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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대의’없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중앙일보 2019.09.30 00:17 종합 32면 지면보기
윤석만 이노베이션랩 기자

윤석만 이노베이션랩 기자

다문화 인구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8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다문화 가구는 33만여가구, 가구원은 100만9000명이었다. 이들은 귀화했거나 내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및 자녀로 사실상 ‘한국인’이다. 그런데 제헌국회(198석)부터 현재(300석)까지 다문화 출신 국회의원은 2012년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자스민 전 의원이 유일했다. 인구 비율만 놓고 봐도 현직 의원 중 6명은 돼야 정상인 데 말이다.
 
연령비를 보면 더 심각하다. 전체 유권자 중 20·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34%지만 20대 국회 당선자(지역구)는 0.4%에 불과했다. 반면 유권자의 19.9%인 50대는 55.5%나 된다. 2018년 국제의회연맹(IPU)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은 40세 이하 국회의원 비율이 높다. 덴마크(41.3%)와 스웨덴(34.1%), 프랑스(23.2%)가 대표적이다. 정치를 ‘종신직’으로 여기는 미국(6.6%)도,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8.3%)도 한국(0.6%, 비례 포함)보다 많다.
 
이처럼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는 젊은 세대나 다문화의 목소리는 반영될 수 없는 구조다. 20대가 여권에 등 돌렸는데도 야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은 20대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열며 9/30

노트북을 열며 9/30

정당의 생명은 ‘대의(代議)’다. 현재의 정당체제가 생겨난 19세기 서구사회에선 부르주아와 노동자 계급의 양당 구도가 자리 잡았다. 당시 정당은 사회 균열 구조와 맞아떨어졌고 정당을 통해 갈등이 조정되고 합의점을 찾았다.
 
그러나 사회가 분화하면서 계급 외에도 다양한 갈등 요소가 생겼다. 젠더, 세대, 문화, 환경 등 복잡한 이해관계를 대표하고 조율할 수 있는 ‘대의’ 기능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유럽은 다양한 가치를 표방하는 군소정당이 존재하며, 이들이 연정을 통해 합의점을 찾는다. 미국은 양당제라도 다양한 이슈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 사회 균열구조와 정당체제의 불일치가 심각하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다양한데 정치는 진보와 보수 2개의 진영 논리뿐이다. 무슨 이슈를 대입해도 한국 정치는 진보의 ‘적폐’와 보수의 ‘빨갱이’로 찢어져 있다.
 
개혁·정의와 같은 ‘대의(大義)’를 좇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회민주주의 기본은 ‘대의(代議)’다. 국민이 대표자에게 권력을 맡긴 건 정치인 마음대로 하란 게 아니라 비정규직과 소상공인, 청년과 다문화 등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도 대변해 달란 뜻이다. 과연 오늘날 한국 정치는 무엇을 대의하는가. 자신이 속한 진영과 기득권의 이익만 대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윤석만 이노베이션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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