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춘희 디자이너, 홈쇼핑 진출 1년 만에 대박 성공 비결

중앙일보 2019.10.01 05:01 종합 21면 지면보기
18일에 있을 서울패션위크 쇼 준비로 한창인 디자이너 지춘희씨의 서울 성수동 사무실은 다양한 종류의 원단들로 가득했다. 장진영 기자

18일에 있을 서울패션위크 쇼 준비로 한창인 디자이너 지춘희씨의 서울 성수동 사무실은 다양한 종류의 원단들로 가득했다. 장진영 기자

CJ ENM 오쇼핑 부문이 패션 디자이너 지춘희씨와 손잡고 선보인 ‘지스튜디오(g studio)’가 론칭 1년 만에 누적 주문금액 101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브랜드 론칭 당시 목표 주문금액(연 500억원)의 2배를 넘는 수치다. 강혜련 CJ ENM 오쇼핑 부문 패션의류 팀장은 “지난해 지스튜디오 론칭 후 CJ오쇼핑의 ‘패션명가’ 이미지가 강화됐을 뿐 아니라 TV홈쇼핑 패션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도 180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스튜디오의 울 코트는 70만원으로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하지만 가성비에만 치중하던 홈쇼핑이 프리미엄 시장으로 발돋움하는 데 상징적인 교두보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다.    
패션 디자이너 1세대인 지춘희씨는 1970년대 말 ‘미스지콜렉션’을 시작해 97년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 한국 디자이너로는 처음 입점한 국내 최정상 디자이너다. 99년 방영된 드라마 ‘청춘의 덫’에서 배우 심은하가 입었던 단아하고 여성스러운 의상으로 ‘청담동 며느리 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2015년에는 배우 원빈·이나영의 결혼식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해 화제가 됐다.  

부티크용 고급 소재, 자연스런 디자인 통했다
홈쇼핑 진출 1년 만에 누적 주문금액 1000억 기록
패션 인생 40년 "1mm 차이가 명품을 가른다"

그런 그가 지난해 돌연 홈쇼핑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업계의 관심이 몰렸던 건 당연하다. 1년 전 그의 대답은 이랬다.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러운 옷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혁신적인 유통과 플랫폼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지춘희 디자이너와 CJ ENM 오쇼핑이 손잡고 출시한 지스튜디오의 겨울용 '톨레뇨 카멜 코트'. [사진 오쇼핑]

지춘희 디자이너와 CJ ENM 오쇼핑이 손잡고 출시한 지스튜디오의 겨울용 '톨레뇨 카멜 코트'. [사진 오쇼핑]

그로부터 1년 후, 지난 9월 25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놀라운 시장 결과에 대한 소감을 물으니 그는 “다행”이라며 미소 지었다.  
“‘홈쇼핑 옷 같다’는 말은 듣기 싫어서 무조건 좋은 소재를 쓰자고 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소재가 안 좋은 옷은 입었을 때 불편해서 계속 입고 싶은 생각이 안 들거든요. 이번에 선보인 카멜 코트는 ‘미스지콜렉션’ 파트너인 이탈리아 회사 ‘톨레뇨’의 원단을 썼어요. 원래 비싼 원단인데 홈쇼핑에선 워낙 주문 양이 많으니까 가격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더라고요. 사가폭스 램 코트도 처음엔 내가 입으려고 세계3대 모피 옥션 중 하나인 사가 옥션의 프리미엄 스킨을 사용해 만들어본 건데 해놓고 보니 예뻐서 상품으로 출시하게 됐죠.”          
좋은 옷은 1mm의 싸움이라는 게 지씨의 생각이다. 봉제선의 위치, 시접의 길이, 바늘땀의 정도 등등. 지씨는 “내 까다로운 주문 때문에 아예 제작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때도 있었다”며 “담당 MD가 여러 번 울었다고 하던데 개인적으로는 미안하지만 홈쇼핑 옷이라고 대충 넘어갈 순 없었다”고 했다. 
1mm의 원칙은 디자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개성 강한 패션피플이 좋아하는 디자인과 평범한 다수가 좋아할 만한 디자인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옷을 만드는 사람이자 옷을 입는 사람이니까 여성의 마음을 잘 알죠. 허리선, 소매 폭에서 1mm 차이가 옷을 입었을 때 얼마나 다른 느낌을 내는지 아니까 가능하면 호불호가 갈리지 않도록 기본에 충실한 옷을 만들려고 했죠.”    
 지춘희 디자이너와 CJ ENM 오쇼핑이 손잡고 출시한 지스튜디오의 겨울용 '사가폭스 램 코트'. [사진 오쇼핑]

