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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논란, 윤리적 책임 잊은 권력이 정의 외쳐봤자…

중앙선데이 2019.09.28 00:20 654호 26면 지면보기

빠른 삶, 느린 생각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조국 법무장관 임명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새삼스럽게 그 논란에 의견을 보태어 보았자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하여야 한다는 압력을 느낀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 해명과 정리가 있어야 한다는 압력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필요한 일이든 아니든, 우리는 마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하여 대체적인 긍정과 동의 그리고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나날의 삶 자체도 편한 마음으로 살기 어렵다. 부국강병(富國强兵)과 같은 단어는 제국주의 시대에 국가적 목표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절로 지니게 되는 국가 목표였다. (그러한 제국주의적 압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국제 사회에서 또 한국의 국제적인 지위로 보아, 그것이 크게 중요한 믿음의 하나일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장관 임명은 대통령 권한이지만
‘증거 불충분’ 이유 정당화는 곤란

법치주의 아래 도덕적 근거 필요
권력의 거짓 명분 허상은 그만
정부는 현실 윤리의 실천자 돼야

또 달리 필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옳고 그른 것을 완전히 혼동하지는 않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토로 내결고 있는 ‘평등. 공정, 정의’는 근본적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윤리 의식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가치는 오로지 정치적으로만 해석되고, 또 윤리 의식보다는 ‘르상티망(원한)’과 ‘분노’에 의하여 격발되는 것으로만 말하여지지만.
  
한국, 근대화 과정서 윤리적 자산 소진
 
조국 장관 임명에 관련해서 나오는 논란은 대체로 정치적인 문제로만 보지만, 그것은 적지 아니 국가의 윤리적 근본에 관계되는 문제이다. 그런데 민주 국가는 세속 국가이다. 공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은 민주주의를 손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할 것은 민주적 세속주의도 인간 존재에 대한 도덕 윤리적 긍정에서 오고, 국가는 깊은 의미에서는 그 틀을 보장하는 기구가 된다는 사실이다.
 
조국 장관의 임명은 말할 것도 없이 대통령의 관점에서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바르게 행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대통령의 권한을 무엇이 부정할 수 있는가? 또 흥미로운 것은 대통령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초의 결정을 변경할만한 이유가 없다고 자신의 결정을 옹호하기 위하여 내놓은 이유이다. 즉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 결정을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법적으로 타당한 발언이다. 문제된 것이, 가령, 소송에 결려 있는 안건이라면, 이 발언은 정당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의혹의 대상이 되어있는 여러 항목은 더 자세한 조사가 있은 다음에야, 정사(正邪) 판단의 대상이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제도적으로 인권 보장을 그 역사적인 단초로 한다. 어떤 사람도 권력이나 권력 기관의 자의적인 결정에 의하여 그 자유를 제한받을 수 없다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기본이다. 물론 이 개인의 자유가 다른 사람도 누려야 하는 자유 또는 사회 질서의 기본을 손상한다고 하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한은 적절한 법과 절차로 명문화되고 납득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다만 지극히 복잡하고 다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행동들이 법조문으로 완전하게 포괄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제도가 규정한 여러 한계들은 논의와 해석의 대상이 된다.
 
개인 자유의 범위 그리고 그 한계에 대한 이해는 민주 사회의 시민 의식에 스며있다고 할 수 있지만, 여러 공적 이론가나 전문가들은 이 의식을 보다 분명한 것이 되게 한다. 개인 행위가 제재와 처벌의 대상이 될 때, 전문가의 도움은 더욱 절실한 것이 된다. 처벌이 법적 절차 속에서 이루어지려면, 법률 전문가 또는 변호인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형사소송에서, 피의자가 변호인을 스스로 선정할 수 없는 경우라도, 국가에서 선정한 변호인이라도 변호를 담당해야 한다.
 
