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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은 살릴 수 있었다…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 6차 사건 이후 경찰 수사받아

중앙일보 2019.09.25 17:22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모(56)씨가 6차 사건 이후 용의 선상에 올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당시 6차·8차·10차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수사망을 빠져나왔다. 만약 이씨가 첫 조사 때 검거가 됐다면 모방범죄로 결론난 8차 사건을 제외하고 처제를 포함해 최소 4명의 추가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조사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조사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25일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팀 등에 따르면 이씨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이름을 올린 것은 6차 사건 이후다. 그는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6차 사건은 1987년 5월 주부 박모(당시 29세)가 태안읍 진안리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박씨는 늦은 시간 퇴근하는 남편에게 우산을 주러 집을 나섰다가 실종돼 7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박씨의 시신을 발견한 현장 인근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 3개와 260㎜ 크기의 구두 족적 여러 개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보냈다. 그리고 탐문, 행적 수사 등을 통해 이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사건이 이씨가 사는 진안리에서 발생했고 당시 인근 전기설비공장에서 일했던 이씨도 늦은 귀가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씨를 곧 풀어줬다.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이 이씨와 일치하는지 확인하지 못했고 이전 사건을 통해 추정한 용의자의 혈액형은 B형이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O형이다. 더욱이 현장에서 발견된 구두 족적도 이씨의 신발 크기와 달랐다. 
 
경기남부청에 마련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연합뉴스]

경기남부청에 마련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연합뉴스]

혈액형 다르다고 이씨 아닌 40대 남성 조사 

이씨를 놔준 경찰은 당시 애꿎은 다른 남성을 대상으로 수사하고 있었다. 6차 사건의 피해자인 박씨가 숨진 채 발견되자 경찰은 40대 남성 A씨를 용의자로 특정해 수사를 벌여왔다. A씨는 박씨의 실종신고가 접수된 날 한 유흥업소에서 여종업원에게 "2~3일 안에 또 한 사람이 죽는다. 빨간 옷을 입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A씨가 밤거리를 자주 배회했다는 말까지 돌면서 경찰은 A씨를 집중적으로 수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화성 연쇄살인 사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모든 사건을 이씨가 저지른 것이 맞다면 그는 당시 경찰 수사에서 심한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범행 간격이 1~4개월이었던 1~6차 범행과 달리 7차 범행은 16개월 만에 발생했다. 모방범죄인 8차를 제외한 7차와 9차 사건의 간격은 2년이나 차이가 있다. 중간에 미수 사건이 있다고 해도 예전 범행보다 범행 간격이 길다. 
 
이후 살인사건이 날 때마다 경찰은 이씨를 용의 선상에 올렸다. 이씨는 지난 8차 사건과 10차 사건 때도 용의 선상에 올랐지만 벗어났다. 용의자의 혈액형과 다른 이씨를 수사당국이 주의 깊게 살피진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과거 수사팀 관계자들은 이씨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씨는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르고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그러나 당시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팀은 그때도 이씨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과수 조사 결과 당시 용의자 혈액형도 O형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연합뉴스]

하지만 경찰이 맹신했던 B형 혈액형은 잘못된 것이었다. 국과수가 지난 7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의 의뢰로 화성의 현장증거물을 조사한 결과 사건 당시 물품에서 채취된 성분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의 감정물에서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용의자의 DNA를 분리했다"며 "용의자의 혈액형이 O형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이 시료가 체성분이 오염이나 혼합됐을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수사팀도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 중 하나로 보고 깊이 있게 주시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혈액형은 용의자를 추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기 때문에 과거 수사팀으로선 당시 국과수가 혈액형을 잘못 분석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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