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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다시 뭉친 연세대 농구부 베스트5 "그날이 다시 올까요"

중앙일보 2019.09.25 16:16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뭉친 1993~94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 멤버 연세대 농구부. 왼쪽부터 문경은, 김훈, 서장훈, 우지원, 이상민. 김민규 기자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뭉친 1993~94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 멤버 연세대 농구부. 왼쪽부터 문경은, 김훈, 서장훈, 우지원, 이상민. 김민규 기자

 
 "체육관에 에어컨이 나오는 게 신기하다. 우리가 훈련할 땐 없었는데…(서장훈)"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 인터뷰
1993~94 농구대잔치 대학 첫 우승 멤버들
문경은 "선물로 받은 종이학만 20억 마리"
이상민 "연고전은 내게 꿈의 무대였다"
서장훈 "농구가 새로운 문화 만들어내길..."

 "일부러 차 대놓고 체육관까지 걸어왔는데, 독수리상 위치가 바뀌었더라(이상민)"
 
1994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농구 스타들이 25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90학번 문경은, 91학번 이상민, 92학번 우지원과 김훈, 93학번 서장훈 등 1993~94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 주역인 연세대학교 농구부 5인방은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체육관에 모여 뜨거웠던 옛 시절과 한국 농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땀과 눈물이 녹아있던 연세대 체육관에 하나둘씩 모이자 스타들은 하나같이 예전 선수 때로 돌아간 모습들이었다.
 
대학팀으로는 최초로 농구대잔치 정상에 오른 연세대학교 농구팀. 왼쪽부터 서장훈, 문경은, 김훈, 우지원, 석주일. [중앙포토]

대학팀으로는 최초로 농구대잔치 정상에 오른 연세대학교 농구팀. 왼쪽부터 서장훈, 문경은, 김훈, 우지원, 석주일. [중앙포토]

연세대를 응원하던 오빠부대 팬들. [중앙포토]

연세대를 응원하던 오빠부대 팬들. [중앙포토]

 
이른바 독수리 5형제. 이들은 1994년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가장 뜨거웠던 아이콘이었다.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하던 이들은 1993~94 시즌 농구대잔치에서 대학 팀으론 사상 처음 정상에 올랐다. 이뿐만 아니었다. 이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소녀팬들은 열광했고, 오빠부대라는 새로운 스포츠 문화가 생겨났다. 드라마 마지막승부와 만화 슬램덩크가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한국 농구가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는데 중추 역할을 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은 소녀팬들의 아이돌이었고, 스포츠문화 대통령이었다.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뭉친 이들도 모처럼 감회에 젖은 모습들이었다. 문경은과 이상민은 각각 서울 SK 감독과 서울 삼성 감독을 맡고 있고, 김훈은 수원에서 유소년을 가르치는 중이다. 또 우지원과 서장훈은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이상민은 "2012년 OB와 YB 경기에서 모인 뒤에 7년 만에 뭉쳤다. 하지만 인터뷰로 모인 건 처음"이라고 했고, 김훈은 "과연 다 모일 수 있을까 했는데 실제로 이렇게 모이니까 우리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뭉친 1993~94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 멤버 연세대 농구부. 왼쪽부터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김훈, 문경은. 김민규 기자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뭉친 1993~94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 멤버 연세대 농구부. 왼쪽부터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김훈, 문경은. 김민규 기자

 
인터뷰를 하면서 이들은 당시로 돌아간 듯 스스럼없이 장난도 치고 농담도 주고 받았다. 서장훈이 "청소년대표 등 어릴 떄부터 함께 알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엄격한 문화가 없었다"고 했고, 최고참인 문경은은 "후배가 4명이나 있는데 어떻게 존댓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냐"며 농담조로 이야기했다. 당시 인기에 대해 서장훈은 "허재 형, 이충희 선배 등 인기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대학생이 실력도 좋고 객관적으로 나 빼고 다 잘 생겼으니까 여중생, 여고생 입장에선 충격적인 비주얼이었을 것이다. 우락부락하던 기존 이미지와는 다르다보니 경은이형을 기폭제로 전국적으로 불이 붙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2학년 재학 시절 문경은의 모습. [중앙포토]

연세대 2학년 재학 시절 문경은의 모습. [중앙포토]

1993~94 농구대잔치 챔피언결정전 당시 우지원의 모습. [중앙포토]

1993~94 농구대잔치 챔피언결정전 당시 우지원의 모습. [중앙포토]

서장훈의 연세대 시절 모습. [중앙포토]

서장훈의 연세대 시절 모습. [중앙포토]

 
당시 인기의 척도는 수많은 팬레터와 선물이었다. 김훈은 "내가 그때 선물을 정리할 땐 평균 하루에 다섯 자루씩 왔다. 하루에 1000통씩 왔다"고 했고, 서장훈은 "지원이 형 팬이 보낸 것 중에 트럭에 비디오 등 가전부터 옷까지 한 트럭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상민이 "그땐 종이학이 많았다"고 하니까 문경은은 "선물로 받은 종이학만 20억 마리 정도 있다. 그걸 놔두면 2년 지나서 알을 낳는다고, 나중엔 30억 마리로 늘어났다. 이사갈 때 버리지도 못했다. 팬들이 주신 건데 어떻게 버리냐"고 했다. 오빠부대의 관심을 받은 투톱 이상민과 우지원에 대해 서장훈이 "숫자로 보면 지원이 형이 인기가 제일 많았고 그 다음 상민이형이었다. 경은이형, 훈이형이 비슷했다"고 하자 문경은은 "대구체육관에 갔을 때 내 이름이 쓰인 플래카드로 꽉 찼다"며 맞섰다. 우지원은 "농구팬들에겐 상민이 형 팬이 더 많았다"고 하자 이상민은 "난 말을 잘 안하는 스타일이라 팬들이 좀 더 어려워했다. 장훈이 말이 맞다"고 했다.
 
