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목걸이와 프랑스 혁명이 무슨 관계?

중앙일보 2019.10.03 11:00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26) 

앙투아네트의 초상(1783). 비제-르브렁 作. [사진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앙투아네트의 초상(1783). 비제-르브렁 作. [사진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한 왕비를 죽음으로 몰고 간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있다. 프랑스 역사상 희대의 사기 사건이자 프랑스 혁명을 점화시킨 역사적 사건에 연루된 다이아몬드 목걸이다. 왕실 보석상인 뵈머가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다이아몬드 647개를 모아 만든, 총 2800캐럿짜리 목걸이. 그 목걸이가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무슨 사연일까.
 
마리 앙투아네트는 14세 때인 1774년, 프랑스왕 루이 16세의 왕비 자리에 등극했다.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인 그녀는 ‘작은 요정’이라 불렸다. 사교·관극·수렵·미술·음악 등의 모임에 아름다운 외모를 드러내며, 검소한 국왕 루이 16세와는 달리 사치를 즐겼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

사건의 발단은 1772년 루이 15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이 15세는 자신의 애첩인 뒤바리 부인을 위해 왕실 보석상인 뵈머에게 최고의 다이아몬드를 모아서 목걸이를 만들어 오라고 명했다. 그러나 그만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 줄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
 
뵈머는 새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이 목걸이를 사달라고 간청했다. 비록 ‘적자부인(赤字夫人)’이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던 앙투아네트지만 목걸이가 너무 비싸다고 거절했다. 프랑스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알았고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목걸이를 스카프 같다”고 평했다니 말이다.
 
복원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목걸이. [사진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복원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목걸이. [사진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그 무렵 로앙 대주교는 출세를 위해 앙투아네트의 신뢰를 얻고자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앙투아네트는 타락한 대주교를 싫어했다. 이런 정황을 알고 ‘잔느 드 라 모트’라는 백작 부인이 대주교에게 접근해 자신이 앙투아네트의 신임을 받는 신하라고 속인다. 잔느는 대주교에게 앙투아네트가 루이 15세가 주문한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고 싶어한다면서, 그 목걸이를 사다가 바치면 왕비의 환심을 살 것이라고 꾀여내는데 성공한다.
 
잔느는 다른 공범들과 함께 왕비를 닮은 소녀를 왕비로 꾸며, 대주교와 베르사유 궁의 한 숲에서 만나게 한다. 대주교는 그림자밖에 보지 못했음에도 앙투아네트가 완벽하게 자신을 총애하게 됐다고 착각한다. 결국 대주교는 뵈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서 잔느에게 넘겨줬다.
 
1785년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다. 잔느는 사기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대주교도 재판을 받았지만 “나는 속았을 뿐”이라고 주장해 무죄 판결로 풀려났다. 하지만 대주교의 유무죄가 문제가 아니었다. 사건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는 법. 엄청난 금액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졌고 이 때문에 민심을 잃고 있던 앙투아네트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막이 오른다. 잔느가 혁명 세력에 의해 탈옥해서 영국으로 도망친 후, ‘잔느 발루아 회고록’이라는 책을 내서 앙투아네트가 사치하고 방탕하며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식의 이야기들을 퍼뜨렸다. 혁명 정부는 앙투아네트를 심문했고 앙투아네트는 적어도 다이아몬드 목걸이 문제에 관한 한 결백했지만, 여론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자 파리의 왕궁으로 연행되어, 시민의 감시 아래 생활을 하다가 국고를 낭비한 죄와 반혁명을 시도하였다는 죄명으로 처형당했다.
 
영화 ‘어페어 오브 더 넥클리스’ 포스터.

영화 ‘어페어 오브 더 넥클리스’ 포스터.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은 모리스 르블랑(1864~1941)의 초기작 ‘여왕의 목걸이’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어페어 오브 더 넥클리스(원제: The Affair of the Necklace. 2001년작)’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784년의 프랑스를 그대로 무대에 재현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도 지난 8월부터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오는 11월 17일까지 공연한다.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오르게 하는데 촉매 역할을 한 2800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이 아름다운 목걸이의 운명도 자못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하다. 대주교를 속여 목걸이를 손에 넣은 잔느는, 이를 런던에 보내서 처분했다.
 
처분한 것까지는 좋은데, 목걸이를 깡그리 분해해서, 다이아몬드를 하나도 남김없이 팔아버렸다. 18세기 로코코 시대의 섬세하고 우아한 디자인을 그대로 담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목걸이는 그래서 잔해조차 남아 있지 않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처럼,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민은미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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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미 민은미 주얼리 마켓 리서처 필진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 주얼리가 좋아서 주얼리회사에 다녔다. 명품회사에서 세일즈 매니저로 18년간 일했다. 주얼리는 소중한 순간을 담는 물건이다.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인생 여정과 함께 해온 주얼리가 있다. 주얼리 박스는 누구에게나 설렘을 안겨준다. 나를 빛나게, 세상을 빛나게 만드는 주얼리 이야기. 창 넓은 카페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차 한 잔 같이 하는 마음으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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