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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취업난, 北 손잡으면 된다는 여권 386"

중앙일보 2019.09.26 01:40 종합 1면 지면보기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386컴퓨터가 빅데이터를 돌려보겠다고 나선다면? 주변에서는 ‘기술이 바뀌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내가 제일 잘 안다’며 물러서지 않는다면? 문제는 거기서 발생한다.”(김정훈·심나리·김항기 『386 세대유감』)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성공한 세대란 말을 듣는 386 세대지만, 최근엔 386 세대의 유통기한이 끝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86 세대가 내세우는 가치는 늘 과거회고형일 뿐, 후속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미래상은 보여주진 못했다는 것이다.

기술 바뀌어도 “내가 제일 잘 안다”
“맨날 과거 얘기 시대상 못 쫓아가”
주요 정책에 30년 전 시각 반영

 
화염병을 들고 전경들과 대치 중인 1980년대 대학생 [중앙포토]

화염병을 들고 전경들과 대치 중인 1980년대 대학생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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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80년대에 고착된 정신세계

 
최근 386 세대가 80년대 사고방식에 갇혀 있어 달라진 시대상을 쫒아가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아졌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권의 386 인사들이 도마에 올랐다. 실제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52시간 근무제, 대일 강경외교, 남북 평화경제 구상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가운데 386 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되지 않은 건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80년대 대학가를 풍미했던 민족지상주의와 ‘재벌ㆍ시장ㆍ성장=악, 노조ㆍ정부규제ㆍ분배=선’ 등의 도식이 투영돼 있다. 문제는 한국이 세계 7위의 무역 규모를 자랑하는 글로벌 국가가 됐고, 인공지능ㆍ가상현실ㆍ유전자치료 등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적 변화가 급속히 전개되고 있는 마당에 과연 30여 년 전 패러다임이 유효하냐는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386 세대 가운데 외국 생활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학생운동 시절 받았던 이념의 세례를 극복하기 상당히 어렵다. 당시의 반미 정서 때문에 지금도 미국 얘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386들이 많다”며 “사회와 경제를 보는 시각도 30여 년 전 학습이 머릿속에 문신처럼 박혀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기획사 폴리컴의 박동원 대표도 “386 세대는 5ㆍ18 광주사태를 미국이 방조했다는 의식이 강해 반미의식이 뿌리 깊고 중국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유화적이다. 예전에 읽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책의 틀에서 지금도 못 벗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1987년 고문을 받다가 숨진 고 박종철 학생의 백일제가 서울대학생들의 시위와 함께 치뤄졌다. [중앙포토]

1987년 고문을 받다가 숨진 고 박종철 학생의 백일제가 서울대학생들의 시위와 함께 치뤄졌다. [중앙포토]

80년대에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국회의 한 386세대 보좌관은 “대학 시절 본 책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 한 쪽으로 치우친 내용들이다. 사회 진출 이후에 부지런히 지적 업그레이드에 노력하지 않은 386 세대라면 역사와 사회를 보는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포스트 386세대’의 맨 앞에 서 있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성균관대 90학번, 총학생회장)은 “386세대가 여야를 떠나 20~30년의 국가 비전을 내다보고 협의하고 조율해서 이뤄낸 게 뭐가 있나. 아무것도 없다. 맨날 과거 얘기만 한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386세대는 자신들이 87년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이유로 그때 동참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겐 ‘마음의 빚’을 강요하고, 그때 적대적이었던 세력은 지금까지 계속 악마화한다”며 “386은 상대를 공격하기만 할 뿐 미래를 창출하기 위해 상대와 협의하는 건 방기했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80년대는 선악의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다. 그런데도 지금도 여당의 386은 정치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접근하니까 야당에 대해 정치력을 발휘하질 못한다”고 지적했다.

경찰로부터 고문을 받다 사망한 고 이한열군 고문경관 재판 결과 항의와 호헌철폐 등을 주장하며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6월 민주화항쟁의 불씨를 이어나갔다. [중앙포토]

경찰로부터 고문을 받다 사망한 고 이한열군 고문경관 재판 결과 항의와 호헌철폐 등을 주장하며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6월 민주화항쟁의 불씨를 이어나갔다. [중앙포토]

 
386세대의 경제문제 해결능력에도 의문부호가 달려있다. 자신의 윗세대인 산업화 세대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여론전문가인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386세대는 경제성장을 통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보여준 적이 한번도 없다”며 “지금의 20~30대는 취업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는데 386세대는 ‘북한과 손잡으면 된다. 일본에 이기면 된다’는 식으로 엉뚱한 대답만 늘어놓고 있어 젊은 층의 반감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NL 운동권 출신인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치 엘리트 386 인사들은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돈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집단”이라며 “가령 그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이 준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386 리더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진보지식인인 홍세화씨는 “지적 우월감과 윤리적 우월감으로 무장한 민족주의자에게서 자기성찰이나 ‘회의하는 자아’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다”고 말했다.

