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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군이 먹던 ‘샤오미’…이젠 AI·사물인터넷의 상징

중앙일보 2019.10.01 00:04 종합 8면 지면보기

중국 건국 70주년 <중> 

지난 1월 10일 레이쥔 샤오미 창립자가 베이징 공업대학에서 강연하고 있다. 강연 배경 스크린에 마오쩌둥의 혁명 전략이자 시진핑의 전략인 ‘지구전(持久戰)’ 세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사진 바이두 캡처]

지난 1월 10일 레이쥔 샤오미 창립자가 베이징 공업대학에서 강연하고 있다. 강연 배경 스크린에 마오쩌둥의 혁명 전략이자 시진핑의 전략인 ‘지구전(持久戰)’ 세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사진 바이두 캡처]

지난 1월 11일 베이징공업대학 대강당. 샤오미(小米) 창립자이자 CEO인 레이쥔(雷軍)이 무대에 올랐다. “이제 ‘AIot(AI+Iot)’ 시대다. 샤오미는 AI(인공지능) 기반의 사물인터넷(Iot) 생태계 개발에 5년간 100억 위안(약 1조7000억원)을 쏟아붓겠다.”
 

팔로군 좁쌀 먹으며 공산혁명
창업주 레이쥔 회사 이름에 담아
올초 경영발표 땐 지구전 내세워
시진핑의 대미 무역전쟁에 호응

‘100억 위안 투자’는 빅 뉴스가 됐다. 그런데 샤오미의 ‘2019 신년 경영발표회’에서 세간의 관심을 끈 게 하나 더 있었다. 레이쥔 뒤 스크린에 새겨진 세 글자다. ‘지구전(持久戰)’. 마오쩌둥의 혁명 전략이자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전략이다.
 
지난해에도 그랬다. 샤오미는 2018년 경영 모토를 ‘새로운 장정의 길(新長征路)’로 정했다. 2년 연속 샤오미 경영에 혁명 용어가 들어온 것이다. 사실 샤오미는 회사 이름 자체가 혁명성을 갖는다.
 
중국의 공산혁명을 주도했던 팔로군(八路軍) 별명이 ‘샤오미자부창(小米加步槍)’이다. 배낭엔 ‘좁쌀(小米)’, 손에는 장총(步槍)을 들고 나선 군대‘란 뜻이다. 쌀(大米)이 아닌 좁쌀을 먹으며 싸워야 했기에 붙은 별명이다.
  
모든 상품군에서 가성비 혁명
 
중국 공산혁명 당시 팔로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샤오미의 사명은 팔로군의 배낭엔 좁쌀인 ‘샤오미’를, 손에는 소총을 들고 싸웠다는 데서 따왔다. [사진 바이두 캡처]

중국 공산혁명 당시 팔로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샤오미의 사명은 팔로군의 배낭엔 좁쌀인 ‘샤오미’를, 손에는 소총을 들고 싸웠다는 데서 따왔다. [사진 바이두 캡처]

레이쥔이 혁명성을 강조하는 까닭은 무얼까? 무역전쟁으로 야기된 경영환경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공격은 집요하다. 트럼프는 9월 워싱턴에서 열린 실무급회담이 중국의 농산물 추가 구매로 봉합될 조짐을 보이자 다시 판을 깼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원하는 건 단 하나,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시스템을 해체하는 것”(메르디스 크롤리 케임브리지대 교수)이라고 말한다. 국유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정부의 금융시장 개입 등 국가가 시장 행위의 주체로 참여하는 걸 중단하라는 요구다.
 
“미국산 곡물 수입을 늘리고 지재권을 보장하란 등의 요구는 얼마든지 협상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의 근간인 국가자본주의 시스템을 바꾸라는 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베이징에서 만난 칭화대 A교수의 말이다.
 
지난 5월 초 시진핑 주석이 실무진 합의를 백지화하고 지구전을 선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기업의 선택은 하나다. 정부 정책에 동조하고 또 따라야 한다. 레이쥔이 ‘지구전’을 배경으로 2019년 경영 전략을 발표한 이유다.
 
‘새로운 장정’은 어떤 길일까? 샤오미 행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중국 경제엔 현재 두 개의 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첫 번째는 샤오미가 주도한 ‘가성비 혁명’이다. ‘글로벌 넘버 투’라는 중국의 경제 성적표는 13억 노동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생산력은 진화했고, 그 진화의 결과가 바로 가성비다.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박한진 KOTRA 중국본부장은 이를 ‘산업의 형질 변화’라고 말한다. “샤오미가 ‘대륙의 실수’ 제품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휴대전화 배터리에 국한된 일이겠거니 했지만, 지금은 거의 전 상품군으로 ‘가성비 혁명’이 확대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자동차를 예로 보자. ‘S90’은 볼보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이다. 이 모델은 올 상반기 한국시장에서 687대가 팔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정도 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S90은 모두 ‘Made in China’. 중국 다칭(大慶)에서 생산된다.
  
국가·기업 뭉쳐 미국 넘자고 외쳐
 
중국 과기부 선정, 중국의 대표 AI 기업.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 과기부 선정, 중국의 대표 AI 기업.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스웨덴 볼보(Volvo)를 중국 지리(吉利)자동차가 인수했고, S90 일부 생산라인을 다칭으로 옮긴 것이다. S90은 약 7000만원으로 동급 외제차보다 10% 정도 싸다. 그런데 중국 측은 “품질은 BMW의 경쟁 브랜드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한·중 무역구조를 연구하는 박상수 충북대 교수는 “중국의 가성비 제품이 생활기기 거의 전 분야에서 한국에 비교우위를 보인다”며 “중국 시장에선 중국 기업에 치이고 이젠 한국 시장도 중국 기업에 내줄 판”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혁명은 제4차 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국 AI가 미국을 바짝 쫓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AI 관련 논문 수,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기업 수, 안면인식시스템의 효율성 등이 이를 말해 준다. 돼지우리에서도, 또 길거리 신호등에서도 AI가 활용된다.
 
‘AI 오라클’이라는 별명의 대만 출신 미국인 리카이푸(李开复)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나라가 글로벌 패권을 장악했다. 미래 패권을 결정짓는 핵심 기술은 AI다. 실리콘밸리는 지쳐 가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맹렬한 기세로 미국을 추월 중이다. 누가 AI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끌 것인가? 나는 답을 안다.”
 
리카이푸의 선택은 중국이다. 그는 지금 미국을 떠나 베이징에서 ‘AI 투자’사업을 한다. 중국은 국가자본주의를 해체하라는 트럼프의 요구에 오히려 더 국가자본주의 성향의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가와 기업이 똘똘 뭉쳐 미국을 넘자고 외친다. 샤오미의 지구전은 이를 상징한다. 무역전쟁은 경제패권 경쟁으로, 다시 체제 경쟁으로 발전 중이다. 미국을 넘기 위한 중국의 분투는 이미 시작됐다.
 
한우덕 차이나랩 대표 han.woo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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