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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만은…" 10대 성매매 피해자 돈으로 회유한 '인권 변호사'

중앙일보 2019.10.03 05:00
법원 이미지. [중앙포토]

법원 이미지. [중앙포토]

"편지 100만원, 증인 400만원" 변호사의 솔깃한 제안

성매매 피해를 본 10대 청소년에게 본인이 변론을 맡은 가해자 부부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편지를 쓰고 법정에서 증언해 주면 돈을 주겠다고 회유해 변협에서 징계를 받은 변호사가 이른바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 논란이 일고 있다.  

홍모 변호사, 성매매알선 부부 항소심 변론
피해 소녀에게 "선처 부탁" 500만원 건네
돈 준 사실 숨겨…"재판부 오해할까 우려"
변협, 진실의무 위반 과태료 300만원 징계
여성단체 "피해자 약점 악용한 폭력" 비판
변호사 "절차 위반 인정… 거짓말 안 시켜"


 
해당 변호사는 "변호사 윤리 강령을 어긴 건 잘못이지만, 돈을 주고 피해자에게 거짓 증언을 부탁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성적 착취를 당한 10대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한 인사가 '인권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다루는 활동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나한테 돈 받기로 한 적 있어? 아니라고 해야 해"

2일 법조계에 따르면 홍모(38) 변호사는 2017년 8월 21일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과태료 3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징계 사유는 품위유지의무 위반 및 재판 절차에서의 진실 의무 위반이다.  

 
전주지법과 홍 변호사에 따르면 2017년 초 윤모씨 부부는 가출 청소년 A양(당시 17세)에게 24차례에 걸쳐 성매매를 시킨 혐의로 1심에서 각각 징역 4년과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성매매 당시 A양은 만 16세였다.

 
항소심에서 윤씨 부부 측 변론을 맡은 홍 변호사는 2017년 3월 A양의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윤씨 부부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편지를 재판부에 제출하면 100만원,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면 추가로 4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성매매 이미지. [연합뉴스, JTBC 뉴스룸 캡처]

성매매 이미지. [연합뉴스, JTBC 뉴스룸 캡처]

당시 홍 변호사는 A양에게 "재판에 증인으로 (나가면) 뭐라고 할래? 아이가 있는데, 두 명 다 구속돼야 하는 건지. 감옥에 가는 것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면 된다)"고 했다. 실제 A양은 재판에 증인으로 나갔고, 홍 변호사는 A양에게 500만원을 줬다. 하지만 돈을 준 사실은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홍 변호사는 "변호사인 나한테 돈 같은 것을 받기로 한 적 있어? 그건 아니라고 해야 해, 진짜로. 그 편지는 네가 쓴 거야. 내가 쓰라고 해서 쓴 게 아니고"라고 했다. A양은 이 발언을 모두 녹취했다.   
 

변협 징계 이후에도 인권 활동 순항

사건이 문제가 되자 변협은 홍 변호사를 징계했다. 이후에도 홍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로 왕성히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원인 홍 변호사는 현재 전주시 인권위원회 위원과 육군본부 인권강사,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운영위원, 익산 여성의 전화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자치단체와 방송에서 주최하는 인권 관련 토론 패널로 나가거나 로스쿨에서 인권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홍 변호사는 일명 '전주판 도가니' 사건으로 2015년 12월 법인 설립 허가가 취소된 자림복지재단(자림원) 민관대책협의회 위원이기도 하다. '전주판 도가니' 사건은 자림원 전 원장과 전 국장이 2009년부터 수년간 시설 내 여성 장애인 4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각각 징역 13년과 10년을 선고받아 2015년 5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사건이다. 홍 변호사는 지난해 열린 자림복지재단 임시이사회에서 법인 청산인으로도 지정됐다.  
 

시민·여성단체 비판…"선의 가장한 또 다른 폭력"

뒤늦게 홍 변호사의 징계 소식을 안 전북 지역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권지현 성폭력예방치료센터 소장은 "주변에 피해자를 도와주는 사람이나 안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미성년자인 당사자에게 직접 '글(처벌 불원서)을 써주면 100만원, (법정에) 나가면 400만원'이라는 제안을 한 것은 선의를 가장한 또 다른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역 사회나 홍 변호사가 속한 인권 관련 기관에서 이런 윤리적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분이 계속 그 기관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동의할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권 소장은 "피해자가 돈도 있고 주변에 지지 체계가 있었다면 홍 변호사의 제안에 순순히 응했겠느냐"며 "본인이 변호하는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재판을 끌고 가기 위해 경제적으로 취약한 피해자의 약한 상황을 악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에게 충분한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은 채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감정에 호소하고, 피해자에게 약한 지점인 돈으로 회유하는 것은 어느 면으로 봐도 잘못"이라고 했다.

 
김남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정책위원장도 "인권 변호사를 자칭하고 각종 대책위 등에서 인권 활동을 하는 게 도덕적으로 적절한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치단체나 각종 위원회 위원들이 스스로 전문가임을 내세우는데 이번 기회에 이들이 이런 활동을 하는 데 도덕적·윤리적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고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 이미지. [중앙포토]

변호사 이미지. [중앙포토]

변호사 "사건 과장·왜곡…돈 줬지만 거짓말 안 시켜"

이에 홍 변호사는 "변호사의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변호사 윤리 강령을 어겼지만, 사건이 과장·왜곡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피해자에게 증인을 서달라고 요구하고 피해 보상금을 준 건 맞지만, 거짓 증언을 부탁한 사실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그는 "변협에서 징계를 받은 것은 (대리인을 통하지 않고) 피해자 사전(직접) 접촉을 금지한 변호사 윤리 강령을 위반했기 때문이지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다. 당시엔 이 규정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홍 변호사는 "피고인 부부가 '피해자가 수사 기관에서 한 진술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고 얘기해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간 피해자를 증인으로 세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다 보니 부득이 SNS를 통해 연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해자가 가출하면 또 성매매할 것 같아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동안 생활비나 방값을 보태주는 게 오히려 아이(피해자)한테 좋겠다는 게 당시 부모님(피고인)과 제 생각이었다"고 했다.  
 

"대가 없이 활동했는데…삶 전체 부정돼야 하나"  

홍 변호사는 "가해자 부부는 당시 스무 살, 스물한 살로 네 살배기 딸을 둔 부모로서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돈이 없어 (피해자에게)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처벌받았다"며 "부부가 1심에서 모두 구속돼 부인 친구들이 아이를 돌아가면서 보는 사정이 딱해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피고인 부부가) 아이를 키우고 있고, (그 아이가) 피해자를 '언니'라고 부르며 잘 따라서 '(피고인 부부의) 선처를 바란다'고 얘기해 달라고 요청한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A양에게 돈을 준 사실을 숨긴 데 대해 그는 "법정에서 'SNS를 통해 (피해자에게) 연락했다'는 건 얘기했지만 '피해 보상금을 주겠다'고 한 건 혹시 피해자에게 거짓말을 시키면서 돈을 준 것처럼 (재판부가) 오해할 것 같아 밝히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홍 변호사는 "나도 피고인 부부 자녀 또래 아이가 있어 그들에게 감정을 이입해 너무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과정에서 징계를 받긴 했지만, 이 때문에 지금까지 대가 없이 인권을 위해 활동했던 제 삶 전체가 부정되거나 앞으로 인권을 말하지 말라고 하는 건 폭력적"이라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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