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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열병식서 580개 첨단무기 총출동···'시진핑 군대' 과시한다

중앙일보 2019.09.30 10:53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열병식이다. 사상 최대 규모가 예고돼 있다. 차이즈쥔(蔡志軍) 열병영도소조판공실 부주임은 “건국 50주년이나 60주년, 또 항일전승 70주년 열병식 때보다 규모가 더 크다”고 밝혔다.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성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발표하고 있는 마오쩌둥. [중앙포토]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성루에 올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발표하고 있는 마오쩌둥. [중앙포토]

1만 5000여 병력이 59개의 대오를 이뤄 행진하고 전투기 등 각종 항공기 160여 대, 신형 탄도미사일 등 580여 첨단 무기가 선을 보인다. 건국 이래 17번째 대열병식이다. 천문학적 돈을 들여 준비한 열병식을 통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노리는 건 뭔가.

열병식서 국가위신 제고 애국심 고양
시 주석 본인의 위상 다지기도 포함돼
열병 훈련 막사에선 “시 주석 지휘 듣고”
“시 주석에 책임지며 시 주석 안심시킨다”
‘시진핑 군대’ 연상시키는 표어 나붙어

열병은 라틴어 ‘paro’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나는 준비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군대가 싸울 준비가 됐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4000년 전부터 열병식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夏)나라 우(禹)가 깃털 장식의 병기를 들고 늘어선 병사들을 사열했다는 것이다.
춘추시대 들어선 열병 활동이 빈번해졌다. 사냥과 함께 진행된 경우가 많았다. 최고 통치자가 활시위를 당기는 걸 신호탄으로 부대 검열이 이뤄졌다. 한(漢)대엔 입추(立秋) 시기에 맞춰 정기적으로 실시됐고 청(淸)대 황제는 3년마다 커다란 열병 행사를 가졌다.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 등으로 중단됐던 열병식을 24년 만인 1984년 부활했다. [중앙포토]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 등으로 중단됐던 열병식을 24년 만인 1984년 부활했다. [중앙포토]

