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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은 스테이, 청년은 스테이크…해외여행 세대차이?

중앙일보 2019.09.30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49)

#1. 누가 계속 건물의 현관문을 발로 찬다. 지금 시각은 밤 아홉 시, 초저녁부터 취한 놈이 분명하다. 결국 주민 신고로 경찰이 왔다.

#2.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이면도로에 두 여자가 의자를 놓고 앉아 남자 행인에게 말을 건다. 거리의 여자일까? 새벽에는 자리 주인이 바뀌었다. 어떤 남자가 앉아있다.
 
지금 내가 묵고 있는 집의 출입문. 굵은 방범용 창살로 외부인의 진입시도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처음에는 어이없게 느껴졌지만 든든한 느낌은 들었다. [사진 박헌정]

지금 내가 묵고 있는 집의 출입문. 굵은 방범용 창살로 외부인의 진입시도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처음에는 어이없게 느껴졌지만 든든한 느낌은 들었다. [사진 박헌정]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사흘째 아침을 맞는다. 이 도시는 두 번째 방문이라 별로 낯설지 않은데 머무는 숙소가 기대와 좀 다르다. 호텔예약 사이트에서 사진과 이용자 리뷰를 신중하게 살피고 비교해가며 10박에 77만원 주고 얻은 아파트인데, 버스와 트램이 다니는 큰 도로와 이면도로의 코너에 자리 잡고 있다.
 
넓은 거실, 깨끗한 주방, 2층의 아늑한 침실… 처음 들어서면서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집 바깥이 어수선하다. 관광지와는 좀 떨어진, 술집, 상점, 식당이 들어찬 번화가다. 긴급자동차 소리와 폭주족 굉음이 잦고, 옆의 식당에선 회식을 하는지 자정까지 소리 지른다. 예약사이트에선 예측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아파트는 호텔보다 적은 비용으로 더 넓게 지낼 수 있고 직접 음식을 해먹을 수 있어 체력 유지에도 좋다. 부부가 아무리 사이 좋게 지내더라도 긴 여행일수록 따로 있을 공간이 필요하므로 침실과 거실이 분리된 곳이 좋다.

아파트는 호텔보다 적은 비용으로 더 넓게 지낼 수 있고 직접 음식을 해먹을 수 있어 체력 유지에도 좋다. 부부가 아무리 사이 좋게 지내더라도 긴 여행일수록 따로 있을 공간이 필요하므로 침실과 거실이 분리된 곳이 좋다.

 
예약 후 주인이 보낸 이메일에는 ‘집 안에 있을 때도 문을 잠그라’고 했다. 알아서 안전에 신경 쓰라는 말이다. 하긴,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긴 비행과 공항에서 숙소까지 찾아오는 과정보다 건물 현관부터 우리 아파트까지 퀴즈 풀듯 몇 겹의 잠금장치를 풀고 들어오는 과정이 더 복잡했다. 건물 현관의 긴 비밀번호, 낡은 엘리베이터, 열쇠 보관함, 그리고 2중 문… 가장 압권은 철창이다. 그걸 열쇠로 열고 또 한 번 현관문을 열어야 한다.
 
‘해외 한 달 살기’를 이야기할 때마다 숙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낯선 곳에서 안정된 잠자리는 나를 지켜주는 보금자리이고 뭔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다시 차분히 전략을 짤 수 있는 ‘베이스 캠프’다.
 
그런데 빌려 쓰는 남의 집이 애정을 갖고 꾸며가는 내 집처럼 마음에 들 수는 없다. 마음을 열고 만점을 100점에서 50점으로 내리는 게 현명하다.
 
라스토케 근처 한적한 마을에 자리한 전원주택. 바비큐 파티를 위한 야외 테라스도 이용할 수 있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좋은데, 렌터카가 필요하다.

라스토케 근처 한적한 마을에 자리한 전원주택. 바비큐 파티를 위한 야외 테라스도 이용할 수 있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좋은데, 렌터카가 필요하다.

 
작년에 프라하에서 열흘 머문 집은 부유한 동네의 깔끔하고 시설 좋은 아파트였지만 주인 눈빛이 냉랭했다. 그에 비해 자그레브의 아파트에선 너저분한 살림살이에, 먼젓번 손님이 두고 간 식료품까지 우리 먹으라고 그대로 두었다. 주인은 뭐든 해주려 하고, 실수로 깨뜨린 냉장고 유리판값도 안 받으려 해서 몰래 돈을 놓고 나왔다.
 
