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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리 심각해?' 명대사 빼고 재즈처럼 연기한 피닉스의 ‘조커’

중앙일보 2019.10.01 18:34
영화 '조커'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한 조커. 맨 처음 그는 공책에 "나의 삶보다 나의 죽음이 더 가치 있기를"이라 끄적이는 비운의 광대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조커'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한 조커. 맨 처음 그는 공책에 "나의 삶보다 나의 죽음이 더 가치 있기를"이라 끄적이는 비운의 광대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왜 그리 심각해(Why so serious)?” 이런 대사로 영웅 배트맨을 약 올리던 간사한 조커는 없었다. 지난달 코믹스 기반 히어로 영화론 사상 처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대상)을 차지한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가 2일 개봉한다.  
영화는 DC코믹스에서 80년간 군림해온 미치광이 악당이자, 배트맨의 숙적 조커의 탄생기를 그렸다. 주인공은 빈부 격차가 극에 달한 도시 고담의 가난하고 고독한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병든 홀어머니는 그를 ‘해피’라 부르며 세상에 기쁨과 웃음을 주라 하지만, 코미디언을 꿈꾸는 그에게 돌아오는 건 사람들의 비웃음과 발길질뿐이다.  

코믹스 영화 최초 베니스국제영화제 대상
배트맨 숙적 탄생기 다룬 ‘조커’ 2일 개봉
주연 호아킨 피닉스 아카데미 수상 점쳐
예술적인 히어로물 vs 폭력 미화 '논란'

어릴 적 뇌손상을 입은 그는 울고 싶은 순간마다 오히려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린다. 비정한 세상은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 모르는 그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총을 쥐여주고, ‘조커’란 존재가 발사될 뇌관을 건드린다.  
 

조커 탄생기, 슬프고도 기구하다

아서의 현재는 비루하다. 그는 종종 정반대 현실을 상상하는데, 이런 상상이 극 중 현실과 뒤섞여 나중에는 점점 분간하기가 어려워진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서의 현재는 비루하다. 그는 종종 정반대 현실을 상상하는데, 이런 상상이 극 중 현실과 뒤섞여 나중에는 점점 분간하기가 어려워진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는 히어로물보단 찰리 채플린의 서글픈 코미디와 더 닮았다. 1980년대 초로 설정된 희망 없는 도시 풍광은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나 시드니 루멧 감독의 ‘네트워크’ ‘형사 서피코’ 등 1970년대 영화 속 베트남전쟁 후 음울했던 뉴욕을 연상시킨다. 훗날 배트맨이 되는 어린 소년 브루스 웨인과의 악연, 그의 집사 알프레드 등 원작 시리즈와 느슨한 연결고리는 있지만, 독립된 영화에 더 가깝다.  
조커에게 이런 평범한 이름과 기구한 사연을 부여한 건 코믹스․영화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조커가 주인공인 단독 영화가 개봉한 것도 최초다. ‘행오버’ ‘듀 데이트’ 등 B급 코미디 영화를 주로 해온 토드 필립스 감독이 각본을 겸해 어디에도 없던 조커 이야기에 광대의 비애마저 실어냈다.  
“희극과 비극간의 경계를 탐험한 영화다. 한 번도 다뤄진 적 없는 이 다층적인 악당의 기원을 통해 히어로물 장르를 완전히 전복시켜보려 했다.” 지난달 26일 한국 취재진과 화상 기자회견에서 그의 얘기다.  
 

