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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살인 14건 성폭력 30건” 이춘재 그림 그려가며 실토

중앙일보 2019.10.03 00:03 종합 10면 지면보기
화성 연쇄살인 사건(1986년 9월~1991년 4월)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가 화성사건을 포함한 14건의 살인범죄 말고도 성범죄를 30여건 저질렀다고 추가로 시인했다. 경찰은 당시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이춘재의 자백에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본부는 2일 오전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화성살인 DNA 들이밀자 입 열어
“언젠가 이런 날 올 줄 알았다”
수사기록에 없는 사건까지 자백
기억 의존해 진술 신빙성 확인 중

숫자로 본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숫자로 본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는 모방범죄로 확인된 8차 사건을 제외한 9건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물론 5건의 추가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고 실토했다. 화성·수원 등 경기지역에서 3건, 처제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충북 청주에서 2건의 살인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살인 사건 말고도 30여건의 성폭력 사건과 성폭력 미수 범행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범행 기간은 군에서 전역한 1986년 1월 이후부터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해 검거된 1994년 1월까지 8년 동안이라고 한다.
 
경찰은 살인사건 5건과 30여건의 성폭력·미수 사건의 발생 장소와 일시 등은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화성 연쇄살인 사건 전인 1986년 2월부터 그해 7월까지 화성지역에서 발생한 7건의 화성 연쇄 강간 사건과 1986년 11월 발생한 1건의 미수 사건 등이 이춘재의 추가 범행으로 거론되고 있다. 1988년 12월과 1989년 9월 수원시 화서역 인근과 오목천동에서 각각 발생한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도 다시 언급되고 있다. 이들 사건 모두 피해자가 착용하고 있던 의류 등으로 결박하는 등 동일한 수법을 보였다. 과거 이 사건을 취재했던 전직 신문기자는 “당시 화성지역에서 여성들이 실종되고 성폭력을 당했다는 소문이 많이 있었다”며 “특히 성범죄의 경우 피해 여성에게 오점이 남기 때문에 피해를 보고도 신고하지 않은 여성들도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춘재가 1993년 결혼을 하면서 이사한 충북 청주에서도 그해 11월 20대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피해자도 스타킹으로 결박됐다. 수법만 보면 화성 연쇄살인·강간 사건과 비슷하다. 경찰은 이춘재가 오래전 기억에 의존해 자백한 만큼 당시 수사자료 등을 검토해 자백의 신빙성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자백한 내용에 대한 수사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가 입을 연 것은 지난주부터다. 경찰은 이춘재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한 이후 지난달 18일부터 1일까지 9차례 걸쳐 부산교도소를 찾아 대면조사를 했다. 프로파일러 9명을 투입해 이춘재와 ‘라포(rapport·신뢰와 친밀감)’를 형성한 뒤 자백하게 했다고 한다. 이춘재는 장소를 묘사하는 그림을 그리며 일부 사건을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프로파일러의 투입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DNA 분석 결과가 이춘재의 자백을 끌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국과수 분석 결과 5차, 7차, 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증거물에 이어 4차 사건 증거물에서도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DNA 증거들이 잇따라 나오자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하던 이춘재는 돌연 심경 변화를 일으켜 자백하면서 “언젠가는 이런 날이 와 내가 한 짓이 드러날 줄 알았다”는 말을 내뱉었다고 경찰 관계자가 2일 전했다. 그는 경찰이 DNA 분석 결과를 알려주자 “DNA 증거가 나왔다니 할 수 없네요”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사본부장인 반기수 경기남부청 2부장은 “용의자가 자발적으로 범행을 털어놓고는 있지만 오래된 사건을 기억에 의존해 진술하다 보니 일시와 장소 등에 편차가 있어서 세부적 사건 내용은 확인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최모란·진창일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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