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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학살 당한 원주민 아동 2800명…드러난 캐나다 추악한 역사

중앙일보 2019.10.01 13:00
캐나다 국립 진실화해센터는 지난달 30일 기숙학교에서 숨진 원주민 어린이 2800명의 이름이 적힌 50m 길이의 붉은 두루마리를 펼치고 이들을 추모했다. [사진 진실화해센터]

캐나다 국립 진실화해센터는 지난달 30일 기숙학교에서 숨진 원주민 어린이 2800명의 이름이 적힌 50m 길이의 붉은 두루마리를 펼치고 이들을 추모했다. [사진 진실화해센터]

“아벨 에반 프랑코, 아벨 하프 …제파니아 찰스, 조띠끄 카흐키키야스.”

원주민 대상 동화정책 희생자
100년 넘게 가톨릭 기숙학교서
원주민 언어.문화 등 금지
일부는 전기고문 당하기도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캐나다 퀘백주 가티노시 캐나다 역사박물관에선 2800명의 이름이 울려퍼졌다. 캐나다 정부가 100여년간 자행한 ‘강제 동화 정책’으로 희생된 원주민 어린이들의 명단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가족들과 강제로 생이별한 채 기숙학교에서 지내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가족들은 이들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었다.

 
영국 BBC와 캐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캐나다 국립 진실화해센터는 이날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50m 길이의 붉은 두루마리를 펼치고 이들을 추모했다. 라이 모란 진실화해센터장은 “이들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도 못한 채 학교로 끌려왔고, 외로움에 떨며 숨졌다”며 “우리는 이 학생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캐나다 국립 진실화해센터는 퀘백주 가티노시 캐나다 역사박물관에선 기숙학교에서 희생된 2800명의 원주민 어린이 명단을 공개했다. 해당 내용은 영국 BBC도 보도했다.[사진 BBC 홈페이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캐나다 국립 진실화해센터는 퀘백주 가티노시 캐나다 역사박물관에선 기숙학교에서 희생된 2800명의 원주민 어린이 명단을 공개했다. 해당 내용은 영국 BBC도 보도했다.[사진 BBC 홈페이지]

원주민 기숙학교 사건은 캐나다가 원주민에게 벌인 부끄러운 역사 중 하나다. 캐나다 정부는 1863년부터 1998년까지 원주민 아동 15만여명을 가톨릭 종교인들이 설립한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일대 5개 기숙학교에 강제 수용했다. 학교에선 원주민들의 고유 언어 등 문화 습관이 금지됐다. 원주민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키기 위해 캐나다 정부가 벌인 ‘문화 강요 정책’의 일환이었다. 캐나다 원주민은 유럽인이 북미 대륙에 들어오기 전부터 캐나다 지역에 살았던 ‘퍼스트 네이션(First Nations·선주민족)’을 가리킨다. 이누이트 족을 포함해 유럽인과 혼혈인 인디언 ‘메티스’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숙학교에 입학한 원주민 어린이들은 상당수가 신체적·정신적·성적 학대와 영양실조 등에 시달렸다. 뉴욕타임스는 “가톨릭 학교의 몇몇 성직자와 수녀들은 전기의자로 학생들에게 고문을 한 사건 등에 연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100년 넘게 자행된 인권 유린 행위지만, 캐나다 정부가 책임을 완전히 인정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2008년 원주민 차별에 대해 스티븐 하퍼 전 총리가 사과했지만, 당시엔 기숙학교 생존자들에 대해선 사과하지 않았다. 문제가 된 학교들이 뉴펀들랜드의 캐나다 연방 가입(1949년) 이전에 세워졌다는 이유로 사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지난 2015년 12월 진실화해위원회(TRC)가 이 문제를 ‘문화적 집단학살(cultural genocide)’로 규정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 이듬해엔 기숙학교 생존자들이 벌인 집단소송에서 정부가 5000만 캐나다달러(약 427억원)를 배상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2015년 취임한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표방해온 ‘원주민과의 화해 정책’에 따른 변화였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 2017년 “기숙학교에서 원주민 어린이들이 받은 처우는 우리 역사의 암울하고 부끄러운 장(章)”이라며 “여러분이 입은 피해와 여러분이 잃어버린 언어와 전통을 되돌릴 수 없다.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공식 사과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2017년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의 해피밸리-구스베이에서 강제동화 정책으로 학대를 당했던 원주민 어린이들과 관련해 캐나다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2017년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의 해피밸리-구스베이에서 강제동화 정책으로 학대를 당했던 원주민 어린이들과 관련해 캐나다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진실화해센터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희생자 명단은 2800명이지만 실제 숨진 인원은 3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센터는 향후 희생자 신원이 또 확인되면 명단에 추가로 등록할 계획이다. 나아가 희생자들의 가족들과 접촉해 이들의 사연을 기록하기로 했다. 기숙학교 생존자인 바니 윌리엄스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잊혔던 나의 친구와 사촌, 조카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게 돼 매우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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