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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징용 배상 요구 않고 일본은 분명한 사과를"

중앙일보 2019.09.26 00:25 종합 1면 지면보기
한·일 갈등의 해법을 찾기 위해 양국 전문가들이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일공동세미나(한반도평화만들기 주최)로 머리를 맞댔다.  
 

한일공동세미나서 제안

‘갈등을 넘어 공생을 위한 한·일 관계를 향하여’를 주제로 하는 이번 세미나는 양국 관계를 진단하는 국내 전문가 모임인 한일비전포럼이 지난 4월부터 13차례에 걸쳐 진행했던 논의를 결산하는 자리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은 기조연설에서 “양국 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어 너무도 안타깝다”며 “단 하나의 갈등 요인이라도 추가되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릴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상태”라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양국 정부에 특단의 대책을 제안했다. 한국 정부에는 “일본을 상대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길 바란다”며 “‘일본이 곤란해하면 굳이 받지 않겠다’고 정리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엔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처럼 양국 정부 간 합의 형태로 ‘한국인’을 상대로 한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은 축사에서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한국은 일본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좀 더 관대해야 한다”며 “일본도 지금처럼 한국을 대륙 세력에 몰아넣는 자세를 유지하면 일본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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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기조연설 전문>
미로에 갇힌 한일 관계,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존경하는 한일 양국의 지성인과 전문가 여러분,
 
오늘 우리는 캄캄한 미로에 갇힌 양국 관계에 한 줄기 빛을 비춰보겠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참석해주신 나가미네 대사님과 오구라 전 대사님을 비롯한 일본의 지성인들에게 각별한 우정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국의 공로명‧한승주‧유명환 장관님, 최상룡, 신각수, 안호영 대사님을 비롯한 한국측 참가자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저는 좋았던 한일관계가 회복 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올해 4월 여기 계시는 한국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 한일비전포럼을 만들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제기하기 어려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모색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가시적 움직임도 없었고, 누구도 경고음을 내지 않았지만 불행한 사태를 막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나섰던 것입니다.  
 
한일비전포럼은 지금까지 열세차례의 토론회를 갖고 역사‧경제‧외교‧안보의 거의 모든 현안을 다뤘습니다. 다행히도 양국 모두에서 지혜로운 분들의 뜨거운 성원과 지지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한국과 일본은 2500년 동안 끊임없이 상대의 장점을 배워서 각자의 문명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켜 왔습니다. 두 나라는 서로에게 소중한 스승이자 친근한 벗이었습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하면서 다른 모든 나라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특히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두 나라는 역사상 최고의 상호이익을 실현했습니다. 역동적인 세계경제의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유기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일본은 한국을 주요 시장의 하나로 해서 글로벌 밸류체인의 최상단에 자리잡았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지금까지 누적 무역흑자가 6046억 달러, 약 798조원입니다. 한국은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일본에서 소재‧부품‧ 장비를 수입해서 연간 1267억 달러, 약 150조원 규모의 반도체 수출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양국은 이렇게 너무도 궁합이 잘 맞아서 2인3각의 분업체제로 서로 윈윈해 왔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한국 제조업은 마케팅 능력이 탁월하고 일본은 자본과 기술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제 3국 시장을 개척할 때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해왔습니다. 이쯤되면 한일 양국은 사실상의 자연적 경제공동체를 구축해 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양국의 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처음에는 과거사를 놓고 부딪치더니 마침내 경제와 안보에서도 충돌하고 있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로 촉발된 갈등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절차 강화, 한국 기업에 대한 일본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특히 지소미아 파기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개입을 끌어내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의구심만 키우고 말았습니다. 날로 커지는 북핵 위협에 대비하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삼각안보공조의 바탕이 되는 상호 신뢰에 균열을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한일 양국이 서로 의존하게 해놓고 뒤통수를 치는 상호의존성의 무기화(Weaponization of interdependence)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명국가의 품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소용돌이치는 국내 정치에서의 유‧불리를 계산하고,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하는 시대착오적 과잉민족주의의 망령이 21세기의 동북아에서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단 하나의 갈등 요인이라도 추가되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릴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제 반일과 혐한으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는 지도자들의 거친 언사는 중단돼야 합니다.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춰야 한다”는 외교세계의 지혜가 발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동아시아의 퇴행적 현실을 바라보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어제와 오늘을 생각해 봅니다. 유럽은 지난 세기에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두 차례 세계대전의 처참한 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적대와 증오의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평화와 협력관계로 전환시켜 유럽공동체를 탄생시켰습니다.  
 
