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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양이에게 유산 상속할 수 있나요? 방법 있습니다

중앙일보 2019.10.03 07:00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84)

 

올해 초로 기억하는데요. 샤넬의 디자이너인 라거펠트의 유산을 반려묘 슈페트가 받을 거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고양이가 될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그 고양이가 몹시 부러웠어요. 저는 그때까지 고양이를 키우지 않아서 그냥 정말 가족처럼 지냈나보다 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샤넬의 전설로 불린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 생전 그가 사랑했던 반려묘 슈페트. [사진 슈페트 인스타그램]

샤넬의 전설로 불린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 생전 그가 사랑했던 반려묘 슈페트. [사진 슈페트 인스타그램]

 
그런데 제가 고양이를 한 마리 입양하게 되었고, 요즘은 그 녀석 보는 재미로 삽니다. 할머니들이 돈을 내놓고 손주 자랑을 한다는 그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요. 친구들이 이제 그만하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저는 커피값을 내더라도 우리 냥이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싶어요.
 
남편과 오랫동안 이혼 소송을 하면서 냉정하게 변한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그 녀석이 온 다음부터 편하게 잠을 자고 인간성을 되찾은 것 같아요. 그 작은 녀석의 체온 덕분이겠죠. 그 녀석 때문에 며칠 집을 비울 수도 없고, 직장에서 피곤한 상태로 집에 와서도 제일 먼저 청소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이제는 그 녀석이 없으면 안 된답니다. 제가 행복하려면 그 녀석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요즘 고민이 생겼어요. 물론 냥이가 저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갈 확률이 높지만 만약 제가 냥이를 두고 먼저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아이도 없고 남편과는 이혼해서 만약 제가 죽으면 재혼하신 아버지가 제 상속인이 되는데,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면 제 남동생이 제 상속인이 되겠죠.
 
그럼 우리 냥이는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가야겠죠? 아버지는 고양이를 질색하시고, 남동생도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울 가족이 냥이와 동거하는 것은 불가능할 거에요. 이런 생각이 들자 샤넬 디자이너로부터 상속받은 유명한 고양이가 기억이 났어요. 저도 우리 냥이에게 상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상속받을 예정이라는 사실만으로 유명해진 고양이 기사를 저도 보았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기사를 통해 추측을 해보면 라거펠트는 그 고양이가 라거펠트 사후에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일정 금액을 신탁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정인에게 상속하듯이 특정 동물에게 상속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집을 상속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집을 관리하고 처분하는 것은 사람이니까요.
 
사례자의 경우 상정할 수 있는 상속재산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데 ‘유언대용신탁제도’를 이용하면 가능합니다. 유언대용 신탁은 위탁자가 자신이 사망한 때에 수익자에게 수익권을 귀속시키거나 위탁자가 사망한 때로부터 수익자가 신탁이익을 취득할 수 있는 수익권을 부여하는 형태의 신탁입니다.
 
'유언대용신탁제도'를 이용하면 특정 동물에게 상속이 가능합니다. 자신의 생전 의사표시로 사망 후 상속재산의 귀속을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유언보다 간편하게 활용이 가능합니다. [사진 pxiabay]

'유언대용신탁제도'를 이용하면 특정 동물에게 상속이 가능합니다. 자신의 생전 의사표시로 사망 후 상속재산의 귀속을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유언보다 간편하게 활용이 가능합니다. [사진 pxiabay]

 
사례자가 집을 동생이 상속하도록 하지만 고양이가 생존하는 한 고양이를 돌봐 줄 사례자의 지인이 그 집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언대용 신탁은 위탁자가 자신의 생전 의사표시로 사망 후 상속재산의 귀속을 정한다는 점에서 민법상 유언에 의한 증여와 법률효과가 같지만, 유언대용 신탁은 유언이 아니기 때문에 유언의 방식을 갖출 필요가 없어 유언보다 간편하고 융통성이 있어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사례자가 친지와 친구 중에서 고양이를 키워 줄 사람에게 일정 금액을 남겨 줄 수도 있는데, 이것을 유언으로 하면 고양이를 키우든 키우지 않든 일정 금액이 지급됩니다. 반면 유언대용신탁제도를 이용하면 고양이를 키워줄 수 있는 사람(수익자)에게 수탁자(예를 들어 금융기관)가 고양이를 실제 돌봐주는 경우 일정 금액을 지급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금융기관에는 이렇게 본인 사후에 수탁자(금융기관)가 반려동물을 돌봐 줄 사람(수익자)에게 일정 금액이 지급되도록 하는 신탁상품도 나와 있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등록제도도 시행되고 있는데 사람과 반려동물이 법과 제도로 보호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배인구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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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구 배인구 법무법인로고스 가사·상속센터장 필진

[배인구의 이상(理想)가족] 어쩌면 힘들고, 아픈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잊고 지냈던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오랜 판사 경험을 가진 필자가 이 같은 고민을 함께 나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일부 내용을 재구성·각색해 매주 가족 이야기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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