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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논설위원이 간다] 길 하나 사이에 둔 LG화학·SK이노베이션 긴장이 팽팽

중앙일보 2019.10.01 00:03 종합 26면 지면보기

특허 소송 붙은 두 기술연구원을 가다

대전시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소. [사진 각 사]

대전시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소. [사진 각 사]

지난달 19일 오전 대전역에서 20여분을 달려 유성구 문지동 사이언스빌 삼거리로 접어들자 2차선 소로 양쪽에 거대한 기업 연구소 두 곳이 보였다. 오른쪽에 LG화학 기술연구원 후문, 왼쪽엔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소 북문이 50여 m 거리를 두고 각각 자리 잡고 있었다. 최근 배터리(사진) 기술을 두고 치열한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두 회사의 핵심 연구소가 공교롭게 같은 대덕연구단지 안에, 그것도 좁은 길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은 적막했다. 일반 차량은 물론 버스나 택시도 다니지 않았다. 사람도 없었다. 왠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이 좁은 길에 가득했다.
 

두 회사 나누는 2차선 도로엔
사람·차량없이 적막한 긴장만
LG “특허·기술 SK에 침해 당해”
SK “제품 보면 금방 차이 알 수 있다”

대전시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LG화학 기술연구원. [사진 각 사]

대전시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LG화학 기술연구원. [사진 각 사]

‘배터리 전쟁’이라 불리는 양사의 소송전은 지난 4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법원에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 연구인력 76명을 빼가며 기업 비밀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 5월엔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유출로 경찰에 고소했다. SK이노베이션도 8월 ITC에 LG화학을 특허 침해로 제소했다. 지난달 17일엔 경찰이 서울 서린빌딩 SK이노베이션 본사와 대전 기술혁신연구소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지난달 16일 양사 최고경영자인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만났지만 갈등은 더 깊어지는 양상이다. 지난달 26일 LG화학이 ITC에 SK이노베이션을 특허 침해로 추가 고소했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2011년 배터리 소재인 분리막 특허를 두고 소송전을 벌이다 화해로 끝낸 악연도 있다.
 
두 회사는 모두 자동차용 배터리를 만든다. LG화학은 10.8%의 점유율로 세계 4위를, SK이노베이션은 2.1%의 점유율로 세계 9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투자와 공장 설립도 앞다퉈 진행 중이다. 2025년이면 최대 1600억 달러 규모 시장가 돼 반도체 시장(1490억 달러)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싸움이다.
 
배터리 기술로 분쟁중인 두 회사의 연구소가 공교롭게 2차선 길(가운데) 양 옆으로 자리잡고 있다. 나현철 기자

배터리 기술로 분쟁중인 두 회사의 연구소가 공교롭게 2차선 길(가운데) 양 옆으로 자리잡고 있다. 나현철 기자

먼저 SK이노베이션 연구소를 들어갔다. 정문에서 출입증을 발급받고 마중 나온 안내자의 차량을 탔다. 계곡 쪽으로 5분여를 올라가자 K로고가 붙은 배터리 연구동이 보였다. 차에서 내려 안내동으로 들어가자 다시 보안검색 절차가 진행됐다.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에 까만 테이프를 붙이고 다른 전자기기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X레이 검색대를 통과했다.
 
SK 이장원 소장

SK 이장원 소장

이 건물 2층에서 만난 이장원 소장은 “1990년대 스카이 휴대전화 배터리를 개발하며 쌓은 기술을 토대로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연구동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양극과 음극, 전해액 소재를 배합해 실제 생산라인에 적용하는 연구원들의 손길이 바빴다. 건물 한 동을 모두 차지한 서큘레이터 시설에선 1만대에 이르는 배터리가 충전과 방전을 거듭하며 내구성을 시험받고 있었다. 다음은 이 소장과의 일문일답.
 
LG화학이 최근 기술 유출을 문제 삼고 있다.
“최근 2년간 많은 인력이 LG화학에서 옮겨온 건 사실이다. 연봉도 높고 근무 환경도 좋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에게만 온 게 아니다. 유럽과 중국 등 많은 배터리 회사와 자동차 회사로 LG화학 인력이 빠져나갔다. 또 배터리 기술은 모든 게 연결돼 있다. LG 쪽 기술을 쓰려면 작은 것 하나라도 전 공정이 바뀌어야 하고 이는 곧 생산품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LG가 내부인력을 다잡으려고 소송을 내지 않았나 싶다.”
 
