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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물가 -0.4% 사상최저···정부 "디플레이션 아니다" 낙관론

중앙일보 2019.10.01 09:34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0.4%를 기록했다. 악화하는 경제 지표에 ‘사상 최저’ 물가가 추가됐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ㆍ저물가 늪에 빠져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내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통계청이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9월 물가가 0.4% 하락했다는 내용의 '소비자물가 동향'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계청이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9월 물가가 0.4% 하락했다는 내용의 '소비자물가 동향'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계청이 1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4% 하락했다. 사상 처음 물가상승률이 뒷걸음친 8월(-0.04%)에 이어 두 달 째 마이너스다. 196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54년 만에 최저치다.
 
물가는 올해 1~7월 0%대를 기록했다. 그러다 지난 8월 -0.04%로 돌아선 뒤 9월 -0.4%로 하락 폭이 커졌다. 앞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9월 당시에도 8개월 연속 0%대 물가를 기록했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8월에 이어 두 달 째 마이너스라고 하지만 물가상승률은 비교 가능성, 오차를 고려해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본다”며 “(9월이) 최초의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구체적으로 농·축·수산물이 8.2%, 공업제품이 0.2% 각각 하락했다. 공업제품 중 휘발유는 6.3%, 경유는 3.7% 각각 내렸다. 농산물ㆍ석유류를 제외한 지수(근원물가지수)는 0.6% 상승하는 데 그쳤다. 근원물가지수는 내수 경기를 가늠하는 ‘경제 체온계’로 불린다. 한국은행은 적정 근원물가지수를 2%로 본다. 이두원 과장은 “농·축·수산물 가격 하락 및 지난해 9월 높았던 물가상승률(2.1%)에 따른 기저효과, 석유류 가격 안정세 및 무상복지 확대 영향에 따라 일시적으로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률이 전례 없이 낮은 수준을 이어가자 디플레이션(deflation)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단순 저물가가 아니라 ‘경기 침체와 맞물린’ 지속적인 물가 하락을 뜻한다. 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물가가 안정세를 보인다면 바람직하지만, 현재 저물가 기조는 이와 다르다.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 등 내수 부문 총수요가 크게 위축하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라서다.
 
정부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낙관론’을 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물가동향 발표 직후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일각에서 디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하지만, 물가가 장기간에 걸쳐 지속해서, 광범위하게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은 아니다”라며 “공급 충격에 의한 2~3개월 단기 물가 하락으로 연말부터 0% 중후반 물가 상승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디플레이션을 경험한 미국 대공황(1930년대)과 일본(1990년대)의 물가 하락이 3~7년 지속했다는 사례도 근거로 들었다.
 
전날인 30일에는 한국은행이 진화에 나섰다. 한은은 ‘주요국 물가 하락기의 특징’ 보고서를 통해 “물가 하락은 많은 국가에서 적지 않은 빈도로 나타났지만 대부분 2분기 정도 단기간 내에 상승 전환했다”며 “디플레이션 현상은 일본 등 일부 국가에 국한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주열 한은 총재는 “연말이나 내년에 가면 물가상승률이 1% 내외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와 한은이 마이너스 물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디플레이션의 ‘자기실현적’ 측면 때문이다. 경기ㆍ물가 하락 전망이 확산하면 가계가 저축을 늘리며 소비를 미룬다. 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소비자 물가 전망을 나타내는 기대 인플레이션도 처음 1%대로 하락하면서 이 같은 우려를 키운다. 한은이 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2%대로 제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와 달리 국내외 주요 기관은 잇따라 저물가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국내외 36개 기관의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치 평균은 7월 기준 0.9%에서 8월 기준 0.8%로 0.1%포인트 낮아졌다. IHS마킷(0.4%)ㆍ데카방크(0.4%)ㆍING그룹(0.5%)ㆍ바클레이즈(0.5%)ㆍDBS그룹(0.5%)ㆍ캐피털 이코노믹스(0.5%),ㆍ피치(0.5%) 등 0%대 초중반을 점쳤다. 국제금융센터가 해외 투자은행(IB) 9곳을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씨티와 JP모건이 0.5%로 하향 조정해 바클레이스까지 총 3곳이 0.5%를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물가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심상찮은 조짐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 예측과 달리 물가 상승률 둔화가 지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현 상황을 ‘디플레이션 위기’로 정확히 인식하고 이에 맞는 거시ㆍ미시 경제정책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현 상황을 경기 부진으로 저물가가 지속하는 준(準) 디플레이션 현상으로 규정한다”며 “소비ㆍ투자가 계속 위축해 물가에 영향을 주고 있어 이대로 계속 갈 경우 디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저성장ㆍ저물가가 고착화한 ‘일본형 장기 불황’이 한국에 닥칠 조짐이 보인다”며 “경제 주체에 부담을 주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수정하고 재정ㆍ통화 정책도 전방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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