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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하고 고통스러운 우리의 사랑 이야기

중앙선데이 2019.09.27 15:28
 앤드루 포터의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의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명석한 단편작가 앤드루 포터의 출세작
단편 10편 묶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문학동네, 1만3800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소설이 있다.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제목의 소설과 그렇지 않은 소설. 가령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인 『죄와 벌』 같은 소설은, 선험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여러 사전 정보들로 머릿속이 오염되서인지는 몰라도, 제목에서 지적 호기심을 느끼기는 힘들다.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겨우 두 권의 소설책을 낸 데 불과한 미국 작가 앤드루 포터(47)의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첫 번째 경우에 속한다. 이를 테면 단답식이 아닌, 산문적인 느낌의 제목은 즉각적으로 우리 안의 어떤 마음을 자극해 슬며시 손을 잡아 이끈다. 어서 펼쳐 보라고. 제목이 무슨 뜻인지 당장 알아내라고 말이다.
 
작가 앤드루 포터는 이 소설책 한 권으로 일약 주목받은 모양이다. 얼마나 비중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국내 소개되는 어떤 미국 작가들 이력에 훈장처럼 따라 붙는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받았고, 물론 이 소설로, 출간되던 2007년 장르 장벽을 뛰어넘어 대가 취급 받는 스티븐 킹이 올해 100대 소설 중 한 권으로 꼽았다고 한다.  
 
소설집에는 고만고만한 분량의 모두 10편의 단편이 들어 있다. 물론 표제작 단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포함해서. 당신 앞에 놓인 한 권의 소설집을 간명하게 요약하라고 하면 어떻게 할 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 포터 식으로 일반 이론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한 소설집 안에 묶였다 하더라도 그 안의 단편들은 빛깔이 제각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앤드루 포터

앤드루 포터

포터의 소설은 다르다는 얘기를 하려는 거다. 소설은 마치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현재 시점에서재구성해 추체험하게 하는 장르라는 점을 강조라도 하는 것처럼 대부분 10년 이쪽저쪽, 그러니까 바짝 과거인 지난달 혹은 지난해가 아닌, 한 세월 이전의 사건과 상처를 회고하는 시선이 소설책 전체에 살아 있다. 소설집 안의 상당수 단편들이 한참 전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연들, 이야기의 소재는 물론 제각각이다. 어머니의 동성애 연애 사실을 알아차리고 괴로워하는 10대(‘코네티컷’), 어린 시절 눈앞에서 목격한 친구의 충격적인 사고사(‘구멍’),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저수지의 개들’을 연상시키는 10대들의 거친 삶(‘강가의 개들’)…. 이런 소설의 소재들을 싸잡아 설명하는 표현이 다행히 소설책 안에 나온다. 표제작 안의 이런 대목이 그렇다.  
 
“우리를 배신한 스러진 사랑들, 우리가 배신한 스러진 사랑들, 추억하기조차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유년의 순간들.”(106쪽)  
 
표제작은 서른 살 연상인 물리학과 교수 로버트와 여제자인 헤더의 사랑 이야기인데, 두 사람은 인용문과 같은 이야기들을 서로 털어놓는 것으로 그려진다. 제3자는 어떻게 이야기해도 납득시키기 어려운, 그래서 어쩌면 얘기할 필요가 없는, “삶의 내밀한 사정”에 속하는 이야기들을 두 사람이 나눴다는 얘기다. 그런데 인용문의 첫 번째 명사구와 두 번째 명사구의 차이를 눈치채셨나. 첫 번째는 당한 경우, 두 번째는 가해한 경우다. 사랑의 배신 말이다. 포터의 소설은 조사 하나를 놓치지 말아야 할 만큼 섬세하게, 그리고 작품집을 읽어가며 거듭 확인하게 되지만 주도면밀하게, 어떤 사람들 삶의 내밀한 사정을 전한다. 표제작은 특히 가슴 저리고 뭉클한 작품인데, 알쏭달쏭한 제목의 의미를 알아내는 게 읽는 이에게 주어진 숙제다. 기자는 빛과 물질을 각각 사랑과 육체, 정신과 인간, 이런 식으로 읽었다. 당신의 답은? 정답은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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