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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릭스미스, '임상 오염' 공시 직전 오너 일가 지분 일부 매각

중앙일보 2019.09.26 18:04

'제2의 신라젠'? 오너일가 3상 실패 미리 알았나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헬릭스미스 임상3상 결론 도출 실패 관련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헬릭스미스 임상3상 결론 도출 실패 관련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임상 중 위약과 진짜 약이 바뀐 '사상 초유의 임상 오염 사태'로 논란의 중심에 선 헬릭스미스(전 바이로메드)의 주요 주주 중 일부가 임상 오염 공시 직전 지분을 처분한 것으로 밝혀졌다.
 
헬릭스미스가 26일 장 마감 후 공시한 지분 변동 내역에 따르면 김선영 대표의 처남인 김용수 전 헬릭스미스 대표의 아내 이혜림씨는 23일 2500주를, 그의 딸 김승미씨는 500주를 장내 매도했다. 주식을 판 이유에 대해선 주식담보대출 상환을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임상 오염' 관련 공시가 23일 장마감 후 나온 것을 고려하면 "내부 정보를 미리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헬릭스미스는 지난 23일 "당뇨병성 신경병증(DPN) 임상3상 일부 환자에서 위약과 약물의 혼용 가능성(환자에게 가짜 약과 진짜 약 혼합 투여)이 발견돼 별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이번주 공개 예정이던 미국 임상3상 결과 발표는 오는 12월경으로 연기됐다.
 
김선영 대표 본인도 해명 기자간담회를 연 26일 오후 10만주를 장내 매도했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오는 30일 만기되는 신한금융투자 주식담보대출 240억원 중 연장에 실패한 140억원을 상환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내부 정보를 이용해 사전에 주식을 팔았다는 의혹에 대해 김선영 대표는 "직계 가족도 아니고 처남의 처나 딸에게 내부 정보를 주겠나. 만약 내부정보를 미리 알았다면 만 주, 십만 주 단위로 팔지 2500주를 팔았겠냐"며 "꼬이다 보니 이런 것까지 꼬이는 오비이락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기술특례 1호 기업의 황당한 '임상 오염'…사흘만에 2조 증발

한편 김 대표는 이날 오전 연 기자 간담회에서 오염 발생 경위에 대해 "환자와 의료진 모두 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방식으로 임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관실이나 병원, 분석실 중 어딘가에서 약이 바뀐 것으로 추정, 현재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선 "혼용 환자 등을 제외한 438명을 자체 분석한 결과 약효와 안전성만은 분명한 미완의 성공"이라고 주장했다. "DPN 외에도 루게릭병(ALS), 샤르코-마리-투스병(CMT) 등 6개 질환을 타깃으로 하는 약물이라, DPN 후속 3상과 ALS, CMT 임상을 동시 진행해 2022년까지 미국 시판허가(BLA) 3개를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헬릭스미스는 2005년 '국내 1호 기술특례상장기업'으로 발탁돼 15년간 DPN 신약 후보물질 '엔젠시스(VM202-DPN)' 개발에 주력해온 곳이다. 그러나 신약 개발의 8부 능선인 미국 임상3상에서 위약 환자군(플라시보군) 중 36명에게서 고농도의 신약 물질이, 엔젠시스 투여 환자군(액티브군) 중 32명에게서는 저농도의 신약 물질이 검출되면서 위약군과 투여군이 뒤섞이는 황당한 '임상 오염'이 발견됐다. 
 
20여 년 경력의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임상 오염 사례 숫자가 임상 중간에 발견되지 않고 3상까지 간 경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실수건 아니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고 평했다.
 
23일 공시 직전 3조6543억원이었던 헬릭스미스의 시총은 26일 종가 기준 1조6203억원으로 사흘 만에 약 2조원이 쪼그라들었다.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헬릭스미스 DPN 3-1상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DPN을 비롯한 다른 파이프라인들의 향후 로드맵이 발표됐다. 김정민 기자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헬릭스미스 DPN 3-1상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DPN을 비롯한 다른 파이프라인들의 향후 로드맵이 발표됐다. 김정민 기자

 

'6대 신약' 중 4개 휘청…기초적 실수 반복되는 바이오업계

2019년 기대 받았던 ‘6대 신약’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2019년 기대 받았던 ‘6대 신약’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이번 헬릭스미스 사태는 바이오업계로선 숨 돌릴 틈 없이 또 다시 불어닥친 악재다. 지난 5월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허가 취소를 시작으로 6월 에이치엘비의 '리보세라닙' 3상 목표치 미달, 8월 신라젠의 '펙사벡' 3상 중단 등 올해 신약개발의 마지막 관문인 임상 3상 결과가 나오기로 예정돼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국내 바이오 업계 '6대 신약' 중 4개가 반년 만에 줄줄이 고꾸라지거나 휘청이게 된 것이다. 남은 두 곳은 미국 임상3상을 통과해 오는 11월중 시판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SK바이오팜의 신약 세노바메이트와, 3상 결과를 발표하는 메지온의 신약 유데나필이다.
 
본래 성공률이 58%(FDA 기준) 정도로 낮은 임상 3상의 좌초 자체는 놀랍지 않다. 신약 개발에서 실패는 흔한 일이다. 그러나 주성분이 뒤바뀌거나(인보사), 임원진이 주식 88억원어치를 미리 매도하고(신라젠), 위약과 진짜 약이 섞이는 (헬릭스미스) 등 기초적인 임상 실수와 도덕적 해이 등이 잇달아 터지면서 업계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상황이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 한국 업계라면 공개하지 않고 숨겼을 실패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가면서 발표될 수밖에 없어졌다"며 "발표 자체가 많아지면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선진 레벨로 가기 위한 성장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기초적인 투약 임상의 실패 등 국내 바이오업계에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은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임상 디자인 전문가,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육성 등 기초를 다지는 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임상 정책을 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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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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