열병은 정치의식(儀式)이다. 이를 통해 무얼 얻을 수 있나. 크게 세 가지 측면이 거론된다. 국가적 차원에선 군대의 엄정한 기강 과시로 국가의 위신을 세우는 것이다. 민족적 측면에선 민족정신의 고양이다. 지도자 입장에선 영도자 개인의 공고한 권위 과시다.
중국 근대사에서 열병식을 가장 사랑한 지도자로는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가 꼽힌다. 황포(黃埔)군관학교 교장 때부터 대만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열병은 그의 생활 일부분이었다. 평생 크고 작은 100여 차례 이상의 열병 행사를 가졌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첫 번째 대열병은 마오쩌둥(毛澤東)과 개국 공신들의 주도하에 1949년 10월 1일 건국일에 맞춰 실시됐다. 이후 59년까지 매해 국경절마다 열렸다. 60년 중국 정부는 5년마다 ‘작은 열병식’, 10년마다 ‘큰 열병식’을 갖기로 했다.
69년엔 소련과 변경에서 충돌하는 등 전운이 감돌며 열병식을 취소했다. 79년엔 문혁(文革)이 끝난 직후로 국가 경제가 피폐해져 열병식을 생략했다. 84년 건국 35주년을 맞아 덩샤오핑(鄧小平)이 부활시켰다.
1999년 중국 건국 5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장쩌민 국가주석이 중국인민해방군을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9년 중국 건국 5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장쩌민 국가주석이 중국인민해방군을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후 99년 장쩌민(江澤民)에 의해 건국 50주년 열병식이, 2009년엔 후진타오(胡錦濤)가 건국 60년 열병식을 실시했다. 시진핑 주석은 열병식을 애용한다. 2015년 9월 3일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아 49개국 대표를 초청해 대규모 열병식을 가졌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성루에 올라 중국군의 열병식을 지켜봤다. 54년 김일성 북한 수상의 자리를 대신한 것으로 동북아 안보 지형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시 주석은 2017년 7월엔 아시아 최대의 군사훈련기지인 내몽골 주르허(朱日和)에서 커다란 열병 행사를 펼쳤다. 당시 군악대와 일반 참관인을 생략한 채 싸우는 군대에 초점을 맞춘 ‘실전 열병’으로 화제를 모았다.  
또 중국인민해방군이 36년 만에 처음으로 천안문 광장 이외의 곳에서 대규모 열병 행사를 치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시 주석은 2018년 4월엔 보아오(博鰲) 포럼에 참석한 직후 곧바로 하이난(海南)도의 싼야(三亞)로 이동해 해상 열병을 실시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2009년 중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인민해방군을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2009년 중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인민해방군을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중국군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열병이었다.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 등 48척의 전함이 위용을 자랑했다.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올라 1인자가 된 시 주석은 이제까지 7차례 정도 열병식을 가졌다. 거의 해마다 열병 행사를 갖는 것이다.
왜 그런가. 또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 등 역대 지도자의 열병과는 어떻게 다른가. 마오의 열병식은 개국(開國)을 알린 것이다. 마오는 천안문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오늘 성립했다”고 외쳐 중국 공산당 정권의 수립을 세상에 선포했다.
84년 덩샤오핑의 건국 35주년 열병은 24년 동안 중단됐던 열병식을 부활한 것이다. 문혁의 잘못을 바로잡고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게 됐음을 세상에 천명했다. 폐쇄형 사회가 아닌 개방사회 추진을 약속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장쩌민에 의한 99년 건국 50주년 열병식이 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취해진 서방의 대중국 제재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한다면 2009년 후진타오의 60주년 열병식은 중국위협론을 불식하는 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진핑이 이번 건국 70주년 대열병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의 힘’ 과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타격을 가한 부대를 열병식에 동원하고 미국을 사정권에 두는 첨단 미사일 공개 등이 그런 예다.
미국과 중국 사회주의 제도의 존망을 두고 벌이는 무역전쟁에서 결코 질 수 없다는 자존심 대결도 한몫한다. 시 주석은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지위에 오를 수 있다면 어떤 희생이 있어도 감수하겠다는 태도다.
2015년 9월 3일 항일전쟁승리 70주년 기념식에서 천안문 성루에 오른 시진핑 국가주석(가운데). 시 주석 오른쪽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보인다. 왼쪽엔 장쩌민 주석과 후진타오 주석이 자리했다. [중국 신화망]

2015년 9월 3일 항일전쟁승리 70주년 기념식에서 천안문 성루에 오른 시진핑 국가주석(가운데). 시 주석 오른쪽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보인다. 왼쪽엔 장쩌민 주석과 후진타오 주석이 자리했다. [중국 신화망]

두 번째는 중국 군부를 겨냥한 것이다. 시진핑이 집권한 이래 많은 군 장성이 부패로 숙청됐다. 후진타오 시기 군부 내 최고 실력자였던 쉬차이허우(徐才厚)와 궈보슝(郭伯雄) 등 두 명의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모두를 처벌해 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그런 군의 사기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일반 백성의 군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도 군의 위엄을 과시하는 열병식은 필요하다. 이는 시진핑 시기 들어 거의 해마다 크고 작은 열병식이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시진핑 개인의 위상을 다지고 또 다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어려운 경제, 홍콩 사태로 실추된 중국 이미지, 특히 국가주석의 연임 규제 조항을 폐지해 장기 집권의 길을 연 것 등으로 인해 중국 민심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이처럼 시 주석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국내외의 다양한 도전을 분쇄하기 위해선 강력한 무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육, 해, 공, 로켓군 등 1만 5000여 병력과 각종 첨단 무기를 동원해 ‘중국의 힘’을 보여줄 건국 70주년 열병식은 바로 이를 위한 좋은 무대다.
그래서인가. 지난 25일 베이징 근교 창핑(昌平)에 있는 열병촌을 찾았을 때 막사 바깥에 붙은 표어 세 개가 인상적이었다. “시 주석의 지휘를 듣는다” “시 주석에 대해 책임진다” “시 주석을 안심시키자”. 공산당의 군대가 시 주석의 군대가 된 모양새였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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