영양실조 상태 늑대처럼…23㎏ 감량

퀭한 눈, 마른 볼, 갈비뼈가 두드러진 몸으로 그는 자신을 내모는 세상과 점점 멀어진다. 조커는, 그 혼자서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퀭한 눈, 마른 볼, 갈비뼈가 두드러진 몸으로 그는 자신을 내모는 세상과 점점 멀어진다. 조커는, 그 혼자서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절박한 심장박동까지 전해올 만큼 사실적이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속 잭 니콜슨부터, 3년 전 DC코믹스 악당이 뭉친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속 자레드 레토까지 역대 어떤 조커와도 다르다. 완벽히 몰입한 열연으로 히어로물 캐릭터 최초 아카데미상(남우조연상)을 거머쥔 후 요절하며 신화로 남은 히스 레저의 조커와도 결이 다르다.  
잔혹한 로마 황제를 연기한 ‘글래디에이터’를 비롯해 ‘앙코르’ ‘마스터’ 등 뒤틀리거나 방황하는 영혼을 그려 세 차례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올랐던 호아킨 피닉스다. 2년 전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선 유년기와 전쟁의 트라우마로 늘 자살을 꿈꾸는 청부업자 역을 맡아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마블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 역을 포기하고 택한 이번 영화에서도 작정하고 캐릭터에 덤벼들었다. 조커가 되기 전 아서가 “영양실조 상태의 늑대처럼 보이길 바라” 하루 사과 한 알만 먹으며 23㎏이나 감량했다. 움푹 팬 눈매와 갈라진 윗입술은 흰 얼굴, 시뻘건 입술의 광대분장으로 더욱 부각했다.  
 로버트 드 니로(왼쪽)가 광대 아서의 우상이자 고담시의 유명 TV 토크쇼 진행자 머레이 프랭클린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이 한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건 이번이 처음. 호아킨 피닉스는 "로버트 드 니로를 만나면 묻고 싶은 질문이 너무 많아 떨렸다"고 영화사와 인터뷰에서 전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로버트 드 니로(왼쪽)가 광대 아서의 우상이자 고담시의 유명 TV 토크쇼 진행자 머레이 프랭클린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이 한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건 이번이 처음. 호아킨 피닉스는 "로버트 드 니로를 만나면 묻고 싶은 질문이 너무 많아 떨렸다"고 영화사와 인터뷰에서 전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조커 연기, 고갈되기 보단 힘 얻었다" 

조커가 된 후의 아서는 우아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차별화했다. 그 대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게 계단 장면이다. 출퇴근길마다 무거운 몸을 고통스레 옮기던 가파른 계단을, 조커를 자각한 후 그는 깃털처럼 가볍게 춤추듯 내려온다. 세상에 맞춰 살기 위해, 더는 자신을 짓누르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촬영지침이 호아킨 피닉스가 원하는 대로 연기를 펼치도록 놔두는 것이었단다. 아서가 냉장고로 들어가는 강렬한 장면도 사전 계획 없는 즉흥 연기였다. 현장에서 첼로 음악의 묵직한 선율에 맞춘 발놀림이 곧장 아서의 상징적인 몸동작이 되기도 했단다. “다른 사람들이 머리로 계산할 동안 호아킨은 재즈 연주하듯 연기한다. 그의 연기는 용감하면서도 연약하고, 겁이 없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말이다. 피닉스는 “힘든 날도 있었지만 소진되거나 고갈되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조커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을수록 힘을 받고 동기 부여가 됐다”고 돌이켰다.  
아서가 광대 분장을 한 채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모습. 다음 장면에서 그는 우상인 토크쇼 진행자 머레이(로버트 드 니로)에게 자신을 '조커'라 불러달라 말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서가 광대 분장을 한 채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모습. 다음 장면에서 그는 우상인 토크쇼 진행자 머레이(로버트 드 니로)에게 자신을 '조커'라 불러달라 말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미국 현지에선 벌써 내년 초 그의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점치는 분위기다. ‘범죄계의 광태자(Clown Prince of Crime)’로 불리던 조커를 연민하고 그에게 설득되게 만드는 연기니 이견의 여지가 없다. 반면 또 다른 우려도 나온다.  
 

미국에선 청불, 한국에선 15세 관람가

영화 '조커' 촬영 현장에서 토드 필립스 감독과 주연 호아킨 피닉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조커' 촬영 현장에서 토드 필립스 감독과 주연 호아킨 피닉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서의 총기 사고가 촉발하는 폭동이 영화 속에 마치 불의에 저항하는 혁명처럼 그려진다는 이유다. 극 중 아서가 이웃 여성 소피(재지 비츠)에게 품는 감정도 불편하다고 지적된다. 미국 시사지 ‘타임’은 이 영화에 100점 만점에 20점을 주며 “데이트하지 못한 슬픈 남자는 킬러 히어로가 된다. 그건 정말 역겨운 조크”라고 혹평했다. 실제 미 육군은 4일 이 영화의 현지 개봉을 앞두고 SNS(소셜네트워크)상에 인셀(insel‧비자발적 독신주의자, 여성 혐오자) 극단주의자들의 위험한 움직임이 보인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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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영화는 미국에선 청소년관람불가에 해당하는 R등급을 받았다. 일본‧영국‧스웨덴 등과 함께 한국에선 15세 관람가다. 한국영상물등급위원회는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방위험 등이 (매우 높음이 아닌) 다소 높은 수준”이라고 등급 결정 이유를 전했다. ‘조커’ 홍보사는 “국내 개봉 버전이 본편에서 삭제되거나 달라진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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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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