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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명 원정대 낙석·낙빙 뚫고…4000m대 5곳 정상 밟았다

중앙선데이 2019.09.28 00:20 654호 22면 지면보기

키르기스 봉우리 7곳 도전

데케토르(4441m) 정상에서 환호하고 있는 대한산악구조협회 원정대원들. 두 번째 줄 왼쪽 첫 번째가 남정아 대원이다.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데케토르(4441m) 정상에서 환호하고 있는 대한산악구조협회 원정대원들. 두 번째 줄 왼쪽 첫 번째가 남정아 대원이다.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핑! 핑! 핑!
 

■ 대한산악구조협 알라아르차 등반
1t 바위판이 바로 옆 코스서 떨어져
낙석 럭비공처럼 튀어 발 못 뗄 정도
크레바스에 강한 햇볕, 35㎏ 배낭까지
“돌아만 가도 성공한 것” 2개 봉은 포기

낙석은 총알이 됐다. 머리만 한 바위가 계속 떨어지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 파편이 얼굴과 팔뚝을 스치고 지나갔다. 윤명섭(51·대전 산악구조대) 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키르기스스탄 프리코리아(4740m) 4100m 지점이었다. 같은 시간 3km가량 떨어진 데케토르(4441m). 이곳에서도 암석이 떨어지고 있었다. 남정아(44·외설악구조대·속초클라이밍짐) 대원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 7월 18일 오전 10시, 한국 등반대는 이곳 키르기스스탄 알라아르차 국립공원 내 7개 봉우리를 동시에 오르고 있었다. 세묘노프텐샨(4875m)·프리코리아·코로나(4740m)·악투(4620m)·데케토르·복스(4420m)·우치텔(4040m)이다. 원정대원은 무려 115명. 대한산악구조협회(회장 노익상)는 창립 10주년을 맞아 한국 등반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원정대를 꾸렸다. 산악구조협회는 17개 시·도의 민간 대원  700여 명이 무보수로 활동하는 사단법인이다. 115명이 1년간 손발을 맞췄다. 7개 봉우리에 팀을 나눠 오르기로 했다. 장헌무(48) 산악구조협회 총무이사의 등반 보고서와 윤명섭·남정아씨 등의 말을 빌려 당시 상황을 전한다.
  
# 살 파고드는 햇볕
 
키르기스스탄 알라아르차 산군 전경.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키르기스스탄 알라아르차 산군 전경.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한낮 37도, 한밤 17도. 한국에서도 한여름 37도는 일상다반사다. 하지만 키르기스스탄의 햇볕은 건조한 공기를 그대로 통과한다. 장헌무 이사는 “햇살은 살을 파고든다”며 “메마른 장작에 그대로 불이 붙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전했다. 7월 14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로 넘어가기 위해 밤을 꼴딱 새웠다. 한낮의 무자비한 햇볕을 피해 해가 질 때야 국경 검문소에 사람이 몰렸기 때문. 국경 너머 일터로 향하는 억센 팔뚝의 사내들, 떼 온 물건을 메고 가는 여인네들, 엄마·아빠 손을 잡고 달처럼 동그랗게 눈에 힘을 주고 있는 아이들…. 원정대는 버스 안에서 자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먼 산의 실루엣을 가늠해보며 시간과 타협을 하고 있었다. 날짜는 7월 15일로 넘어갔고 동쪽이 희붐해지고 있었다.
  
# 데케토르에서의 ‘헤엄’
 
대한산악구조협회 원정대원들이 알라아르차 산군 베이스캠프로 향하고 있다. 대원들은 30~35㎏에 달하는 배낭을 짊어졌다.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대한산악구조협회 원정대원들이 알라아르차 산군 베이스캠프로 향하고 있다. 대원들은 30~35㎏에 달하는 배낭을 짊어졌다.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7월 17일 데케토르. 남정아 대원은 “다크초콜릿 위에 뿌린 연유처럼 흑백의 봉우리”라고 말했다. 남 대원을 비롯한 모든 대원은 30~35㎏의 배낭을 멨다. 산악구조협회에서 포터의 도움 없이 오롯이 대원들의 힘으로 등정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배낭 무게는 체중의 3분의 1을 넘으면 안 된다는 게 산행의 정석이다. 남 대원은 하루 1000m씩 고도를 올렸다. 바위와 얼음벽이 시작되는 빙하 끝에 캠프1을 설치했다. 남 대원은 “원정대에서 여자라고 봐주는 건 없다”며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으면 아예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원정대의 여성 대원은 11명이었다.
 
7월 18일 새벽. 곳곳에 크레바스(빙하나 눈 골짜기에 생긴 거대한 균열)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급경사에서 주먹만 한, 얼굴만 한 암석이 계속 떨어졌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몰랐다. 허벅지까지 올라온 눈은 질척거렸다. ‘눈 반, 물 반’이었다. 하루 전 선발대가 고정로프를 설치하면서 이 루트에서 러셀(눈길을 헤쳐 나가는 등반 기술)을 했지만 걷는 게 아니라 헤엄치는 것 같았다.  
 
