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거 급증하는 영국…결혼 안해도 출산·양육 지원 같아요

중앙일보 2019.09.30 00:06 종합 20면 지면보기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여자 친구 캐리 시먼즈. 결혼하지 않은 파트너 관계로 총리 관저에서 사는 첫 커플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여자 친구 캐리 시먼즈. 결혼하지 않은 파트너 관계로 총리 관저에서 사는 첫 커플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보리스 존슨(55) 영국 총리는 여자 친구 캐리 시먼즈(31)와 총리 관저에 살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파트너’ 관계로 관저에 사는 첫 번째 총리 커플이다. 존슨 총리는 변호사인 두 번째 부인 마리나 휠러와 자녀 네 명을 뒀는데, 시먼즈와 사귀면서 지난해부터 휠러와 별거하고 이혼 절차를 진행 중이다. 첫째 부인과 이혼 후 2주 만에 휠러와 재혼했던 존슨은 혼외 자녀도 최소 1명을 뒀다.
 

김성탁의 유레카, 유럽
저출산시대 변하는 삶 형태 따라 정책 마련
존슨 총리도 결혼 안 한 애인과 관저 생활
4개월 딸 키우는 동거 커플 "결혼 필수 아냐"
"16살까지 매달 30만원" 싱글맘은 임대료도
동거반려 상속 가능한 시빌 파트너십도 도입

 총리도 동거하는 영국에서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영국 가족 수는 1770만에서 1910만으로 8%가량 늘었다. 결혼한 가족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2008년 69.1%에서 지난해 67.1%로 떨어졌다. 동거 가족은 같은 기간 15.3%에서 17.9%로 늘어 340만에 달했다.  
 
변하는 영국 가족 구조...10년간 동거 크게 늘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변하는 영국 가족 구조...10년간 동거 크게 늘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영국 통계청의 인구통계 담당 소피 산드러스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그는 “결혼이 가장 일반적이긴 하지만, 동거가 가장 빠르게 늘고 있다"며 “결혼하기 전에 함께 살거나,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을 선호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도 처음으로 800만을 넘어섰다. 20~34세 젊은 층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이 10년 전보다 24%가량 늘었는데, 높은 임대료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영국의 가족 구조 변화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한국은 지난해 합계출산율 0.98명으로, 출생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68명은 물론이고 초저출산 기준(1.3명)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영국도 출산율(2017년 1.74명)이 낮아져 비상이다. 하지만 변하는 가족 형태에 맞춰 제도를 운용하려고 노력한다.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자녀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출산과 양육을 지원한다. 동거 커플도 법적 안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마련 중이다.
2년 전부터 동거하며 4달 전 딸을 낳은 조반니 비앙키(왼쪽)와 말타 산체스 커플. 런던=김성탁 특파원

2년 전부터 동거하며 4달 전 딸을 낳은 조반니 비앙키(왼쪽)와 말타 산체스 커플. 런던=김성탁 특파원

 
 지난 25일(현지시간) 오후 런던 동부 캐나다 워터 지역 주택가. 한국 소형아파트에 해당하는 플랏에서 조반니 비앙키(32)와 말타 산체스(34) 커플이 생후 4개월 된 딸을 돌보고 있다. 카페 매니저로 일하는 두 사람은 2년 전 동거를 시작했다.
 
