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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막장 현대 사극의 숨은 관전 포인트…반독점 투쟁

중앙일보 2019.09.25 00:17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현실판 사극이 한창이다. 형조판서의 집이 털렸다. 의금부에 의해서다. 판서는 물론 부인과 자녀까지 범죄 혐의로 한 묶음이 됐다. 장면마다 막장이다. 지금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이보다 시청률이 높을 수 있을까 싶다. 드라마는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막장이라고 관전 포인트가 없는 건 아니다. 이 드라마에선 반독점인 듯하다. 정치적·이념적 독선과 독점에서 비롯된 반칙과 특권 말이다. 그걸 누린 당사자에겐 이 드라마가 참담할 테고, 상식을 도둑맞은 백성에겐 분노의 투영이다.
 
사회는 반독점 투쟁의 역사다. 정치에선 독점이 독재가 되고, 경제에선 독과점의 폐해로 변질한다. 투쟁의 요체는 유연성 확보다. 독점이 창궐하면 경직되게 마련이다. 다른 견해나 경제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진다. 바람직한 정치 모델인 협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유연하게 의견을 듣고 수용하는 과정이다. 경제에선 규제가 많으면 활력을 잃는다. 어떤 분야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다.
 
반독점은 혁신을 낳고, 그 혜택은 대중에게 돌아간다. 1911년 록펠러의 독점 붕괴가 딱 그랬다. 1870년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더드 오일은 20년 동안 미국 석유시장의 88%를 장악했다. 운송요금까지 주무를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했다. 관련 산업에서의 창업은 고사하고 기존 기업도 버티기 어려웠다. 캐슬형 특권과 갑질이다. 반독점 대헌장으로 불리는 ‘셔먼법’(1890년 제정)이 제동을 걸면서 독점이 깨졌다. 이게 중산층을 키웠다. 작은 기업을 설립해 대기업과 경쟁하고, 협업도 가능하게 했다. 아이디어를 부(富)로 연결할 수 있었다. 누구나 노력하고 혁신하면 성공한다는 기반을 제공했다. 유연한 경제로의 전환이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리쇼어링(해외로 나간 기업을 다시 불러들임) 정책은 희한하다. 유연한 곳을 찾아 나간 기업을 규제가 넘치는 곳으로 불러들이겠다고 하니 말이다. 기업은 부가가치를 좇는다. 생산성과 세금, 노사관계, 정부 정책의 일관성 등 다양한 요소를 따진다. 이걸 충족시켜야 기업이 온다. 어느 하나 경직되면 안 온다.
 
심지어 인간 삶의 기본인 노동에서도 독점은 끝났다. 디지털화로 대변되는 산업 4.0 시대에는 더 그렇다. 기계와 컴퓨터가 노동을 대체 중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기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 이른바 ‘노동 4.0’으로의 변신이다.
 
독일 연방노동사회부는 2015년 『노동 4.0 녹서(Green Paper Work 4.0)』를 냈다. 전 세계 학자가 한 번쯤 읽었을 만큼 노동의 변화에 대한 통찰력을 담고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가치 중 하나는 통제의 유연화다. 근로시간 주권(time sovereignty) 같은 것이다. 개인이 근로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지니는 걸 이른다. 훈련이나 육아가 필요할 때 자유롭게 근로시간을 선택적으로 배분해 쓸 수 있는 시스템이다. 물론 임금의 반대급부인 주어진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는 전제에서다. 정부나 고용주·노조에 의한 통제의 독점을 털어내야 산업 4.0 시대에 적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독점이 범용적 상식과 결합하면 큰 힘을 낸다. 국민은 상식에 기초해 정치와 경제, 사회를 본다. 상식적으로 아닌데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면 등을 돌린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만이 아니다. 급격하게 오른 최저임금에 대해 그랬고, 일자리 정책에 그러했다. 총선을 앞두고 야심으로 변한 충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군주민수(君舟民水)란 말이 뜨는 이유가 아닐까. 깊은 강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정치든 경제든, 공정·상식·반독점을 기술하는 논문의 제1저자는 국민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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