대원들이 우치텔 너덜 지대를 통과하고 있다. 우치텔에는 원정대원 115명 중 53명이 올랐다.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대원들이 우치텔 너덜 지대를 통과하고 있다. 우치텔에는 원정대원 115명 중 53명이 올랐다. [사진 대한산악구조협회]

14명 전원이 정상에 올랐다. 이 중 3명은 곧바로 맞은편 복스까지 등정했다. 남 대원은 데케토르 외에 우치텔에도 올랐다. 우치텔 정상에는 53명이 함께 했다. 남 대원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마지막에는 다크초콜릿과 연유처럼 달콤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원정에서 1개 봉우리 이상 오른 대원은 98명. 산악구조협회는 “베이스 캠프 요원 15명, 의료진 2명을 제외한 전원이 당초 계획한 7개 봉우리 중 5곳을 등정했다”고 전했다. 오르지 못한 2곳,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 프리코리아에서의 ‘폭포수’
박성훈 대원이 지난 7월 18일 프리코리아 크레바스를 돌파하고 있다. 이 10m 크레바스는 프리코리아 등반의 난관이었다. [사진 윤명섭]

박성훈 대원이 지난 7월 18일 프리코리아 크레바스를 돌파하고 있다. 이 10m 크레바스는 프리코리아 등반의 난관이었다. [사진 윤명섭]

 
7월 17일, 윤명섭 대장은 프리코리아에서 루트 파인딩(등반 코스를 가늠하는 행위)을 했다. 가느다란 수직의 얼음 크랙이 보였다. 크게 어렵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김찬일(47·경북 산악구조대)·박성훈(39·울산 산악구조대) 대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가까이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수직 10m의 크레바스였다. 윤 대장이 아이스바일(도끼 형태의 빙벽등반 도구)을 휘둘렀다. 퍼석! 얼음도 아니고 눈도 아닌, 셔벗이었다. 바일은 물론 크램폰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추락을 대비해 설치한 스크루는 계속 빠졌다. 10m 오르는 데 3시간이 걸렸다. 로프를 고정한 뒤 탈출했다. 비박 장소로 돌아갔다.
 
이튿날, 크레바스는 계속 덫이 됐다. 로프가 눈에 파묻혔다. 해는 어느새 머리 위로 올라왔다. 정오 무렵 60m를 올랐다. 눈 앞에 나타난 300m의 거대한 벽은 눈·얼음이 녹아 쏟아지는 폭포가 됐다. 낙수에 이어 낙석·낙빙이 총알처럼 몰아쳤다. ‘콰콰쾅~!’ 왼쪽 루트에서는 1t은 됨직한 바위 판이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윤 대장은 “전쟁터 한가운데에 선 기분”이라고 했다. 김 대원은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손을 꽉 쥐고 있더라”고 말했다.  
 
무전기가 터졌다. 등반을 총괄한 구은수(49) 등반기술 이사는 “현장의 판단에 맡긴다”고 했다. 윤 대장은 망설였다. 1년간 준비한 원정 아닌가. 하지만 대원들과 협의 끝에 탈출했다. 윤 대장은 “무사히 돌아가는 것도 성공한 등반”이라고 말했다. 악투 팀도 쉴 틈을 주지 않은 낙수·낙석·낙빙으로 중간에 돌아서야 했다.
 
7월 24일, 인천공항에 마중 나온 윤 대장의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남편의 거친 손을 잡았다. 노익상(72) 회장은 “7개 봉우리 모두 오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며 “그동안의 구조와 훈련으로 5개 봉우리 등정이란 쾌거를 이뤘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중앙아시아의 스위스’ 트레킹·등반 천국
“키르기스스탄(키르기즈 공화국) 관광 중 치안 걱정은 내려놔도 된다”
 
지난 7월 생태 탐방을 다녀온 오충현 동국대 교수는 “키르기스스탄은 터키 같은 세속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외교부에서 지정하는 키르기스스탄 여행 경보는 유의·자제·철수권고·금지 중 어떤 단계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키르기스스탄 대사관 관계자는 “지난 10년 가까이 큰 사건·사고가 없었으며 총선·대선도 무난히 치렀다”고 밝혔다.
 
키르기스스탄은 국토의 95%가 산이다. 해발 3000m가 넘는 곳이 40%다. 최고봉은 7439m(포베티)에 이른다. 산이 높은 만큼 계곡이 깊다. 호수가 많다. 남미의 티티카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정호수인 이식쿨이 있다. 길이 180㎞, 폭 60㎞에 최대 깊이는 700m에 이른다. 코발트 호수와 에메랄드 침엽수, 순백 만년설·빙하가 어우러진다.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리는 이유다. 해외 트레킹 붐이 일면서 한국인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네팔에 이은 신 트레킹 천국이라고 일컬어진다. 키르기스스탄을 10여 차례 찾은 이동윤(50)씨는 “알라아르차 국립공원 근처에 가면 주민들이 반갑다며 차를 그냥 건네주고 아이들은 낯선 이들을 보고 숨는다”며 “그만큼 순수한 곳”이라고 말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 장군이 활약했던 당나라의 안서도호부가 있었다. 인구의 0.3%는 고려인이다. 알라아르차의 프리코리아(Free Korea·4740m)은 1952년 6·25전쟁 중 소련에서 초등했다. 이 봉우리 이름은 당시 한반도를 자본주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알려져 있다. 일제 치하의 한반도를 해방시키자는 의미로 명명 됐다는 설도 있다.
 
대한산악연맹 관계자는 “키르기스스탄은 4000~5000m의 봉우리가 많다”며 “짧은 기간에 다양한 등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최근 등반가들이 많이 찾는 이유”라고 밝혔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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