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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비싸요. 내릴래요”…이륙 직전 '자발적 하기' 이유 들어보니

중앙일보 2019.09.25 14:03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기사내용과 관계 없는 사진) [중앙포토]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기사내용과 관계 없는 사진) [중앙포토]

"저비용항공사(LCC)보다 요금이 비싸다. 내리겠다" 
 
지난 8월 부산 김해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떠나려던 여객기가 갑자기 멈춰섰다. 한 탑승객이 이륙 직전 비행기에서 내리겠다고 한 것이다. 승무원이 이유를 묻자 이 승객은 "LCC보다 요금이 비싸다"고 답했다. 승객이 여객기에 내리기 위한 절차를 밟느라 여객기 이륙이 지연됐고, 항공사 운항 스케줄도 꼬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처럼 여객기 탑승 승객이 갑자기 내리겠다고 하는 '자발적 하기'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국토교통부는 전국 공항에서 '자발적 하기' 사례가 지난 2016년 313건에서 2017년 365건, 지난해 442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A 항공사의 경우 올 한해 김해공항에서 출발하는 국내선 여객기 중 출발 전 갑자기 승객이 내리겠다고 한 경우는 20차례나 된다. B 항공사도 올해 부산에서 출발하는 전체 항공편 중 승객 '자발적 하기' 사례는 11차례로 집계됐다. 
 
자발적 하기의 주요 요인은 공황장애 등 건강상 이유가 가장 많다. 건강상 사유를 제외하고는 개인적 사유가 전체의 34.4%에 해당한다. 개인적 사유란 물품 분실, 예약 실수 등을 말한다. 최근 홍콩 공항에서 아이돌 그룹 해외 팬들이 연예인을 보기 위해 여객기에 함께 탑승했다가 이륙 직전 내리겠다고 한 일도 자발적 하기에 해당한다.  
 
항공사 관계자는 "당일 티켓 구매 취소 시 환불 수수료가 없다는 점을 악용한 하기 요구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항공사 측은 갑작스러운 하기 요구가 다른 승객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항공 보안법상 이륙 직전 여객기에서 승객이 내리기 위한 절차는 까다롭다. 우선 항공사는 공항 상황실에 자발적 하기 승객이 있다고 통보한다. 상황실은 공항테러보안대책협의회에 상황을 보고하고, 공항테러보안대책협의회는 국가 항공 보안계획에 따라 상황에 맞는 적절한 보안 조치를 항공사에 지시한다. 
 
상황에 따라 이 과정이 복잡해질 때가 있다. 테러 가능성이 높을 땐 폭발물 처리반을 투입해 모든 승객과 짐에 대한 보안검사를 다시 진행한다. 테러 가능성이 낮다 하더라도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하기 보안 검사를 진행하거나 관련 절차를 밟는다. 이 때문에 여객기 출발은 자연스레 지연될 수밖에 없다. 
 
여객기 지연은 승객들에게 불편함을 줄 뿐만 아니라 항공사에도 막대한 손해를 입힌다. 
 
하지만 법적으로 항공사가 항공 보안법상 내리겠다는 승객을 제지할 권한은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항공 보안법상 이륙 직전에 승객 하기 요구를 막을 수는 없다"며 "피해 당사자인 항공사와 승객이 손해배상을 적극적으로 청구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하기 사유를 거짓으로 말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추정만 하는 상황에서 승객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어렵다는 게 항공사 입장이다. 
 
이 때문에 피치 못 할 사정이 아닐 때는 여객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는 등 항공 보안법이 강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항공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자발적 하기'를 요청한 승객이 사유에 대한 증빙자료를 추후 제출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제출한 경우 최대 1000만원까지 벌금을 부과하는 항공 보안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하고 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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