각국 정부의 노력도 있었지만 프랑스의 장 모네 같은 탁월한 민간 선각자의 막후 중재역할도 컸습니다. 그를 “유럽 통합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물론, 한중일 3국은 아직도 식민지와 전쟁으로 얼룩진 과거사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시아의 지성인들도 유럽의 선각자 못지 않은 역량을 발휘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서구인들은 세기가 바뀐 뒤에도 여전히 과거사 갈등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시아를 향해서 대놓고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미국과 유럽의 전 현직 지도자들은 “왜 아시아는 유럽처럼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지역통합을 이룰 수 없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물론 일본에도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정치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나카소네 총리는 전후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했습니다. 1984년 중국을 방문해 덩샤오핑 주석을 만나 소련의 위협에 함께 맞서기로 했습니다. 민감한 주제인 일본계 전쟁고아 문제 처리를 놓고도 같이 고심했습니다.  
 
나카소네 총리는 낮은 금리로 수십억 달러의 신규 차관을 중국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일본의 재정사정이 빠듯했지만 원조액수를 늘리자고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전쟁 때 큰 고난을 일으킨 것에 유감을 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덩샤오핑 주석도 “일본과 중국의 친교역사는 21세기에도, 22세기, 23세기, 43세기에도 계속돼야 한다”고 화답했습니다. 일본은 광대한 중국 시장에 접근하기를 원했고, 중국은 일본의 자본과 기술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심지어 나카소네 총리와 덩샤오핑 주석은 중국은 북한에게서, 일본은 남한에게서 밀서를 받아 교환해 한반도의 남북 대화를 중재하자는 얘기까지 나눴습니다. 두 거인은 상대를 인정하면서 평화의 공간을 넓혀나갔던 것입니다. 나카소네 총리는 1983년 일본 현직 총리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을 만났고, 전 대통령은 다음해 일본을 답방해 양국 관계를 발전시켰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도 의기투합하면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카소네 총리는 취임 이후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지만 1985년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그해 8월15일 참배 이후 중국 전역에서 반일시위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는 “내가 계속 야스쿠니를 방문하면 시위는 계속될 것이고, 그러면 후야오방 총서기가 자리를 잃게 된다. 친일 인사가 실각하는 것은 일본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물러설 줄도 아는 원숙한 지혜가 오늘날의 지도자들에게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아키히토 천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우파 의원들이 “천황부부가 중국에 가면 체포돼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반대했지만 1992년 기어코 중국에 갔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는 올해 4월 그가 퇴임하자 “중일관계 개선에 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누구나 알기 쉬운 말로 얘기하도록 애를 썼다”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민 천왕’”이라고 호감을 표시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납북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2002년 일본총리로서는 최초로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식민통치를 사과했고,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도 국내의 극심한 반발을 겪어야 했습니다. 2003년 두 번째 방북을 마쳤을 때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외무성 심의관 다나카 히토시의 집에는 ‘반역자’라는 메모와 함께 폭발물이 설치됐습니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더 큰 뜻을 위해서라면 당장의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지도자다운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용단을 내렸습니다. 일본에서 납치사건이라는 악몽을 겪었지만 불편한 개인사를 접어 두고 양국관계의 드라마틱한 전환을 이뤄냈습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가해자인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구체화하고 양국 정상이 참석해 서명한 최초의 협정입니다. 이로써 양국은 미래를 위한 협력의 중대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특히 국내 여론의 반대를 무릎쓰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단행했습니다. 한류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나카소네, 고이즈미 총리와 아키히토 천황, 김대중 대통령은 시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지금 한일 양국의 지도자들이 다시 떠올려야 할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양국이 가슴을 열고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입니다.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지난해 10월 판결이후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이 함께 부담하자는 1+1안을 비롯한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금을 일괄적으로 한국 정부에 지급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서 일본 정부의 양보를 받아내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어렵게 한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제기되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해결의 늪에 빠져버린 형국입니다. .
 
그래서 저는 양국의 지도자들에게 통큰 타협을 하자고 제안하고자 합니다. 먼저 한국 정부는 일본을 상대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 바랍니다. “일본이 곤란해 하면 굳이  받지 않겠다”라고 정리하자는 것입니다.  
 