김우창칼럼 9/28

김우창칼럼 9/28

변호 또는 재판의 전 과정에서, 핵심에 놓이는 것은 사건의 정황, 그 중에도 혐의에 관계되는 사실들이다. 정황이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라도, 사실적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유죄 판결이 성립할 수 없다. 어떤 경우 변호인은, 특히 능숙한 법률인을 마음껏 고용할 수 있는 피의자의 경우, 법을 적절하게 집행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법을 에둘러가는 전략과 기술에 능숙한 사람이라는, 다시 말하면, 법률인이 아니라 불법률인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법적인 입장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정당하다고 하여도, 그러한 법률적 관점에서, 또는 소송 사건의 변호인의 입장에서 행하는 발언이 옳은 것일까? 국가 정책을 추진하는 행정부의 고위 관리가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만으로,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무혐의라는 변호로써 어떤 인물의 고위직 임명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정부 고위직은 그보다는 더 큰 기준에 의하여 평가되어야 하는 자리이다. 일반 시민에게 중요한 것은, 일단은 증거 불충분에도 불구하고 행해지는 자의적 판결의 보류이고 자유권의 유지이다. 그러나 공직은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자리이다. 물론 이 책임이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것일 수는 없다. 민주 사회의 자유는, 법 철학자 아이사이어 벌린이 자유를 부정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하여 말하면서 밝힌 바와 같이, 외적인 강제력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자유를 말하기도 하고, 나아가 자기실현의 추구에 필요한 자유를 말하기도 한다. 이 자기실현은 종종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목적의 실현에 종사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봉사는 일정한 기능의 연마와 인격 도야를 요구한다. 이러한 준비와 더불어 필요한 것은 윤리 의식의 함양이다. 그리하여 그런 사람은 윤리적 인간의 모범이 된다.
 
다시 말하건대 윤리 의식과 규범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것은 윤리 도덕의 엄격주의가 된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와 창의성을 크게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그리하여 윤리 강령의 배제는 민주주의의 성장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윤리 도덕의 척도가 없이는 사회에 바른 질서가 성립할 수 없다. 개인의 자유를 수호하는 정치체제도 사회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 자본에 의하여 지탱된다. 우리 사회에서 근대화의 한 결과는 이 자본의 소진이었다. 물론 그것은 억압적 도덕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개인의 자유도 존재하기가 어렵다. 개인의 자유는 궁극적으로 개인 존재의 귀중함에 대한 윤리적 도덕적 인식에 의하여 뒷받침된다.
 
되풀이 하여, 지나친 윤리 엄격주의는 그 나름의 문제를 갖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오늘의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은 도덕과 윤리가 스러져 가는 것에 대하여 불안감을 느낀다. 윤리적 책임으로부터 멀리 있을 수 없는 국가의 법 체제를 떠맡는, 법무장관의 자리에 많은 의혹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을 임명하는데 대하여 반기를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의혹의 대상이 되는 사항들에 충분한 증거가 있는가가 하는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바 대로, 도덕주의의 문제점은 바로 합리적 검증의 절차를 건너 뛸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렇기는 하나 이 검증은 우리 경우에, 그리고 모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실 검증 이상의 도덕적 윤리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치적 결정에 있어서 윤리적 고려는 대략적이고, 국민 여론을 참조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민주정치에서 사회적 찬반과 지지는 원활한 정책 집행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오늘의 논란에서 눈에 띠는 것은 당파적인 적대감이다. 그러나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볼 때, 당파적 대결은 문제점들을 여러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민주적 쟁의는 보다 진실된 결정에 이르는 데에 거쳐야 하는 시련의 과정이다.
 
당파적 대결도 때론 진실에 이르는 과정
 
민주 국가에서 일의 처리에 원칙이 되는 것은 법치주의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법에 의하여 보호된다. 그러나 그 원칙 아래는 도덕적 윤리적 근거가 있다. 자유는 개인적 삶의 존엄을 인정하는 것에 의하여 정당화된다. 그 인정은 삶 일반에 대한 윤리적 이해를 포함한다. 윤리는 개체의 생명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생명의 존재론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규범을 따르는 일이다. 이러한 윤리의 인정은 인간의 의식에 본유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의식화되어야 하고 제도화되어야 하고 문화의 속성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학문과 문화 활동이 담당하여야 하는 과업이고 역사적 발전의 과실물(果實物)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개인적 인격 수련으로서 습득된다. 정치는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실천 행위이다. 우리는 정치의 현실적 움직임 속에서, 정치 지도자의 말과 행동에서, 그리고 정책에서 그것을 느끼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것은 분명히 표현되지는 아니하면서도 사람들의 소망이고, 우리 사회처럼 근대화를 통하여 윤리 문화의 자산이 소진된 상태에서는 특히 간절한 바람이다. 그리하여 이상적으로 말하건대, 정부는 정책의 집행자이면서, 동시에 현실 윤리의 실천자이기를 바란다.
 
조국 법무장관의 임명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완전히 윤리적 책임 의식을 잊어버린 정치 권력의 현실이다. 물론 이 정치 권력의 움직임은 그 나름의 정의 실천을, 그러니까 사회의 윤리적 원리의 재정립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 실천의 실상은 쉽게 권력의 자의적 사용을 감추는 거짓 명분이 된다. 그리고 공공 윤리 일반을 허상(虛像)이 되게 한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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