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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 노린 화성살인 용의자 “장판까지 모두 태워라”

중앙일보 2019.09.25 13:40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씨(오른쪽)가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검거돼 옷을 뒤집어쓴 채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씨(오른쪽)가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검거돼 옷을 뒤집어쓴 채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모(56)씨가 1994년 처제를 살해했을 때 범행부터 경찰에 붙잡힌 뒤까지 증거인멸을 시도하며 ‘완전범죄’를 노린 정황이 확인됐다.
 

처제살해 구속 때 면회 온 어머니에게 부탁
범행 계획부터 검거 후까지 ‘증거인멸’ 시도

25일 뉴스1이 공개한 당시 재판 기록에 따르면 이씨는 1994년 1월 13일 청주 자신의 집에서 처제 A씨(당시 19세)에게 수면제를 먹여 성폭행하고 둔기로 때려 살해했다.
 
그는 숨진 A씨의 옷과 집에 있던 스타킹 등을 이용해 시신을 묶거나 감싸 유모차를 이용해 880m가량 떨어진 한 철물점 야적장에 유기했다.
 
A씨의 몸에서 반항흔이 나오지 않은 점으로 미뤄 면식범의 범행으로 추정한 경찰은 가족을 조사하던 중 수상한 낌새를 보이는 이씨를 붙잡았다.
 
항소심 판결문에는 이씨가 범행 때부터 경찰에 붙잡힌 이후에도 ‘증거인멸’을 시도한 여러 정황이 담겼다. 이때문에 판결문에는 ‘계획적이고 치밀하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항소심 판결문에 따르면 경찰에 붙잡히기 전 이씨는 욕실에 바가지로 물을 뿌려 혈흔 등을 없애는 등 집안을 청소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둔기 폭행이 수차례 이뤄진 이씨의 집안 어디에서도 범행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혈흔을 찾지 못했다.
 
이씨를 검거하고 여러 차례 집안을 다시 감식한 끝에야 욕실 출입문 손잡이 등에서 미량의 혈흔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범행의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경찰은 이씨의 범행을 확신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고 시도했다.
 
경찰에 붙잡혀 구속되고 첫 면회 온 모친에게 ‘변호사를 빨리 선임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거나 억울하게 구속됐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씨는 며칠 뒤 다시 면회를 온 모친에게 ‘집 살림살이 중 태울 수 있는 것은 장판까지 모두 태워 달라’며 자신도 모르게 남아 있을 범행의 흔적을 없애려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가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증거물을 없애 버리기 위해 살림살이를 태워 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고 지적했다.
 
법정에서 그는 범행에 사용된 수면제를 구매·보관한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자백했다고 주장했다. 또 직접 증거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무죄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씨는 사형을 면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1심 사형부터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까지 모두 5번의 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이씨는 항소심에서 혐의 부인과 함께 양형부당을 주장했다. ‘사형은 과하다’는 주장이었다.
 
항소심에서도 사형을 선고받은 이씨는 또 같은 이유로 대법원 상고했고, 주장 일부가 받아들여지며 사형은 면했다.
 
당시 대법원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범행한 것인지 아니면 강간만 할 생각으로 범행했는데 순간적인 상황의 변화로 살인의 범행에까지 이어졌던 것인지 여부가 면밀히 심리·확정된 다음에 양형을 정해야 옳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 역시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약효가 나타나기도 전에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떠나려 하자 이를 저지하면서 강간을 저지르고 그 과정에서 반항하자 살해까지 한 것이 인정된다”며 살해를 우발적 범행으로 판단해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무기징역도 억울했던 이씨는 파기환송심 결과에 불복해 재차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결정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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