 이탈리아 출신 조반니는 “결혼을 언젠가 하겠지만, 아이가 생겼다고 결혼해야 하는 건 아니다"며 “결혼식에 돈이 많이 드는 데다 우리 가족에게 그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말타는 “과거 스페인에서도 결혼을 권하고 또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훨씬 열린 사고를 한다"며 “여성 혼자 아이를 기르든지,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며 낳든지 상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부모도 동거 상태에서 딸을 낳았지만 더 없이 행복해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영국의 제도가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말타가 출산휴가에 들어가기 전 두 사람은 근무 날짜를 조정해 번갈아가며 딸을 돌봤다. 직장은 일을 모아서 많이 하면 여러 날을 연달아 쉴 수 있게 배려해줬다.
동거 커플인 조반니 비앙키(왼쪽)와 말타 산체스는 "언제가 결혼하겠지만, 지금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동거 커플인 조반니 비앙키(왼쪽)와 말타 산체스는 "언제가 결혼하겠지만, 지금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영국의 출산 및 양육 지원책은 결혼했든 안 했든 아무런 차이 없이 제공된다. 딸을 낳은 후 말타는 온라인으로 딸의 출생 사실과 육아 수당을 받기 위한 신고를 했다. 과거 모든 수당이 나뉘어 있었지만, 영국은 현재 소득에 따라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유니버셜 크레딧 제도'를 운용한다. 조반니는 “우리 소득을 고려하면 딸의 식비 등에 대한 지원비로 말타의 출산휴가 동안 매달 400파운드(약 60만원) 정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말타가 직장에 복귀하면 매달 200파운드(약 30만원) 정도 예상하는데, 딸이 16살 될 때까지 받을 수 있고 교육을 받고 있다면 21살까지도 지원해 준다"고 덧붙였다.
 
 영국은 국가건강서비스(NHS)로 의료비가 무료이지만 대부분 약값과 치과 진료 등은 유료다. 하지만 18세 이하에게는 치과 진료비도 받지 않는다. 말타는 “출산 비용은 병원 식사까지 포함해 무료이고, 임신 때부터 아이가 한 살 때까지 엄마에게도 약값과 치과 진료비를 무료로 해주는 카드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2살이 넘으면 보육 시설을 일정 시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다.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면 정부의 지원책은 훨씬 커진다. 말타는 “내가 만약 아이를 혼자 키울 경우 주택 임대료와 보육원 비용까지 지원이 대폭 늘어난다"고 전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결혼 대신 동거를 택하는 이들의 법적 권리를 보장해주는 제도도 도입 중이다. 영국은 2004년 동성 커플에게 결혼과 유사한 법적, 재정적 보호를 해주기 위해 ‘시빌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 제도를 만들었다. 이후 2013년 동성 커플 결혼이 허용됐는데, 이 시빌 파트너십을 이성 커플로 확대하기로 했다. 
 
 시빌 파트너십은 결혼과 달리 예식을 하거나 언약을 맺을 필요가 없다. 서류에 서명만 하면 된다.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함께 살던 반려자가 사망할 경우 재산 상속이나 연금에 대한 권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지난 7월 페니 모돈트 평등부 장관은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데에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오랫동안 법적 보호를 원하는 많은 사람에게 결혼이 유일한 선택이었다"며 “지난해 테리사 메이 총리가 이성 커플에게도 시빌 파트너십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결혼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는 환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올해 말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성 커플이 시빌 파트너십을 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존 결혼 제도가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많다고 BBC는 전했다. 특히 결혼이 전통적인 성 역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남녀 간 동등한 관계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 대신 시빌 파트너십을 선호하는 안 스토리는 “우리 커플은 1979년부터 함께 살아왔고 두 자녀를 뒀지만, 결코 결혼하기를 원치 않았다”며 “결혼은 여성이 남성의 ‘소지품'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BBC에 말했다. 이 제도를 반기는 이들은 "우리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제도를 달라"고 요구해 왔다.
어린이들이 런던 도심 분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영국의 육아 지원은 보통 16세 안팎까지 이어지고, 교육을 받는 동안이라면 21살까지도 계속 된다. [신화=연합뉴스]

어린이들이 런던 도심 분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영국의 육아 지원은 보통 16세 안팎까지 이어지고, 교육을 받는 동안이라면 21살까지도 계속 된다. [신화=연합뉴스]

 
 늦은 결혼, 1인 가구 증가, 저출산, 고령화…. 영국은 변하는 삶의 형태를 반영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길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