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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땀방울의 결실, 6·25 전사자 유족 66년 한 풀어줬다

중앙일보 2019.10.02 00:35 종합 20면 지면보기
전인석 육군 35사단 전주대대 전주 완산구지역대장이 지난달 27일 전주 교동 군경묘지를 찾아 6·25 전쟁 때 전사한 고 이점수(아명 이상오) 하사의 묘비를 닦고 있다. [사진 35사단]

전인석 육군 35사단 전주대대 전주 완산구지역대장이 지난달 27일 전주 교동 군경묘지를 찾아 6·25 전쟁 때 전사한 고 이점수(아명 이상오) 하사의 묘비를 닦고 있다. [사진 35사단]

“(우리) 모녀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이 이제야 풀린 것 같습니다.”
 

전인석 전주 완산 예비군지휘관
생활고 시달리던 유복자 사연에
발품 팔아 묘적대장 기록 등 찾아
“국가유공자 유족 대우받았으면”

전북 전주에 사는 이길순(66·여)씨가 1일 육군 35사단을 통해 전한 말이다. 최근 이씨는 어머니 김모(86)씨 뱃속에 있을 때 육군에 입대한 아버지 고(故) 이점수씨가 6·25 전쟁 중 전사했다는 사실을 66년 만에 공식 기록을 통해 확인했다.
 
이씨는 육군 35사단 전주대대 전인석(55) 전주시 완산구 지역대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전 대장은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이씨 아버지의 전사자 기록을 찾아 준 인물이다. 이씨 모녀는 전 대장의 도움 덕분에 국가유공자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열렸다.
 
35사단에 따르면 이씨는 전 대장이 전주 덕진구 기동대장으로 근무하던 2009년 7월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당시 이씨는 “제적등본에는 아버지가 1953년 6월 27일 전사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병적 기록을 찾을 수 없어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앞서 2005년 7월 육군본부에 병적 확인을 신청했지만 “자료를 찾을 수 없다”는 회신을 받고 유관 기관을 전전하다 전 대장을 만났다.
 
쉰 살이 넘어서야 아버지 기록을 찾아 나선 건 이씨 형편이 곤란해서였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이씨는 현재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홀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오랫동안 모시고 살던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간 뒤로는 병원비까지 대고 있다.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전 대장은 대신 발품을 팔기로 했다. 이씨 아버지의 병적 기록을 찾기 위해 전북지방병무청과 전북동부보훈지청·육군본부·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등에 질의하고 자료를 요청했다. 확인 작업은 2013년 7월 전주시청에서 이씨 아버지의 묘적대장을 찾으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 대장은 묘적대장 기록을 단서로 올해 5월 전사자 화장 보고서도 확보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 이점수(아명 이상오) 하사는 52년 8월 7일 입대 후 1사단 11연대 3중대 9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그리고 53년 6월 27일 경기도 연천지구 전투에서 북한이 쏜 82㎜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이씨의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오랜 세월이 흐른 데다 동명이인이 많고 제적등본과 병적서에 기록된 이름·생일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사단 측은 설명했다.
 
전 대장은 고인의 묘적대장 등을 토대로 전북지방병무청으로부터 이씨의 병적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또 54년 9월 30일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기록도 확인했다.
 
전 대장은 “아버지를 잃고 가난과 싸워온 사연이 너무 안타까워 돕게 됐다”며 “국가유공자 유족으로서 충분한 대우와 혜택을 받아 그동안의 고통과 원망을 잊고 행복한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 대장은 83년 육군3사관학교 20기로 임관한 뒤 2004년 소령으로 전역, 2005년 예비군지휘관에 임용됐다.
 
하지만 이씨가 국가유공자 유족 대우를 받으려면 넘어야 할 고비가 있다. 아직 사망한 아버지와의 부녀 관계를 공식 인정받지 못해서다. 이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 소송을 전주지법에 제기한 상태다. 최환 35사단 공보관은 “사단은 2일 석종건 사단장 주관으로 전 병력이 참석한 가운데 ‘호국 영웅’인 고 이점수씨의 화랑무공훈장을 딸 이길순씨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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