 

②도덕적 권위 실추

 
386세대의 권위는 도덕성에서 비롯됐다. 20대때 386세대는 군부독재에 맨손으로 저항하는 ‘행동하는 양심’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386세대가 점점 기득권층에 진입하면서 각종 추문과 스캔들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대표적 386세대 인사들이 여러 차례 도덕성 논란을 일으키면서 386세대의 권위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배종찬 소장은 “386세대가 빠르게 우리 사회 운영권을 쥘 수 있었던 건 이들이 내세웠던 도덕적 결백성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386세대의 이중성이 드러나고 국민들이 ‘386 착시현상’에서 깨어나는 순간 386의 주도권은 유지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최홍재 신문명연대 대표는 “부유층에 대해선 여전히 심정적으로 적대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뒤에서 그런 걸 추구하고, 사교육과 특성화 교육엔 반대하면서 자기 자식은 특목고에 보내는 사례가 한 두 건이 아니었다”며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 살아가는 모습의 모순이 워낙 크다”고 비판했다.

386세대 연구의 권위자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386세대가 과거 자신에게 부과했던 역사발전의 동력은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과거의 문화와 비슷하게 닮아가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비판과 환멸이 나타난 것”이라며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례처럼 386세대가 겉으론 굉장히 멋있지만 캐고 들어가면 기득권 집단하고 하나도 차이가 없다. 정치권 386세대가 대부분 그렇다. 이제 대중의 눈에 그런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2000년 4.13 총선에 출마하는 민주당 386세대 공천자들. 당시 선대위원장이었던 이인제(가운데) 전 의원과 함께 이인영(오른쪽 셋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임종석(오른쪽 둘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자리했다. [중앙포토]

2000년 4.13 총선에 출마하는 민주당 386세대 공천자들. 당시 선대위원장이었던 이인제(가운데) 전 의원과 함께 이인영(오른쪽 셋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임종석(오른쪽 둘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자리했다. [중앙포토]

 

③시효 끝난 민주화 훈장

 
2016년 386세대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새정치를 주장하시던 분들, 87년 6월 항쟁 때 어디서 무엇을 하셨나”라며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를 공격한 적이 있다. 30여년전 학생운동과 투옥 경력을 인생의 영원한 훈장으로 생각하는 선민의식이다. 하지만 요즘 20ㆍ30대에겐 그런 얘기가 잘 안 통한다. 숙명여대에 2010년에 입학한 여명 자유한국당 서울시의원은 “자신들이 마치 전국민에게 민주화라는 빚을 안겨준 것처럼 구는 것은 위선이다. 386세대의 주장은 ‘우리가 민주화 운동할때 당신들은 뭐했냐’는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비위가 있음에도 우리는 민주화 투쟁했다는 것으로 다 뭉개고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87년 민주화가 어찌 386만의 공인가. 당시 대학생뿐 아니라 다른 세대도 다 발벗고 나섰다. 더이상 386의 민주화 프레임에 끌려다녀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최홍재 대표는 “안철수쯤 되면 우리 사회에 분명히 의미있는 기여를 한 사람인데도 정치권의 386 들은 학생운동을 안 했다는 이유로 폄훼한다. 그러니 정치권 386 들이 일반인들을 보는 시각은 어떻겠냐. 물어보나 마나”라고 꼬집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당시 김영삼ㆍ김대중을 필두로 한 제도권 야당과 70년대부터 내려온 사회운동진영의 공로도 무척 컸다. 민주화의 공로를 오롯이 386세대가 가져가는 건 무리다. 진보 성향인 『386 세대유감』의 저자들은 “386세대가 과거의 헌신으로 오늘의 영광을 보상받는 게 정당한가는 따져봐야 한다. 모든 세대는 각자 살아가는 시대의 무게를 나눠서 견디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시절 386세대 초`재선 의원 모임인 `국가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 소속 의원들이 영등포 당사에서 미국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에 반대하는 대미 비판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열린우리당 시절 386세대 초`재선 의원 모임인 `국가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 소속 의원들이 영등포 당사에서 미국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에 반대하는 대미 비판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④기득권 방어

 
386세대에 대한 후속세대의 불만 중 하나는 도무지 386세대가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동원 대표는 “386은 민주화된 세상을 우리가 만들었다는 선민의식이 너무 강하다. 그러다보니 후배들에겐 ‘너희는 아직 모른다’는 식으로 대하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청와대건 국회건 정치의 상층부를 돌아가면서 장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용진 의원도 “386 자신들은 30대 때부터 국회에 진입했으면서 후속 세대들에겐 공천 기회도 안 주고 계속 자기 보좌진으로만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업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난다. 신용한 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은 “노동계만 해도 임금피크제의 대상이 되는 386세대가 절대 양보를 안하니 젊은 층 일자리가 늘어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의장은 “현재 주요 대형 노조는 386세대가 핵심이다. 오히려 그 이후 세대는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386세대가 자기 생애주기에 맞춰 국민연금개혁ㆍ노동개혁 등에서 자신들에겐 손해가 적게 설계하고 부담은 후속세대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탐사보도팀=김태윤·최현주·현일훈·손국희·정진우·문현경 기자
pin2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