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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그냥 386’은 억울하다

중앙일보 2019.09.27 00:11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조국 사태가 급기야 세대 전쟁으로 번질 기세다. 버티는 조국과 그를 옹호하는 좌파 인사들의 궤변이 386 기득권에 대한 환멸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위선과 오만에 질린 20대들은 촛불을 들었다. 중앙일보가 기획한 ‘386의 나라 대한민국’ 기사 앞에서 자괴감을 느낀 386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성싶다.  
 

변질된 일부 386의 행태 때문에
기성세대 전체 매도당하는 현실
플러스 섬 경제가 세대전쟁 해법

그러나 최근의 ‘세대교체론’ 앞에서 한 가닥 억울함이 꿈틀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부 운동권 출신 386의 비상식적인 처신 때문에 왜 우리 세대가 도매금으로 넘어가야 하는가. 억울함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일부 운동권 386’이 과연 지금의 50대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가. ‘코호트’(특정 경험을 공유하는 집합체)라는 세대 개념을 만든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은 17세에서 25세 사이의 집단적 정치 경험 효과가 일평생 지속한다고 봤다. 알다시피 386은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다. 이들은 독재 시절 민주화 경험을 같이한 ‘코호트’다. 그러나 60년대생의 대학 진학률은 30% 정도다. 386이란 용어에서 배제되는 ‘그냥 6’이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다. 설사 대학생이었을지라도 운동권은 상대적 소수다. 국회의원이 되고, 기업체 임원이 되고,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된 386이 많다. 하지만 대다수 60년대생은 곧 닥칠 퇴직을 걱정하거나, 빈자리 늘어나는 객장에 우울해 하거나, 취업 안 돼 캥거루족이 돼가는 자녀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개천의 ‘개구리·붕어·가재’들일 뿐이다. 변질한 386이 기성세대 전체를 대표할 권리는 없다.
 
둘째, 분노의 대상이 과연 세대인가 가치인가. 물론 같은 세대가 비슷한 세대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둘의 구분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이를 뒤섞어버릴 경우, 사회 변화를 위한 정당한 분노는 비생산적인 세대 갈등으로 빠질 수 있다. “틀딱보다 더 심각한 386 꼰대” “50대 초중반 386세대는 진짜 없어져야 할 세대” 같은 댓글 식의 막연한 분노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386으로 통칭하는 1960년대생은 860만명이다. 10년 단위 인구 분포상 가장 많은 연령대다. 정치·사회적으로 이들의 목소리가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세대가 문제라면, 젊은이들이여, 10년만 기다려라. 386이 486, 586이 됐지만 설마 686, 786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힘을 쓰겠는가. 그러기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가치다. 386 가치관 중 낡은 것은 극복하고 긍정적인 것은 발전시키려는 고민이 없다면 세대 전쟁은 소모적 비용만 치르게 된다.
 
386을 둘러싼 논쟁은 얼핏 세대 문제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의 문제다. 386의 힘은 인구 구조, 정치 지형, 경제 상황이 결합한 산물이다. 그중 밑바탕은 경제다. 1980년대 중반~90년대 중반 ‘3저 호황’(저유가·저달러·저금리)과 ‘북방 경제’로 상징되는 한국 경제의 호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386이 있었을까. 당시 대학생들은 별 어려움 없이 취업해 중산층이 될 수 있었고, 이들이 지닌 ‘마음의 빚’이 운동권 출신 386의 힘이 됐다. 그러다 경제 성장판이 닫힘에 따라 자원 배분은 점차 ‘제로섬’ 게임이 됐고 세대 갈등은 깊어졌다.
 
지금 20·30대는 ‘닫힌 문’에 좌절한다. 그것이 과연 386의 이기심 때문만일까. 기성 세대와 미래 세대간 연대와 균형은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를 실체 모호한 세대 전쟁으로 풀 수는 없다. 관건은 ‘제로섬’ 게임을 ‘플러스 섬’ 게임으로 돌리는 일이다. 우리 경제 잠재성장률이 추세적으로 낮아지는 현실에서 쉬운 과제는 아니다. 가뜩이나 좁은 문을 아예 닫아버리는 정책을 정의로 포장하는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정치의 한가운데 ‘일부 386’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들의 ‘포장된 선의’에 자꾸만 속아서야 세대 전쟁은 공허한 소모전을 면키 어렵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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