고려대와 대결에 대한 추억도 나눴다. 이상민은 "연고전은 나에게 꿈이었다. 중학교 때 장충체육관에서 하는 정기전을 갔는데 관중이 어마어마하게 많더라. 그 무대에 뛰는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면서 "첫 경기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했는데 점프도 더 올라가고. 꿈을 이뤘다. 경기는 정말 터프했다. 개인적으론 고려대에 진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문경은은 "이기면 휴가받고 지면 죽는 거였다. 이기면 다음 주 일요일까지 쉴 수 있지만 지면 바로 훈련이었는데 한 번도 진 적이 없어 훈련은 못해봤다"면서 "사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뛰어본 적이 없었지만 연고전은 경기장이 꽉 찼다. 4년 동안 이런 경기를 뛴 게 자랑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뭉친 1993~94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 멤버 연세대 농구부. 왼쪽부터 문경은, 김훈, 서장훈, 우지원, 이상민. 김민규 기자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뭉친 1993~94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 멤버 연세대 농구부. 왼쪽부터 문경은, 김훈, 서장훈, 우지원, 이상민. 김민규 기자

 
실력과 인기를 모두 겸비한 당시 연세대 농구부에 대해 서장훈은 "전까지만 해도 가운데가 튼튼해야 이긴다고 빅맨 두 명을 세운 농구를 했다. 우린 달랐다. 한 팀에 3명의 슈터가 뛰었다. 혁신적인 팀이었다"고 말했다. 우지원은 "당시 그런 농구를 하는 팀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장훈이가 가운데에 있으니까 가능했다. 장훈이를 믿고 우리는 공격에 집중했다. 뛰는 농구를 했고, 장점이 많았다"고 했고, 이상민은 "장훈이가 센터지만 3점슛 능력도 갖고 있었다. 장훈이가 뒤로 나와서 슛도 많이 던졌다. 당시 센터가 외곽슛을 던지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상무에 패해 전승 우승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나눴다.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이들은 서로 응원했다. 문경은은 "장훈이가 할 말 지키는 타입이다. 처음엔 '장훈이가?' 이랬는데 지금은 훨씬 잘 됐다고 생각한다. 어색함없이 잘 하고 있다"고 했다. 우지원은 "경은이 형과 상민이 형은 워낙 스타플레이어였고 감독으로서도 잘 하고 계신다. 그래서 보기 좋다. 훈이도 유소년 쪽에서 열심히 하고 있고. 장훈이도 이렇게 잘 되서 좋다. 운동선수도 방송에서 잘 될 수 있다는 걸 장훈이가 보여줬다"고 말했다. 서장훈은 "본인이 팀을 맡아서 선수들을 가르쳐보겠다는 열정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지도자를 하는 것이다. 모두 똑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하고 싶은 일, 열정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말했다.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뭉친 1993~94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 멤버 연세대 농구부. 왼쪽부터 김훈, 우지원, 서장훈, 문경은, 이상민. 김민규 기자

일간스포츠 창간 50주년을 맞아 뭉친 1993~94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 멤버 연세대 농구부. 왼쪽부터 김훈, 우지원, 서장훈, 문경은, 이상민. 김민규 기자

 
1994년의 전성기가 다시 올 지에 대해 물었다. 우지원은 "모두들 열심히 하고 있는데 2% 부족한 느낌이다. 해설위원할 때 느낀 것이 아직까지도 우리 때 이야기, 감독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현재 선수들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훈은 "많은 농구인들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농구 붐이 다시 한번 왔으면 좋겠다"고 했고, 문경은은 "좋은 선수가 나와야 하고, 국제경쟁력도 높여야 하고, 그 당시로는 못가도 배구한테 진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장훈은 "가장 좋은 건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농구는 젊은 팬들과 문화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접점이 가장 많은 스포츠다. 젊은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건, 어린 대학생이 모여 프로 끝판왕같은 사람들을 이긴 스토리다. 거기에 드라마, 만화가 힘을 줬고. 이런 요소들이 더 섞이면서 그런 인기를 누렸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색한 건 없었다"며 입을 모은 이들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인터뷰를 마쳤다. 이상민은 "앞으로도 10년, 20년 뒤에 모여서 옛날 이야기 하면 좋을 것 같다. 경은이 형이랑 좋은 후배들과 계속 좋은 추억 쌓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 문경은은 "내가 50년을 살았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때를 말하라면 대학교 4학년 때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 함께 있는 4명과 같이 이 자리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후배들은 모두 하나같이 맏형을 향해 큰 박수를 보내고, 재회를 약속했다.
 
최용재·김희선·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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