생산품이 어떻게 다른가.
“LG와 우리는 모두 파우치(주머니) 방식을 쓴다. 하지만 내부는 다르다. LG는 양극과 음극을 세 개씩 겹치고 이걸 둘둘 만다. 우리는 양극재와 음극재를 따로따로 분리해 포장한다.”
 
LG배터리

LG배터리

SK배터리

SK배터리

문제가 된 기술이 어떤 건가.
“그게 문제다. 소송은 냈지만 그걸 확실히 하지 않고 있다. ITC 영업비밀 소송만 하더라도 논점이 모호해 ITC가 문제가 된 기술을 특정하라고 요구하는 거로 안다. 소송이 아니라 SK이노베이션 발목잡기다. 소송 때문에 마케팅과 기술 개발 등 전 부문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배터리는 기간제 계약이라 신규 계약이 꾸준히 이어지는 게 중요한데 거기에 차질을 빚으니 새 공장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 기업끼리 싸우면 이득을 보는 건 중국이다. 치킨 게임의 진정한 승자는 지친 닭을 잡아먹는 사람들이다.”
 
LG 김명환 사장

LG 김명환 사장

SK이노베이션 연구소를 나와 길 건너편 LG화학 연구소를 둘러봤다. 배터리와 석유화학을 합쳐 3300명의 인력이 근무하는 곳이다. 점심시간이라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았지만 SK 연구소와의 경계를 넘는 사람은 없었다. 한 관계자는 “그래도 비슷한 대학과 전공을 나온 터라 SNS 등 활동을 같이하는 사람은 많다”고 귀띔했다. 이 연구소에서 배터리를 연구하는 사람은 1600명이다. LG화학 관계자는 “1996년 일본이 독점하던 차량용 배터리 개발을 시작해 국산화와 세계화를 이뤄낸 한국 배터리 산업의 중심”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장인 김명환 사장을 만났다.
 
소송을 왜 하나라는 궁금증이 일반에 많이 퍼진 것 같다.
“갑자기 소송한 것처럼 알려졌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는 1996년부터 자동차용 배터리 산업을 선도해온 기업이다. SK는 휴대폰 배터리 만들던 회사다. 여러 차례 배터리 사업을 정리할 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산업이 커지니까 갑자기 투자를 늘리며 우리 사람을 많이 빼갔다. 우리 기술을 수주에 활용하기도 했다. 전지조합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2년간 내용증명도 두 번이나 보냈다. 그런데도 아무 답이 없길래 결국 소송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인가.
“배터리 관련 기술 전반이다. 우리가 이직자의 컴퓨터 접속기록 등을 확인한 결과다. SK로 이직한 한 직원은 1000건의 기밀 자료를 훑어봤다.”
 
2011년 제기한 분리막 소송의 앙금이 작용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2008년 분리막을 안전하게 만드는 기술을 처음 미국에서 발표했다. 이후 첫 상용화도 했다. 그런데 SK가 이걸 베껴 소송을 낸 거다. 당시 대법원까지 갔다가 결국 양사 합의로 종결했다. 특허는 변경 등록됐는데 이는 참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세계적인 기술을 국내 법원이 보호하지 않으면 어찌 되겠나. 우리를 쫓아오는 중국 기업 좋은 일 시켜주는 격이다.”
 
양쪽 얘기를 다 들었지만 기자로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힘들었다. 고도의 이공계 경험과 기술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세게 맞붙는 두 회사의 경쟁 핵심에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게 기술이냐 아니냐, 특허냐 아니냐는 시각 차이가 두 회사 사이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판정은 결국 법원이 내릴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글로벌화된 국내 대기업들에게 기술은 더는 장식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큰 기업도 기술에 살고 기술에 죽는다. 애플의 부상과 노키아의 몰락이 이를 대변한다. 두 회사처럼 배터리업을 하는 삼성SDI 김성홍 상무는 “예전 국내 기술이 선진 기술의 50~60%였을 땐 화해나 국가 개입으로 문제가 해결됐지만 지금은 기술 수준이 모두 100%라 1%의 기술 차이로 생사가 갈릴 수 있다”며 “기술이 제대로 정의되고 보호돼야 국가 경제도 산다는 점에서 이번 소송의 결과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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