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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문재인·김명수 관계, 박근혜·양승태 시절 닮아 가나

중앙일보 2019.10.01 00:25 종합 29면 지면보기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막기 위한 삼권분립의 핵심은 정당 민주화와 사법부 독립이다. 미국의 공화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그러하듯이 정당이 민주화될 때 여당도 비판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법부 독립이 확보돼야 대통령의 권력 행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가능해진다.
 

김명수 사법부 2년, 신뢰 약화돼
대통령의 사법부 인사권 개혁돼야

지난 2년간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끈 사법부는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 제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했는가. 긍정하기 어렵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았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사법부가 지난 2년 동안 과연 어떤 자성과 변화의 모습을 보였는지, 이를 통해 국민에게 인정받고 있는지를 되짚어 본다면 성과를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니, 구조적으로 성과를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지 4개월 뒤인 그해 9월 김명수 사법부가 출범했다. 초기부터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관계가 각기 삼권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상하 관계로 보인다는 지적도, 임기가 대부분 겹치기 때문에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반론도 많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헌법재판관들이 만장일치로 탄핵 결정을 내렸듯이 사법부의 독립은 탄탄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사법부 독립에 대한 신뢰는 많이 약화됐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에 대한 코드 인사, 그 과정에서 빚어진 적격성 논란은 잠시 접어 두자. 과반수의 구성원이 바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 등의 민감한 사건에 대해 새로운 경향의 판결을 내놨다. 그로 인해 사법부가 정치적 성향에 영향받는다는 의구심이 커졌다.
 
전임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 농단 의혹 처리 과정도 문제였다. 이를 사법 개혁의 계기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법 농단 의혹이 전체 사법부에 끼칠 파장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전임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몇몇 고위직 법관들의 문제로 축소될 수 있다고 안이하게 판단했던 것도 문제였다. 영장 발부 등의 과정이 깔끔하지 못해서 의혹을 키웠던 것도 문제였다.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법 개혁 논의 내용도 문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각기 삼권의 수장임에도 불균형한 관계였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외면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의 관계도 닮은꼴이 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법원행정처를 개혁하고, 사법행정회의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오히려 법원에 대한 외부의 영향력만 키우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이 작아진 듯 보인 것은 사법부의 노력도 있었지만, 대통령의 5년 단임제로 임기가 많이 겹치지 않는 경우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처럼 임기 대부분이 겹칠 경우 사법부의 독립은 위태로워진다. 대통령이 대법원장 및 대법관에 대한 임명권을 가진 한, 인사권을 통한 개입과 통제 위험은 언제나 있다. 코드인사를 통한 대법원의 성격 변화까지도 가능한 것이다.
 
이제 김명수 사법부가 화두로 삼아야 할 사법 개혁의 제1과제는 법원행정처 개혁이 아닌 대통령의 사법부 인사권 개혁이다. 궁극적으로는 개헌이 필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입법을 통해 대법원장 및 대법관 추천위원회를 합리적으로 구성하고, 그 추천이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제왕적 대통령이 제왕적 대법원장을 매개로 사법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이러한 전제가 갖춰졌을 때 비로소 사법부 독립도,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 회복도 탄탄한 기초 위에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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