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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김언수 인기…스웨덴에도 'K-문학' 바람이 분다

중앙일보 2019.09.29 11:00
26~29일 스웨덴에서 열린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올해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했다. 정아람 기자

26~29일 스웨덴에서 열린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올해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했다. 정아람 기자

 28일 오후 3시(현지 시각) 스웨덴 예테보리의 스웨덴 박람회장. 소설가 한강의 세미나를 듣기 위해 350명이 넘는 스웨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세미나가 시작하기 30분 전부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그들의 손에는 스웨덴어로 번역된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흰』 등 한강의 책이 들려 있었다. 
 
세미나가 시작되고 한강은 『흰』에 실린 '배내옷'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낭독했다. "내 어머니가 낳은 첫아기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고 했다.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였다고 했다. (…)" 한강은 이 책에 대해 "흰색이 표상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며 "책을 쓰면서 우리 안에 무엇으로도 죽일 수 없고 파괴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고 말했다. 
 
28일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서 열린 한강 작가의 단독 세미나. 객석이 가득 찼다. 정아람 기자

28일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서 열린 한강 작가의 단독 세미나. 객석이 가득 찼다. 정아람 기자

세미나가 끝난 뒤 한강 작가가 스웨덴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세미나가 끝난 뒤 한강 작가가 스웨덴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세미나가 끝나자 한강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비시드 한손(37)은 "스웨덴어로 출간된 한강의 책을 모두 읽었는데 그의 섬세한 감수성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의 작품을 계속 만나보고 싶다"고 밝혔다. 안나 로이드(41)는 "한강의 작품을 계기로 한국문학에 관심이 생겼다. 한국 작가들의 독특한 감각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을 스웨덴에서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의 주인공, 한국문학

 
올해도 뜨거웠던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의 주인공은 한국 그리고 한국문학이었다. 1985년 시작한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도서전이다. 올해 3300평(1만1000㎡) 규모의 전시장에 38개국, 800여개의 출판 관계자가 참가했다. 26~29일(현지 시각) 나흘 동안 전시장은 8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이 혼잡했다. 전 세계에서 독서율이 가장 높은 나라답게 책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다.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주빈국으로 참가한 한국은 '인간과 인간성'이라는 대주제 아래 한국 작가들의 세미나와 전시, 문화 행사 등을 개최했다. 김금희·김숨·김행숙·신용목 등 한국을 대표하는 9명의 작가가 대담을 펼쳤고, 김지은·이수지·이명애 등 그림책 작가도 독자들을 만났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이번에 스웨덴에 소개되는 작가들과 그의 작품들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면서도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 마련된 한국관. 바닥은 1도 기울어져 있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 마련된 한국관. 바닥은 1도 기울어져 있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약 52평(171㎡) 공간에 마련된 한국관에는 소주제(사회·역사적 트라우마, 국가 폭력, 젠더와 노동 등)에 적합한 한국 도서 77종과 한국 그림책 54종이 전시됐다. 한국관의 바닥은 다른 평평한 바닥과 달리 1도 기울어져 있다. 함성호 건축가가 설계를 맡은 한국관은 미세한 기울기를 통해 '우리는 모두 운명의 경사에 놓인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는 존재들’이란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다. 
 
한국관의 전시 도서와 주제 선정을 총괄한 김동식 문학평론가는 "케이팝(K-Pop), 한국 음식 등의 영향으로 스웨덴에서 K-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스웨덴에서는 특히 한강·김언수 작가에 대한 인기가 뜨겁다"고 했다. 이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주최 측으로부터 두 작가를 전시에 꼭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강은 최근 이슈인 양성평등이란 주제에 부합하는 세계적인 작가고, 김언수는 스웨덴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릴러 장르의 작품을 쓰는 작가라 스웨덴에서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문학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개막식 장면. 한국 전통 공연이 열렸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개막식 장면. 한국 전통 공연이 열렸다. [사진 대한출판문화협회]

 
사실 이번 도서전을 제외하면 그간 스웨덴에서는 한국문학을 전면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스웨덴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은 1976년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시작으로, 김소월·이문열·황석영·문정희·황선미·김영하 등의 작품 33종뿐이다. 40여년 동안 나온 번역서가 30여종으로, 한해에 채 한권도 번역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웨덴에서 한국문학의 입지가 좁고, 문학작품을 번역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에 이어 지난해 김언수의 『설계자들』, 올해 한강의 『흰』이 번역되면서 스웨덴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2016년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영향력이 컸다. 최근 스톡홀름대학교 등 스웨덴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이 많이 늘어나 스웨덴과 한국의 가교 구실을 하거나 문학작품을 번역할 인력이 증가한 것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된다.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과거 한국문학이 한국의 특수성에 갇혀있었던 것과 달리 최근 한국문학은 세계적 수준의 보편성을 확보하는 지점에 이르렀다"며 "그간 한국이 겪은 근현대사의 고통과 영광 속에서 한국문학이 확보한 독특한 활력과 역동성에 매력을 느끼는 외국인들이 많다. 스웨덴에도 한국문학 바람이 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기영 작가는 "한국문학은 좁은 남한 땅의 경계를 넘어서 세계로 가고 있다"며 "한국 문단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스웨덴 등 세계에 진출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도서전에 대한 스웨덴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프리다 에드먼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디렉터는 "한국과 스웨덴은 경제 혁신과 교육 등에서 많은 성공을 거뒀지만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번에 도서전에서 협력을 통해 스웨덴이 한국과 한국문학에 더욱 가까워진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아만드 린드 스웨덴 문화부 장관은 "현재 스웨덴에는 한국 문학의 일부 작품만 번역돼 있다. 하지만, 이번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의 작품이 스웨덴에 소개될 기회가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번 도서전은 스웨덴 사람들이 한국의 문학작품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예테보리=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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