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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막아낸 장비와 독일군 침공 막아낸 소련군 탱크 공통점

중앙일보 2019.10.01 15:26

Focus 인사이드

 
장판교에서 조조를 막아선 장비 [사진 sina.com.cn]

장판교에서 조조를 막아선 장비 [사진 sina.com.cn]

 
아두를 품에 안은 조운이 필사적으로 조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구인 장판교(長坂橋)를 향해 말을 달렸다. 바로 그때 다리 입구에 있던 장비가 외쳤다. “자룡은 어서 가시오. 뒤는 내가 담당하겠소” 결국 조운은 안전하게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잠시 후 조운을 뒤쫓아 달려온 조조의 군대는 다리 위에서 단기필마로 유유자적하게 기다리고 있는 장비를 보고 진격을 멈추었다.
 
조조는 의외의 상황에 몹시 당황했다. 그동안 제갈량에게 수없이 속은 경험이 있어서 홀로 있는 장비 뒤에 수많은 적군이 매복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처럼 고민하며 시간이 흐르자 조조의 옆에 있던 하후걸이 나섰다. “승상! 제가 나가서 장비의 목을 따가지고 오겠나이다” 이렇게 외치며 뛰쳐나오는데, 그 순간 “하룻강아지 같은 놈이”라고 외치는 천둥 같은 장비의 호령이 들려왔다.
 
이소리에 놀란 하후걸이 낙상했는데 이때문에 죽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소설에서 한번 정도 거명된 수많은 인물 중 하후걸은 이처럼 가장 어이없이 퇴장했다. 이를 본 조조의 군대는 놀라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장판 전투 당시의 에피소드다. 비록 소설 속의 내용이지만 이것은 제갈량 책략이 아니라 무식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장비가 임기응변으로 해결했던 이야기라서 더욱 많이 알려져 있다.
 
라세이냐이 전투 당시에 격파된 KV-2. 그중 한 대가 다리를 가로 막고 하루 동안 독일 제6기갑사단을 막아내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사진 wikipedia]

라세이냐이 전투 당시에 격파된 KV-2. 그중 한 대가 다리를 가로 막고 하루 동안 독일 제6기갑사단을 막아내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사진 wikipedia]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은 쾌속의 진군을 계속했다. 침공 3일이 지난 6월 25일 아침, 독일 북부집단군 소속의 제6기갑사단은 리투아니아의 두비사 강까지 다다랐다. 바로 이때 사단의 선봉에 섰던 제11전차연대가 라세이냐이(Rossienie) 부근에서 소련군의 기습적인 반격을 받았다. 선봉대가 소련군에게 포위당할 상황이 되자 제6기갑사단은 일단 후퇴해서 전력 재정비에 나섰다.
 
그렇게 독일군은 진격을 멈추었고 이로 인해 제6기갑사단과 인접 부대 사이에 간극이 발생했다. 독일군이 전진을 계속하려면 조속히 이를 메워야 했다. 그러려면 병목지점이라 할 수 있는 라세이냐이 북동쪽에 위치한 교량을 점령해야 했다. 당시 다리 서쪽 입구를 소련 제2전차사단 소속의 KV-2 중전차 1대가 차단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하루에 수십 km씩 전진을 계속해 왔던 독일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941년 12월 모스크바 전투 당시 독일군 포로와 노획 장비를 검열하는 소련군. 양측의 피복 상태에서 보듯이 석 달 안에 소련을 굴복시키겠다며 독일은 동계 장비도 갖추지 않고 전쟁을 시작했다. [사진 wikipedia]

1941년 12월 모스크바 전투 당시 독일군 포로와 노획 장비를 검열하는 소련군. 양측의 피복 상태에서 보듯이 석 달 안에 소련을 굴복시키겠다며 독일은 동계 장비도 갖추지 않고 전쟁을 시작했다. [사진 wikipedia]

 
곧바로 PaK 36 대전차포로 공격했으나 엄청난 장갑을 자랑하는 KV-2는 끄떡없었다. 독일의 전차들이 달려들었으나 아무리 공격을 가해도 어떤 손상도 입히지 못하고 오히려 KV-2의 공격을 받고 속속 터져나갔다. 당황한 독일군은 대구경의 10.5cm 곡사포를 동원했지만 무한궤도만 끊어버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히려 기동력이 사라지자 KV-2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난공불락의 고정포대가 되어 버렸다.
 
공군에게 폭격기 출동을 요청할 수는 있었지만 일선 지휘관은 전차 한 대 때문에 도움을 구하는 것은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했다. 대신 독일군이 동원한 무기는 대전차포로도 사용이 가능한 Flak 88 대공포였다. 하지만 KV-2는 Flak 88이 발사한 포탄도 가볍게 튕겨내었다. 외통수 길목에서 마주친 단 한 대의 KV-2는 이처럼 독일 쾌속의 진격을 계속해온 제6기갑사단을 하루 동안 잡아내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독일군 대공포 Flak 88는 대전차 공격 등 지상공격에도 쓰여졌다. [사진 warhistoryonline.com]

독일군 대공포 Flak 88는 대전차 공격 등 지상공격에도 쓰여졌다. [사진 warhistoryonline.com]

 
한마디로 KV-2는 장비, 라세이냐이 다리는 독소전쟁의 장판교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결국 다음 날 Flak 88 대공포 한 문을 추가 동원해 집중 공격을 가한 후 전투 공병이 후속 투입되어 폭파시키는데 간신히 성공했다. 전쟁 전에 받았던 교육과 달리 소련 무기의 질이 뛰어나고 소련군의 저항도 격렬해서 독일 장병들은 상당히 놀랐다. 연전연승하고는 있었지만 이는 분명히 불길한 징조였다.
 
그런 우려처럼 10월이 되자 독일군의 진격은 둔화됐고 초겨울 장마와 혹한이 이어지자 오히려 반격을 받고 밀려났다. 상대를 과소평가한 독일은 불과 석 달 안에 소련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그해 겨울이 되자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상대를 얕잡아 보고 시작한 전쟁이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한 경우는 상당히 흔하다. 이런 평범한 역사적 교훈을 망각했던 히틀러가 몰락한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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