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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과학&미래] 이스라엘 디스카운트

중앙일보 2019.10.03 00:13 종합 29면 지면보기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이란 나라는 연구·개발(R&D)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사업에는 서툴다고 생각했다. 이는 전 세계, 특히 우방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했다. (…) 기업을 인수할 때면 ‘○○○○ 디스카운트’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되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책의 내용 중 일부다. ‘○○○○’가 어디일까. 열에 아홉은 당연히 ‘대한민국’이라고 답을 할 것 같다. 국내총생산 대비 R&D 투자가 세계 1~2위를 기록하고, 논문·특허 실적도 세계 으뜸 수준이지만,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는 게 없다는 비판이 너무도 익숙한 현실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자본시장의 특성을 요약해주는 단어로 굳어 진지 오래다.
 
하지만 책 속의 답은 ‘이스라엘’이다. 지난 15일 발간된 『요즈마 스토리』(이갈 에를리히 지음, 이원재 옮김)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21세기 이스라엘은 스타트업의 나라다. 서울시 인구보다 작은 900만 명이 사는 소국이지만 6500개의 스타트업이 있고, 매년 1000개의 스타트업이 새로 생겨난다. 나스닥에 미국·중국 다음으로 많은 93개의 기업을 상장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쯤 얘기하면 흔히 나오는 반박이 있다. ‘미국의 정치·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민족이 유대인이다. 그들이 서로 밀고 당겨주는 네트워크가 있다 보니 작은 나라지만 그런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여기서 반전. 이스라엘은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말 그대로 디스카운트의 나라였다. 특히 90년대 초 소련이 무너지고 100만 명가량의 유대계 러시아인들이 몰려들면서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다. 대학도 출연연도 연구만 하려 했지,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드물었다. ‘스타트업 국가’ 이스라엘은 이때 태어났다. 정부가 나서서 지역별로 창업 인큐베이터를 설립하고, 펀드를 육성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여기까지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한국은 여전히 디스카운트의 오명에 시달리고 있을까. 사실 답도 안다.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제도와 분위기가 있느냐다. 한번 사업에 실패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나라를 벗어나지 못하면 디스카운트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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