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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잘라 혈서 쓴 ‘여자 안중근’ 남자현의 유언

중앙일보 2019.10.03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58)

남자현 지사의 마지막 모습. 아들 김성삼과 손자 김시련이 임종을 지키고 있다. [사진『독립혈사』]

남자현 지사의 마지막 모습. 아들 김성삼과 손자 김시련이 임종을 지키고 있다. [사진『독립혈사』]

 
남자현(南慈賢‧1872∼1933) 지사는 여성의 몸으로 의열 투쟁의 전면에 나섰던 독립운동가다. 그는 1927년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권총 한 자루와 탄환 8발을 숨긴 채 만주에서 서울로 잠입했으나 실패한다.
 
1932년에는 손가락을 잘라 ‘조선의 독립을 원한다’는 혈서를 썼다. 이듬해에는 만주국 건립 1주년에 참석하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이자 만주국 대사인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 암살을 추진한다. 2015년 배우 전지현이 주연한 영화 ‘암살’의 배경이다.
 
남 지사는 불행히도 거사 직전 밀정의 고발로 일경에 체포되고 만다. 그는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지하 감옥에서 여섯 달 동안 가혹한 고문에 시달리다 병보석으로 나와 1933년 8월 22일 60세로 순국했다. 그에게 ‘여자 안중근’이란 수식어가 붙는 까닭이다.
 
경북 영양 남자현 지사 생가에 올 초 세워진 동상. 왼쪽 넷째 손가락이 잘려 있다.[사진 송의호]

경북 영양 남자현 지사 생가에 올 초 세워진 동상. 왼쪽 넷째 손가락이 잘려 있다.[사진 송의호]

 

일제 때 조선 총독 암살 기도 

남 지사의 남편은 경북 영양에서 의병으로 활동했다. 25세 청년 김영주는 1896년 전투에서 사망한다. 당시 남 지사는 아이를 배고 있었다. 유복자 아들이 김성삼이다. 1919년 어머니와 아들은 만주로 망명한다.
 
남 지사는 순국하면서 유언한다. 아들은 이후 어머니의 유언을 지극정성으로 실행한다. 그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1975년 『나의 생애』라는 김성삼의 비망록이다. 80세 때다. 일부를 소개한다. 독립운동가 모자(母子)의 투철함이 느껴진다.
 
“1933년 모친 남자현 여사는 하얼빈에서 왜경에 체포됐다. 그 후 3차에 걸쳐 모친을 면회한 나는 그해 8월 안동현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모친이 보고 싶어 하얼빈으로 갔다. 집에 당도하니 어머니는 8월 6일부터 실행한 옥중 단식으로 ‘명재(命在)경각이라, 병급즉래(病急卽來)’라는 전보를 46장이나 보내 쌓여 있었다.
 
경북 영양 남자현 지사 생가의 추모각. [사진 송의호]

경북 영양 남자현 지사 생가의 추모각. [사진 송의호]

 
하얼빈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모친을 뵌 지 6시간. 모친은 그때 유언을 하셨다. ‘너의 원수는 네가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 우리 독립은 정신’이라면서 옷깃을 뜯어 하얼빈 화폐 248원을 끄집어내 내게 주셨다. ‘이 돈을 우리나라 독립 축하금으로 바쳐라. 만일 너의 대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너도 유언해 실행하라’ 하셨다. 그리고 이어 ‘손자를 대학 공부시켜라. 친정 문호를 이어 달라’는 말씀을 끝으로 이날 정오 순국하셨다. 나는 모친 유언을 다음과 같이 실행했다.
 

아들은 육사 8기로 특채

첫째, 독립축하금은 1946년 3‧1절 기념식 때 만주화폐 200원과 조선은행권 200엔을 설명서와 동봉, 김구 선생에게 드리고 사유를 말씀드렸다. 둘째, 손자(김시련) 대학 공부시키는 문제는 그 당시 그곳에 대학이 없어 우선 소학교를 마치고 간이학교를 거쳐 내몽고 부여현 농업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학생 80명 가운데 5등으로 졸업한 후 하얼빈에 농과대학이 설립돼 무난히 합격, 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대한민국 경북 김천농고 교장으로 있다. 셋째, 친정 문호를 이어 달라 하신 말씀은 내가 모친 묘에 비석을 세우고 우리나라로 들어와 친정 종손 남재각을 찾아 만주로 데리고 가 부자 상면시키고 공부를 시켰다. 그는 용정사범학교를 마치고 한국에 와 영주초등학교 교장을 지내고 가족이 10여 명, 대학생이 2명이나 된다.”
 
김성삼은 이후 육군사관학교 특채 8기로 6‧25에 참전했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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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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