크로아티아 라스토케 근처 전원주택도 기억난다. 알프스의 하이디처럼 순박한 여주인은 다른 곳에 살면서도 밤에 간식까지 만들어다 주었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런 착한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아내가 끄덕였을 정도다.
 
베를린의 요양병원에 묵은 적이 있다. 환자 보호자나 의사 숙소로 쓰는 아파트를 얻었는데 오붓하고 좋았다. 문제는 저녁마다 출입문을 잠가 할 수 없이 병원 내부를 통해 선진국 노인병원을 충분히 견학한 후 방에 들어가야 했다.
 
베를린의 한 게스트하우스. 요양병원 뒷뜰에 자리잡고 있어서 조용하고 운치 있었다.

베를린의 한 게스트하우스. 요양병원 뒷뜰에 자리잡고 있어서 조용하고 운치 있었다.

 
나는 늘 묻는다. 스테이(Stay)냐, 스테이크(Steak)냐? 중장년층에겐 스테이, 즉 ‘숙소’가 중요하다. 청년들의 여행기를 보면 물가 저렴한 동유럽에서 며칠 연속 스테이크를 먹었다며 즐거워한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왕성한 시기다. 야간열차로 이동해서 아침에 햄버거 하나 먹고 하루 종일 배낭 멘 채 돌아다닌다. 저녁엔 게스트하우스에서 대충 씻고 6인실의 2층 침대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들과 섞여 곯아떨어지고 다음 날 벌떡 일어나 “오늘은 여기, 또 저기…”하며 루트를 짠다. 젊음의 힘이다. 그렇게 아껴 스테이크를 사 먹는다.
 
중장년들이 그러면 큰일 난다. 편안한 숙소가 우선이다. 덜 먹더라도 일단 잘 자고 잘 쉬어야 한다. 그다음이 음식이다. 아파트에 묵으면 입에 맞는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으니 상호보완적이다.
 
기간이 길수록 호텔보다 아파트가 낫다. 더블침대 하나 놓인 호텔 스탠다드룸(3~4평)에서 오래 지내면 몸과 마음이 지친다. 매일 호텔 조식과 바깥 음식만 먹는 것은 외국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힘든 일이다. B&B도 늘 주인을 만나야 하니 성격에 따라 불편할 수 있다.
 
물가 비싼 곳에선 불편을 감수하고 좀 저렴한 숙소를, 물가 저렴한 곳에서는 조금 더 쓰더라도 안락한 숙소를 찾는 게 상식적이다. 그래야 여행 내내 마음 편하다.

물가 비싼 곳에선 불편을 감수하고 좀 저렴한 숙소를, 물가 저렴한 곳에서는 조금 더 쓰더라도 안락한 숙소를 찾는 게 상식적이다. 그래야 여행 내내 마음 편하다.

 
아파트 선택의 첫째 조건은 면적과 공간이다. 33㎡(10평) 이상이 좋다. 부부가 아무리 친해도 서로 떨어져 있을 공간이 필요하므로 침실과 거실(주방 겸용)이 분리되어야 한다. 둘째, 편의시설이다. 소파, 테이블, 에어컨, Wi-Fi 등 우리에겐 당연한 것도 그쪽에선 당연하지 않을 수 있으니 표에 O, X 표시해가며 파악한다. 그래야 여행 짐도 줄어든다.
 
셋째, 사진에 속지 않아야 한다. 구글 지도로 동네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끝으로 1박당 기준 금액이 필요하다. 현지 물가수준을 고려하고, 너무 저렴한 곳은 이유를 따져본다. 주로 ‘위치’ 때문이다. 관광지에서 멀수록 싼데, 우리처럼 관광보다 현지생활에 방점을 두는 사람에게는 나쁘지 않다.
 
숙소는 좋은 추억과 인상을 만드는 첫 번째 요소다. 주어진 정보 속에서 최대한 신중하게 살피고, 한번 선택했으면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새벽 여섯시, 시차 때문에 일찍 깼다. 조금 전에도 어떤 놈이 밖에서 비명을 질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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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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