한국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일본기업이 배상하라는 거지만 국제법적인 약속인 한일협정과 충돌하는 만큼 더 이상 일본을 압박하지 말고 우리 정부와 기업이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한국이 결단하면 일본에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난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전향적 용의를 밝힘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일본 정부에게는 사과의 부담을 지울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해 과거 두 차례 배상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국회에서 특별입법을 통해 세 번째의 배상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초당적 민간 현인회의를 구성해서 이런 방안을 검토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합당하다는 결론이 나면 이를 존중해서 일본과 양자 협의를 하면 됩니다. 대통령과 5당 대표는 이미 초당적으로 대처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대신 일본 정부는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를 대상으로 진솔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던 2010년 간 나오토 총리 담화를 기반으로 하고, 김대중 오부치 한일파트너십 선언처럼 양국 정부간 합의의 형태로 ‘한국인’을 상대로 한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아베 총리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양국 지도자가 용단을 내리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이라는 결정적인 뇌관이 제거될 수 있습니다. 양국의 치킨게임식 싸움은 즉시 중단될 것입니다. 한일 지소미아도 종료시한인 11월 22일 이전까지 원상복원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일본에 치욕을 당한 중국의 현대 지도자들이 보여준 이성적이고 실용적이면서 용기있는 접근 자세에 놀라곤 합니다. 1954년 마오쩌둥 주석은 일본 의회 대표단의 방문을 받고 “매일 사죄를 강요받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느 국가든 자꾸만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이미 지나간 일이니 역사의 흐름을 받아들이되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중국의 두 지도자는 왜 일본에게 이토록 관대한 입장을 취했을까요. 중국이 혼자만의 힘으로 부강해지려다 자멸의 위기에 내몰렸던 1920년대 실패의 경험을 상기했기 때문입니다. 덩샤오핑은 1978년 일본을 방문해 닛산 자동차 공장을 둘러본 뒤 “이제야 근대화가 무엇인지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일본인들 앞에서 “우리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한다. 우리나라는 후퇴했고 일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덩샤오핑은 기자회견에서 센가쿠 열도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지금의 중일 지도층보다 더 지혜로울 다음 세대에게 이 문제를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위해서 일본의 협조가 절실했기에 과거사로 비생산적인 소모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묻습니다. 엄연히 존재했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고(故)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가 생전에 했던 말입니다. “만일 내가 국가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라면 이제 그만 끝내라고, 그냥 다 털어놓으라고 일본에 조언할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이웃에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뉘우치라고 말이다. 그러기만 하면 상황이 모두 정리된다. 주뼛거림과 가식, 변명으로는 의혹을 말끔히 씻어낼 수 없다.”
 
자민당 원로인 다케시다 노보루 전 일본 총리의 발언을 소개합니다. “중국이 요구할 때마다 사과하자.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가면 중국이 제풀에 지쳐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얼마나 화끈하고 통큰 태도입니까. 여기서 중국을 한국으로 바꾸면 지금의 한일 갈등은 그야말로 봄날 눈 녹듯 사라질 것입니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히틀러에 맞서 싸웠던 용감한 인물입니다. 나치정권의 반인륜적 범죄에 책임질 의무가 전혀 없는 떳떳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1970년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의 저항투사 추모지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피해자들의 고통과 분노의 역사적 매듭을 풀기 위해서 나치를 대신해서 사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내려놓는 위대한 사과는 단번에 세상을 움직이는 법입니다.  
 
여러분, 한일 관계가 잘 풀리면 일본이 한반도 비핵평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아베 총리의 숙원인 북일 수교와 납북자 문제도 타결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도 협조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아베 총리는 2002년과 2003년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해서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 위원장과도 만났습니다. 그런 아베 총리는 한반도 비핵평화에 올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충분히 협력할 수 있습니다.  
 
양국관계의 돌파구가 열리면 10월 22일 레이와 시대를 여는 나루히토 천황 즉위식은 축제 분위기가 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서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의 원수로서 진심어린 축하를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년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이 진심어린 협조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2025년을 목표로 양국이 지금부터 역사 화해 프로세스에 돌입할 것을 제안합니다. 오랫동안 상대로부터 배웠던 문명의 콘텐트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알리는 작업이 핵심이 될 것입니다.  
 
지금 양국 관계가 최악이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젊은 세대가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래세대의 대화를 위해서 매년 30만명 규모의 청소년 교류를 추진했으면 합니다. 이렇게 갈등 현안 중심의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거시적이고 문명사적인 차원에서 양국관계를 발전시켜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한일 양국이 성숙한 관계에 돌입한다면 두 나라가 중심이 되고 중국까지 포함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아시아 특유의 역동적인 에너지와 수천년에 걸쳐 축적된 뛰어난 문명의 힘으로 유럽이 부러워할 정도의 아시아 평화‧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방가르드 예술가이자 존 레논의 아내였던 오노 요코는 “홀로 꾸는 꿈은 그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꿈이 갖는 강력한 힘을 믿습니다. 한일관계가 암흑기를 벗어나 아시아 평화‧경제 공동체를 만드는데 양국이 앞장서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상진·오원석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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