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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인정 거부 사유 몰랐던 이유 보니…한국어ㆍ영어 못해서

중앙일보 2019.09.25 05:00
지난해 10월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제주시 용담동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서류를 접수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제주시 용담동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서류를 접수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4월 무렵 A는 한국 땅을 밟았다. 고향 예멘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입국 직후 난민 인정을 신청했고, 6개월만에 불인정 통보를 받았다. A는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인도적 체류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를 침해당할 가능성이 큰 경우 국내에 임시로 1년간 체류를 허용하는 제도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A와 같은 인도적 체류 허가자들을 불러 ‘난민불인정결정통지서'를 직접 나눠줬다. 통지서는 한국어와 영어로 되어 있었고, 구체적인 불인정 사유는 한국어로만 쓰여 있었다. 아랍어를 쓰는 A는 서류가 어떤 내용인지, 왜 난민 인정이 거부됐는지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A를 비롯한 이들에게 ‘인도적 체류 허가 결과를 받게 된 것을 축하한다’며 2시간에 걸쳐 아랍어 통역으로 불복 절차와 한국 생활, 체류자격 변경 허가 등 행정 조치를 안내했다. A는 난민 인정이 거부된 이유에 대한 설명은 따로 듣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한국인 친구 B씨에게 통지서 번역을 부탁한 뒤에야 A는 난민 불인정 사유를 알 수 있었다. ‘난민 인정 5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A를 비롯한 친구들의 사연을 들은 B씨는 “2018년 4월부터 제주에서 난민신청을 한 예멘인은 484명이며, 이 중 467명이 난민불인정결과를 받았는데, 이들이 받은 난민불인정결정통지서를 예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아랍어로 제공하지 않은 것은 난민신청자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난민불인정결정통지서를 신청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 제공하는 것은 난민신청자의 절차적 권리 보장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난민법 시행규칙 등 관련 규정 개정을 법무부 장관에 권고했다고 24일 밝혔다. 다만 위 사건 진정은 피해 사실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 등을 이유로 기각했다. 
 
인권위는 “법무부는 일반적으로 난민불인정결정통지서를 나눠줄 때 난민신청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률적으로 한국어와 영어를 병기해 나눠주고 이와 관련된 사안을 영어로 통역해 설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난민불인정결정통지서의 취지는 난민신청자가 결정 사유를 정확하게 이해해 불복 여부를 결정하고, 불복 시 권리구제절차에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신청자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제공하는 것은 신청자의 절차적 권리 보장을 침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또 “2003년 발간된 ‘유엔난민기구 위임 난민심사에 대한 절차 기준’에서는 영어나 프랑스어가 아닌 언어로 난민 면접이 진행된 경우, 관련 언어로 정확히 번역된 통지서를 받거나 구두 통역을 통해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난민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난민신청자가 충분히 통지서 내용을 인지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회적이고 정확성 논란이 있는 ‘통역’이 아닌 ‘번역된 문서’로 제공할 것을 명시하라는 내용의 의견 표명을 했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A의 사례는 인권위에서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제공해 준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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