지춘희 디자이너와 CJ ENM 오쇼핑이 손잡고 출시한 지스튜디오의 겨울용 '사가폭스 램 코트'. [사진 오쇼핑]

그의 옷에는 늘 ‘레이디라이크 룩(adylike look)’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엉덩이 위로 떨어지는 길이의 재킷, 무릎 아래 길이의 스커트, 적당한 볼륨과 장식의 블라우스, 사랑스러운 원피스 등. 핵심은 유행을 타지 않는 간결함과 고급스러워 보이는 여성스러움이다. 그의 옷에 ‘청담동 며느리 룩’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너무 드러내고 튀는 옷을 싫어해서 내가 만든 옷에는 아트피스가 없어요. 무대 위에서 바로 거리로 나가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옷들이 좋아요. 그리고 난 여성이 여성스러울 때 가장 예뻐 보이더라고요. 능력·기회·평가 면에선 남녀가 평등해야 하지만 보이는 모습에서까지 여성성을 잃어버릴 필요가 있을까요.”  
그의 대표작을 ‘여성스러운 슈트’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키니 팬츠, 와이드 팬츠, 타이트스커트, 주름치마 등등 시대 흐름에 따라 유행 아이템은 변화했지만 그의 옷은 언제나 소녀와 숙녀 사이 어느 지점에서 일상을 열심히 또 즐겁게 살아가는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스튜디오' 화보 촬영 중 잠시 휴식을 즐기는 지춘희 디자이너와 배우 이나영. 2015년 이나영의 웨딩드레스를 지춘희 디자이너가 만들어줄 만큼 두 사람은 친분이 두텁다. 지씨는 "이나영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낯을 가려서 무뚝뚝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진실되고 열정적인 배우"라고 칭찬하며 "그녀만의 애교를 아는 사람은 안다"고 말했다. [사진 오쇼핑]

'지스튜디오' 화보 촬영 중 잠시 휴식을 즐기는 지춘희 디자이너와 배우 이나영. 2015년 이나영의 웨딩드레스를 지춘희 디자이너가 만들어줄 만큼 두 사람은 친분이 두텁다. 지씨는 "이나영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낯을 가려서 무뚝뚝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진실되고 열정적인 배우"라고 칭찬하며 "그녀만의 애교를 아는 사람은 안다"고 말했다. [사진 오쇼핑]

내년은 그가 미스지를 시작한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40이라는 숫자가 끔찍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늘 같은 날처럼 사는 게 좋아요. 필요한 만큼만 걸으면서, 날 거나 뛸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어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책에서 ‘기억하는 건 가슴에 다 남아 있으니까 모으는 거에 미련두지 말자’고 했던 구절을 기억해요. 과거에 대한 미련도 애정도 마음에 담아 두지 말자 생각해요. 뭘 기념하고 남긴다는 게 참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뛰어난 감각으로 패션 외 리빙 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사업을 확장했을 법도 한데 왜 그러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제대로 하려면 내가 일일이 신경 써야 하는데 본업인 옷 만드는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아 혼자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자 결심했다”고 한다.  
그의 유일한 일탈은 ‘여행’과 ‘미식 즐기기’다. 얼마 전에도 스코틀랜드와 아이슬란드를 다녀오면서 끝도 없는 광활한 대지에 수십 가지 색으로 덮인 ‘이끼’에 매료됐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에선 이국적인 문양과 색에 홀딱 빠졌다. 그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인 그 다양한 풍경을 우리는 언제고 무대 위 옷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마음대로 안 되는 건 식욕이에요.(웃음) 먹는 걸 너무 좋아해. 난 식욕이 의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안 먹는 사람은 기운도 없고, 뭘 하고 싶은 마음도 안 생길 거야. 살이 찌면? 옷으로 감추면 되죠. 난 옷 만드는 사람이니까요.”(웃음)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