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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문화원 폭파'로 억울한 옥살이…35년만에 무죄 선고

중앙일보 2019.10.03 05:00
1983년 발생한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재심이 열린 지난해 10월 25일 대구법원 앞에서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재심 청구자들과 지역 인권단체 회원들이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인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1983년 발생한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재심이 열린 지난해 10월 25일 대구법원 앞에서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재심 청구자들과 지역 인권단체 회원들이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인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이른바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옥살이를 한 5명이 35년 만에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북대 재학 중이던 20대에 ‘용공분자’로 몰려 불법구금과 고문, 거짓 자백을 강요당해야 했던 이들은 중년이 돼서야 누명을 벗었다.
 

1983년 대구미문화원서 폭발물 가방 터진 사건
범인 검거 못해…경북대생 5명 용의자 몰려 유죄
"실체 밝혀달라"며 진실화해위에 요청…재심
1일 법원, 무죄·면소 선고…"위로와 사과 드린다"

1983년 9월 22일 오후 9시30분쯤 대구 중구 삼덕동2가 대구미국문화원(현 경북대병원 건너편) 정문에서 폭발과 함께 굉음이 울려퍼졌다. 미문화원의 담벼락이 무너지고 창문이 모두 깨질 정도로 큰 폭발이었다. 폭발은 문 앞에 놓여 있던 정체불명의 가방이 갑자기 터지면서 일어났다. 가방 안에는 TNT, 부비트랩 등 폭발물이 들어 있었다. 이 폭발로 고등학생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사건 직후 국가안전기획부와 대구지방경찰청, 육군 등이 합동정보신문조(합신조)를 조직해 수사에 착수했다. 합신조는 간첩 또는 공산주의자와 연관에 초점을 맞춰 수사했다. 1년 2개월간 수사 선상에 오른 용의자만 74만9777명에 달했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1983년 9월 22일 일어난 대구 미문화원 폭발 사고 후 경찰 수사관들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83년 9월 22일 일어난 대구 미문화원 폭발 사고 후 경찰 수사관들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경찰은 용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경북대 학생들을 이 사건과 무관하게  ‘불온서적’ 소지 등 혐의로 붙잡아 수사했다. 지금은 중년이 된 박종덕(60)·함종호(62)·손호만(61)·안상학(57)·우성수(사망)씨 등 5명이다.
 
경찰은 83년 9월 영장도 없이 이들을 연행해, 한 달 가까이 불법으로 가두고 고문했다. 특히 ‘고문 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경감에게 심각한 가혹 행위를 당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반공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기소됐다.
 
84년 1월 19일 법원은 박종덕씨에게 징역 3년·자격정지 3년을, 나머지 피고인에겐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이들은 항소를 포기하면서 형이 확정됐고, 84년 3월 2일 형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석방된 이후에도 불법 구금·고문·거짓 자백 강요 등은 이들을 평생 괴롭했다.
 
박씨는 2006년 11월 3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요청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이뤄진 무차별 검속과 불법 구금, 고문 등 피해와 이 사건의 실체를 밝혀달라”고 했다.
1983년 9월 22일 일어난 대구 미문화원 폭발 사고 후 건물 앞에 간판이 나뒹굴고 있다. [중앙포토]

1983년 9월 22일 일어난 대구 미문화원 폭발 사고 후 건물 앞에 간판이 나뒹굴고 있다. [중앙포토]

 
2008~2010년 조사한 진실화해위는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2016년 3월 재심 개시를 확정했지만, 검찰이 항고하면서 절차가 늦어져 지난해부터 재판이 열리게 됐다.
  
대구지법 형사2단독 이지민 판사는 1일 이들 모두에게 적용된 집시법 위반죄는 면소 판결하고, 박종덕씨의 국보법·반공법 위반죄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불법 구금돼 고문을 당하면서 쓴 자술서·진술서·심문조서와 검찰에서 자백도 본인 의지대로 한 게 아닌 것 같다”며 “그 외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국보법·반공법 위반 증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시법 위반은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집회 또는 시위’ 부분을 삭제했으므로 면소를 선고한다”고 했다. 또 “피고인들이 고문으로 받은 신체적·정신적 피해에 대해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박종덕씨는 최후변론에서 “그때 고문받으며 당한 고통이 제 평생을 지배했다.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일 밤 쫓기는 꿈을 꿨다. 그로부터 벗어나기까지 3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인권운동연대는 2일 “무죄 선고만으로 피해자들에게 지난 35년의 고통의 세월과 아픔을 헤아릴 수 없으며 근본적인 위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다만 어떠한 이름의 국가폭력도 용납돼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었을 것”이라고 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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