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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트럼프의 거짓말

중앙일보 2019.10.01 00:20 종합 31면 지면보기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지금까지 미국에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눈만 뜨면 자기 자랑이다. 바늘을 몽둥이라고 우기는 허풍과 과장을 밥 먹듯 한다. 내년 대선에서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정적(政敵)을 수사해 달라고 외국 정상에게 압력을 가한 게 들통나 탄핵 위기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말이다.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은
대표적인 트럼프발 가짜 뉴스
몰상식한 분담금 인상 요구
당당한 논리로 단호히 맞서야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이용해 트럼프의 발언과 트윗을 일일이 팩트체크 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취임 이후 2년 반 동안 1만2019회에 걸쳐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 또는 호도했다. 하루 평균 13번 피노키오가 된 셈이다. 지금 미 경제가 역사상 최고로 좋다고 186번 말했지만, 실제로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나 린든 B 존슨, 빌 클린턴 때가 더 좋았다. 또 162회에 걸쳐 자신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減稅)를 단행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감세 효과로 따져 트럼프의 감세는 지난 100년 동안 있었던 감세 중 8위에 불과하다.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도 트럼프의 대표적인 거짓말 중 하나다.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한국에) 군함과 항공기를 보내고, 기동훈련을 하지만 우리가 돌려받는 것은 전체 비용의 극히 ‘일부(a fraction)’에 불과하다”며 “한국이 주둔비용 분담금을 충분히 올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지난 8월에는 “우리는 한국의 국경은 지키고 있지만, 미국의 국경은 지키지 못했다”며 “동맹국들이 적들보다 우리를 훨씬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자기 돈 써가며 한국을 지켜주고 있는데, 미국 덕분에 잘살게 된 한국은 공짜 점심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발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인의 목소리로 무임승차론을 격파하는 것이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 대사는 지난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강력한 동맹이지 무임승차자가 아니라면서 세 가지 논거를 제시했다. 첫째 한국 남성의 의무 군 복무, 둘째 100억 달러를 들여 한국이 평택에 지어준 세계 최대의 해외미군기지, 셋째 매년 4~8%에 달하는 높은 방위비 지출 증가율이다. 결코 공짜가 아니란 얘기다.
 
존 햄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은 더욱 분명한 논지로 무임승차론을 반박하고 있다. 그는 지난주 배포한 글에서 주한미군은 한국군을 보충하는 ‘용병’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우리 군대가 그곳에 가 있는 것은 한국에 대한 ‘선물’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못 박았다. 따라서 내년도 방위비 분담금을 50억 달러로 올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것은 심각하게 잘못된 요구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50억 달러 요구는 협상 전술일뿐 실제로는 12억 달러 선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하기도 했다.
 
지난 8월 뉴욕에서 열린 대선자금 모금행사에서 트럼프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임대료를 수금하러 다닌 일화를 소개하며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에서 114달러 13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허풍을 떨었다. 올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10억 달러 가까운 수준으로 인상한 데 대한 자화자찬이다. 그렇더라도 방위비 분담금을 아파트 월세에 비유한 것은 참기 힘든 모욕이다. 미국은 집주인이고, 한국은 세입자란 소리 아닌가. 아무리 악랄한 집주인도 한꺼번에 집세를 5배로 올리라고 요구하진 않는다. 한국을 호구로 여기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요구다.
 
한국은 이미 미 방산업체들의 봉 노릇을 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10년 간(2008~2017년) 67억3100만 달러(7조6000억원)어치의 미국산 무기를 구매해 사우디아라비아(106억3900만 달러), 호주(72억7900만 달러)에 이어 미국의 세 번째 무기 수입국이다. 국내에 도착한 완성품 기준일뿐 아직 안 들어온 계약 물량까지 합하면 40조원이 넘는다.
 
한국의 방위비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도 미국산 무기 수입이 대폭 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도 한국의 국방예산은 올해보다 7.4%가 늘어 처음으로 50조원을 넘어선다. 그중 16조6915억원이 방위력 개선비란 명목으로 주로 미 방산업체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F-35 등 미국의 최첨단 전투기 도입에 쓸 내년 예산만 6조3804억원이 책정돼 있다. 킬 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3축 체계 구축 사업에만 총 57조원이 소요된다. 미 군사 장비 도입은 필연적으로 유지·정비·성능개선에 필요한 예산 증가로 이어지고, 이 또한 대부분 미 방산업체들 몫이 된다.
 
한국은 기지만 제공하고, 주둔 비용은 미국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의 기본 원칙이다. 이 원칙대로 하면 방위비 분담금은 증액할 게 아니라 삭감하거나 동결하는 게 맞다. 미국의 호구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당당한 논리로 헛소리 같은 트럼프의 안보 무임승차론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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